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먹고 크는 사교육… 팩트로 '뼈 때리는' 책
불안 먹고 크는 사교육… 팩트로 '뼈 때리는' 책
  • 전아름 기자
  • 승인 2020.11.24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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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교육 신화 팩트체크…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내년이면 다섯 살이 되는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 다섯 살이라는 나이 앞에 고민이 깊어진다. 어떤 집 애들은 우리 애들하고 동갑인데 벌써 한글을 읽고, 어떤 애들은 벌써 영어 공부를 하고, 심지어 코딩에 산수까지 척척 해낸다던데, 우리 애들만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되나 싶어서 조바심이 난다.

아이가 대단하게 앞서 나가진 않더라도 뒤처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지금 먼저 하지 않으면 나중에 따라잡는 것조차 벅찰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너무 당연하게 도사린다.

그뿐인가. 세상은 부모들에게 ‘세 살이면 아이 두뇌가 완성되는데 왜 그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애를 그냥 두냐’고 다그치고, 4차산업혁명 시대라는, 뭐라 정의하기 모호한 말을 앞세우며 어릴 때부터 코딩, 수학, 영어를 배워놔야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자랄 수 있다고 채근한다.

심지어, 이젠 노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너무 중요하다며, 놀이를 ‘배우는’ 비싼 학원까지 성행한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지금 어린이집만 다니는 쌍둥이들, 내가 너무 내버려 두나, 나 때문에 애들이 그 ‘공부할 때’를 놓치면 어쩌나, 아니 이미 놓치고 있나,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대부분 갖고 있을 불안에 응답하는 책이 한 권 나왔다. 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만든 책이다. 제목은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김영사, 2020년).

이 책은 베이비뉴스 기자 여덟 명이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 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 심리학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열세 명의 전문가를 만나 영유아 사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해로운지 집요하고 치밀하게 검증한 책이다.

◇ “우리 애만 뒤처지면 어떡해”… 부모 불안에 응답한 전문가들

앞서 나가진 않더라도 뒤처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지금 먼저 하지 않으면 나중에 따라잡는 것조차 벅찰지도 모른다는 불안 ⓒ베이비뉴스
앞서 나가진 않더라도 뒤처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지금 먼저 하지 않으면 나중에 따라잡는 것조차 벅찰지도 모른다는 불안 ⓒ베이비뉴스

제목만 놓고 보자면 아이 똑똑하게 만드는 좋은 교육법, 추천할 만한 공부법 같은 것을 족집게처럼 탁탁 집어줄 것 같지만 정반대다. 낚였다고 생각하고 손에서 이 책을 내려놓으려 한다면 잠깐만!

이 책의 머리말(5쪽)에선 이렇게 말한다. “아이에게 놀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유익하다는 말은 명확한 근거가 있는 사실이었다”라고.

그렇다. 이 책은 이 시기 아이들에게 공부보다 노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발달과 성장에도 유익하다고. 유아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아이들이 스마트폰 보는 것보다 훨씬 해로운 일이라고, 과학적인 근거와 의학적 견해, 그리고 실제 사례와 전문가들의 고견을 엮어 견고하고 정성스럽게 부모들의 ‘뼈’를 때린다.

영유아 사교육은 들인 돈에 비해 가성비가 좋지 않고, 애들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부모 자식 관계만 어그러진다는 것이다.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정서의 뇌, 특히 긍정성과 자기 조절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정서의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이성의 뇌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럼 공부를 잘할 수 없지요. 시각·청각·모국어 등 기초발달을 시켜야 하는 시기에 학습을 시키면 오히려 뇌 발달을 망치게 됩니다.”(234쪽, 김영훈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소아청소년과 교수)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꼽은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조기 영어교육이 유형' 1위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2015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유아 대상 영어학원'(60%) 은 '비디오, 스마트폰 등 영어 영상물'(50%)보다 아이들에게 더 해롭다는 결과도 나왔지요.”(98쪽, 김승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어사교육포럼 부대표)

모두 맞는 말이라고, 일절 틀린 말이 하나 없다고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각성하는 사이에 강남이든 어디든 돈 많은 집 아이들은 이미 이런 조언 따윈 무시하고 최첨단의 사교육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다시 등골 서늘하게 불안해진다.

