오늘의 달리기가 먼 미래의 널 변화시킬 수 있다면 
오늘의 달리기가 먼 미래의 널 변화시킬 수 있다면 
  • 칼럼니스트 이수경
  • 승인 2020.10.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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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으로 키우는 부모, 권리로 자라는 아이] 아이들과 국제어린이마라톤대회에 참여했다

나는 결혼 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기적적으로 임신이 되던 날부터 나의 간절한 기도는 시작됐다. 태어날 아이가 부디 건강하기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잘 읽고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배움과 경험을 통해 깨닫고 변화하는 지혜로운 아이이기를. 기왕이면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강자에게 강할 수 있고 약자의 의견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첫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딸은 생후 5개월에 뒤집기를 했다. 내가 음식을 먹을 때면 큰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입에 침을 가득 품곤 했다. 건강하게 태어나 잘 자란 우리 아이,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다.

지난해 어느 날, 딸아이 친구 엄마들과 모여 앉아 이제 고학년이니 전략적으로 학원을 옮겨야 한다느니, 중학교 배정을 잘 받으려면 이사를 해야 한다느니, 좋은 학군이 구성된 동네와 저렴한 아파트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이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아졌네.” 

일장 연설을 하던 한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이제 행복하려면 공부를 해야지”라고 응수했고, 함께 있던 모두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대부분은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 같았다.

◇ 행복의 조건이 ‘사랑’인 삶을 바라며… 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2020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의 '2020 국제어린이마라톤'에 아이들과 함께 참가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행복하려면 공부를 해야 할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 진짜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기본 사항인가? 그래서 인생의 황금기 같은 청소년기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평일부터 주말까지 밤 10시에도 학원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일까.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이들의 공통적인 조건을 살펴보면, 사랑하는 가족과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삶을 즐길 수 있는 건강과 마음의 여유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그 어느 것도 고학력이나 ‘스펙’이 기여하는 것은 없다.

그저 최고여야 살아남는다는 이 시대의 잘못된 교훈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진로의 방향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난 우리 아이들이 학교 성적에 연연하기보단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웠으면 한다.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고, 어느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하는지 정보는 없지만, 다행히 아동권리 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나눔과 봉사에 관한 정보는 많이 열려있다. 그리고 참여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신청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지난 주말에 함께 뛴 마라톤처럼 말이다.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어린이마라톤이 열렸다. ‘달리는 것만으로 전 세계 아동을 구할 수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마라톤은 아동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4.2195km를 뛰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며 나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한다.

참가비는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의 의료, 교육, 생존 등 아동권리를 지키는 일에 쓰인다. 매년 야외 공원 등에 참가자들이 모여 뛰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형식의 ‘런택트(Run+tact)’로 진행, 참가자 1만 1000여 명이 각자의 공간에서 뛰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마라톤 대회. 나도 아이들과 함께 참여했다. 개막 2주 전 마라톤 당일에 입을 티셔츠와 완주 후 자신을 스스로 축하할 수 있는 메달, 미션을 수행할 포토카드와 블록, 아동권리를 알아가는 보드게임이 담긴 박스를 받았다.

지난해엔 감기에 걸려 못 뛰었던 여섯 살 둘째 아들이 올해는 꼭 참가하겠다며 메달을 목에 걸고 거실을 뛰어다녔다. 저녁마다 티셔츠까지 챙겨 입고 마라톤 준비운동으로 들뜬 아들을 보니 흐뭇했다. 그리고 날이 좋았던 일요일 오후, 뛰기로 약속한 시각이 되자 모두 옷을 갈아입고 공원으로 이동했다.

준비운동을 하며 우리가 왜 이 마라톤에 참가하는지 다시 한번 의미를 설명했다. 오랜만에 야외에 나와 꽤 긴 거리를 뛴 아이들은 약간 피곤해했지만, 활기로 넘쳤고, 우리 부부도 아무 사고 없이 가족 행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에 서로를 칭찬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함께 마라톤 뛰니까 어땠어?”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었어!”라고 외쳤다.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뛰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상세히 물어보았다. 큰아이는 춥고 다리가 아팠다고 대답했고, 둘째 아이는 덩달아 무서웠다고 대답했다. 나는 무언가 아이다운 창의적인 느낌이나 깨달음이 있었는지 궁금해져 어떤 것이 무서웠는지 재차 물었다. 

아이는 “사람들이 개 목줄을 너무 길게 잡아서 마라톤 뛰고 걸을 때 아주 무서웠어”라고 했다. 약간,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혹시 내년에도 마라톤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물으니, “응! 엄마가 세이브더칠드런에 계속 다니면 아마도 하게 되겠지?”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대답이다.

◇ 오늘의 한 걸음이 한 아이를 구하고, 미래의 네게 닿기를

나는 사실…“국제어린이마라톤에 참여하니 보람차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좋았다” 같은 종류의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마라톤을 뛰며 저체온증, 교육 소외, 영양실조, 말라리아 등을 주제로 한 미션을 수행했지만, 실제로 이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얼마나 추위에 떨고 굶주리는지 실감은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풍성하게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기대에 부응하는 대답 역시 듣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고작 몇 번의 체험 활동으로 삶의 중요한 교훈을 얻고 타인의 상황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은 삶의 경험치가 적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식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난 ‘나비효과’라는 말을 좋아한다. 어느 시골 동네에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먼 나라에 폭풍을 몰아치게 할 수 있듯이, 오늘 우리 가족이 함께한 마라톤은 작게는 도움이 필요한 어떤 아동에게 힘이 될 수 있고, 크게는 많은 이들의 인식개선에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올해는 그저 재미있다거나, 힘들었다는 단순한 느낌만을 나눴던 아이들도 내년에는 조금 더 변화할 것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됐을 때, 습관처럼 누군가를 도우러 나서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그래서 난 오늘의 대화에 실망하지 않고, 먼 미래에 변화한 아이의 모습을 기대한다. 긴 호흡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아이에게 본이 되어주며 가치를 보는 것을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할 것을 결심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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