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몰라도 세상 당당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면
‘나이키’ 몰라도 세상 당당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면
  • 칼럼니스트 이수경
  • 승인 2020.1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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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으로 키우는 부모, 권리로 자라는 아이] 아동권리영화제 선정작 '캡틴 판타스틱'(2016)

베이비붐 세대인 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나서야 경쟁에서 앞서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버릴 수 있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낼 때, 의미 있는 결과물이 돌아온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영화 ‘안네의 일기’를 보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목숨을 지키기 위해 2년 넘도록 다락방에 숨어 지내야 했던 아동들의 힘겨운 생활과 아픔을 이해하게 됐다. 영화 ‘변호인’과 ‘1987’를 보곤 내가 존재하는 시대에서는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또 다른 진실들을 마주하며 분노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을 사는데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변화시키는 요인으로는, 물론 삶의 경험치가 가장 크겠지만, 그 외에도 책이나 존경하는 이의 명언,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이 삶을 대하는 방식 혹은 대화 등 다양하다.

나는 성인이 되고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읽거나 존경하는 지인을 찾아뵙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타인과 공감하고 나와는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각과 가치가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 아동권리주간에 보면 좋을 영화 ‘캡틴 판타스틱’ 

제6회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세이브더칠드런
제6회 아동권리영화제 포스터. ⓒ세이브더칠드런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는 아동권리주간이다. 아동권리주간은 UN 아동권리협약 제정일인 11월 20일을 기념하고, 아동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을 높이고자 관계기관 등에서 아동학대 예방캠페인을 진행한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도 매년 아동권리주간을 맞아 아동권리영화제를 개최하는데, 나는 이 덕분에 올해 상영작 중 하나인 ‘캡틴 판타스틱’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영화는 제도권에 맞춰진 교육 체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기인하는 다양한 유해 환경들, 예컨대 무의미한 광고나 게임, 해로운 음식 등을 멀리하며 숲속에서 ‘와일드 홈스쿨링’을 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18세가 된 장남 ‘보’가 사슴을 직접 사냥하는 성인식을 치르고, 아이들은 아침마다 산과 암벽을 타는 훈련을 한다. 산에서 자급자족하며 살기 위해서 식물을 키우고 먹거리를 관리하는 등 일상에 역할을 나누고,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저녁이 되면 고전을 읽거나 자신에게 맞는 진도에 맞춰 주도적으로 학습을 진행한다. 모닥불 앞에서 공부와 토론이 깊어질 때쯤이면 자신만의 악기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숲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것 외에도,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는 아빠의 양육방식에서 몇 가지 배울 점을 발견했다.

첫째, 아이들이 공부하며 깨닫는 부분이 있으면 책을 그대로 외워 읊조리기보다는 제 생각이 담긴 의견을 내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모르겠어요', '그냥 그래요', '불편해요'와 같이 모호한 문장을 사용하는 대신, 무엇이 어떻게 불편하고 왜 그런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활동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평가한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수행한 다음에 이 작전에서 보완하거나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를 습관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고 그것을 비판하지 않고 들어준다.

셋째, 아이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한 후에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준다. 아이가 암벽을 타다 자일에서 미끄러져 바위에 부딪혀서 손목을 다쳤는데, 아빠는 아이의 손목이 부러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후 아이 스스로 안전한 곳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넷째, 대중적인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를 챙기기보다는 자신들의 삶에서 의미 있는 사람, 예컨대 언어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노암 촘스키의 생일을 기념하는 가족의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알리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분이다. 아빠는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전한다. 알아야 하는 정보를 전달할 때 가감 없이 상세히 말하고,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나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존중하며 솔직하게 설명해 준다.

◇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당당하고 행복한 아이들 

영화 '캡틴 판타스틱'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캡틴 판타스틱'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난 아이들이 놀라거나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영화 속 아이들은 엄마의 소식에 슬퍼하면서도 이해했고 서로를 위로해주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어 놀라고 충격을 받았지만, 상황을 인지하고 함께 격려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일로 도시에 있는 친척 집에 간 아이들은 나이키 운동화 상표를 몰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로 받아친다. 이를 본 친척들이 아이들을 이렇게 무지하게 키워도 되냐며 걱정하지만, 아빠는 강한 아이들이라며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이 아이들은 산에서 훈련하다 지붕에서 떨어져도 심하게 다치지 않고 골절만 입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으며, 자신의 견해가 분명하기에 본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지혜를 가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동경했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아이의 무한한 능력을 믿지 못해 불안해하고, 아이가 내 소유인 양 내 방식대로 키웠으며, 제도권을 벗어나 나만의 가치와 소신대로 살 용기가 없던 내 모습을 반성했다.

그리고 부족하겠지만 앞으로는 세상의 기준을 쫓느라 아이의 행복을 뺏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소신 있게 아이의 권리를 존중하며 키워보고자 결심하게 되었다.

올해로 6회째인 아동권리영화제는 아동이 겪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소재를 선별해 상영한다. 아동이 바라보는 세상이나 아동 주도적인 활동, 차별이나 방임, 학대의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보면서 공감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환기할 수 있다.

내가 ‘캡틴 판타스틱’을 통해 느낀 것처럼, 성인인 우리가 아동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시간도 얻을 수 있다. 영화제 선정 작품은 모두 작품성 있고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다.

인생의 획을 그을 영화 한 편이 생각나는 깊어가는 가을이다. 아이들의 삶은 너무나 오래전 지나버린 '나'의 삶이기도 하다. 이번 주는 아동권리영화제의 작품들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동들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시간을 가져 보길 추천한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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