◇ 조기교육 한다고 관계 망치고 '신뢰감 통장'이 텅텅 빈다면? 

지금은 잘 노는 게 잘 크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려다가도, 지금 논 ‘죄’로 초등학교 공부부터 뒤떨어진다면? 학습량이 확 느는 중고등학교 수업을 못 따라간다면? 그래서 좋은 대학 못 가고, 좋은 회사 못 들어가고, 결국 ‘나’처럼 매일 지난날을 후회하며 사는 ‘찌질한’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그러나 이런 얄팍한 불안을 간파했다는 듯, 이 책은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막연한 불안을 달랜다. “부모가 먼저 시작한다고 아이가 먼저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고, “아이가 의미 있게 받아들일 때 교육이 일어난다”(155쪽,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고 말이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왜 ‘영유아 사교육’이라는 세상의 덫에 걸린 것일까. 이걸 안 하면 애가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이 왜 있을까. 이런 걸 안 시키면 왜 ‘부모 노릇’ 못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됐을까. 이유야 많겠으나, 결국 질문의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공부 잘해서 학교에서 기죽지 않았으면, 성적 잘 나와서 좋은 대학에 다니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아쉬움 없이, 모자람 없이, ‘나’처럼 지나간 일에 후회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 아닐까.

애를 공부시키겠다는 욕심도 사실 아이를 행복한 어른으로 키우는 일, 아이를 사랑하는 일의 하나다. 그런데 지나치게 과열된 사교육 시장, 결국 대학 서열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공교육 시스템에 치여서 애도 어른도 제대로 크기 전에 자빠져버린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정작 애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라며 억울해하고, 애는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뭔데!”라고 화내는 상황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이 키우기’라는 게임에서 모아야 할 아이템은 아이와의 관계, 그리고 아이와의 추억입니다. 모아야 할 때 모아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절대 모을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때 ‘신뢰감 통장’에 잔고를 많이 만들어놔야 사춘기 때 빼서 쓸 수 있어요. 조기교육 한다고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고 신뢰감 통장이 텅텅 비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집니다.”(186쪽, 이남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모교육 강사)

◇ 지금 행복한 아이가 내일도 '30년 후에도' 행복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결국 ‘아이의 행복’이라는 단순하지만 늘 어려운 그 키워드를 믿어야 한다. ⓒ베이비뉴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결국 ‘아이의 행복’이라는 단순하지만 늘 어려운 그 키워드를 믿어야 한다. ⓒ베이비뉴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결국 ‘아이의 행복’이라는 단순하지만 늘 어려운 그 키워드를 믿어야 한다. 세 살에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학원비 내고 영어학원 다니는 어떤 집 애보다, 놀이터에서 흙 묻히고 노는 우리 집 애들이 더 행복할 것임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어야 한다.

지금 아이에게 “지금 조금 고생하면 30년 뒤 행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건 근거조차 없는, 정성스럽지 못한 거짓말이다. 아이는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행복할 수 있다. 내일 행복한 아이가 30년 뒤에도 행복할 수 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열세 명의 교육 전문가와 여덟 명의 기자, 그리고 사교육 걱정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일평생에 걸쳐 연구해온 사람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자, 이 책의 제목이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였다. 답은 나왔다. 공부 고민을 하지 않으면, 고민은 해결된다. 내가 가져가야 할 여러 가지 삶이 있으나, 부모의 삶만 놓고 봤을 때 이 삶의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

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그냥 노는 게 제일 좋고 행복하다는 데,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고 건강한 방향이라는 데, “아이는 억지로, 욕심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난대로 결대로, 양심으로 키워야 한다”(148쪽,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라는 데, 더 토를 달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위로가 됐던 문장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아이가 성공합니다. (…) 좋은 부모는 돈 많아서 사교육 많이 시켜주는 부모가 아니에요. 올바른 가치를 주는 부모지요. 그런 부모를 만난 아이가 부모 잘 만난 아이입니다.”(222쪽, 정윤경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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