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병원 온 아이에게 “학대당했니?” 몰래 묻는 미국  
아빠와 병원 온 아이에게 “학대당했니?” 몰래 묻는 미국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12.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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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 사회가 아동학대에 개입하는 법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공부하던 언니의 이야기다. 어느 날 그 언니가 주말에 요리를 하다가, 날카롭게 갈아놓은 식칼을 떨어트려 다리를 심하게 다쳤단다.

피는 철철 흐르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언니는 근처 살던 지인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언니의 연락에 부인은 아이와 집에 남고, 그 집 남편이 한달음에 달려와 언니를 차에 태워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남편도 아닌 사람과 병원에 도착한 지라 조금 어색해 보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병원 절차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기 다리를 다치게 할 수 있는지 믿을 수 없었던 탓인지 처음에는 간호사, 그다음에는 담당 의사, 그다음에는 또 다른 간호사까지 자기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더란다.

그러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학대 피해자는 아닌지, 어떻게 다치게 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며 조용히 물었다고. 반복해서 묻는 말에 아니라고 계속 설명하니 겨우 안심하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혹시라도 필요하면 나중에 보라면서 몰래 학대 상담 및 신고 안내전화번호가 적힌 종이까지 주머니에 넣어주었다고. 미국에서 이런 일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 학대 신고 의무 철저히 지키는 미국 사회

미국은 아동학대에 제도로 개입해 예방하고 처벌 수위도 무척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베이비뉴스
미국은 아동학대에 제도로 개입해 예방하고 처벌 수위도 무척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베이비뉴스

이번엔 유·아동에 관한 이야기. 이사 오기 전 살던 남부지역에서 들은 이야기다.

한 한인 가족의 아이가 롤러블레이드를 타다가 넘어져 팔을 심하게 다쳤다. 롤러블레이드 혼자 타러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나갔다가 다쳐온 아이를 보고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인지 아빠는 아이를 잔뜩 꾸짖고, 아이는 그 꾸중을 들으며 병원에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전형적으로 무뚝뚝한 부자여서 그랬던 건지 둘 다 말수가 좀 적었나 보다. 

의사와 간호사가 번갈아 들어와 따로 검사할 것이 있다며 아이를 아빠와 떼어놓고는, 아이에게 정확히 어떻게 다친 것인지 한참을 묻고, 다른 곳에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마음이 좀 놓인 아빠와 아들의 표정이 나아지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웃자, 그나마 ‘의심’이 풀린 모양새였다고.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들이 아빠에게 아빠가 아동학대 용의자로 의심받은 듯한 상황을 이야기하자, 아빠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다거나, 아이가 그런 질문을 받았다거나 하는 상황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미국 사회가 아동학대에 개입한 역사는 길다. 19세기 후반, 아홉 살 소녀 메리 엘렌(Mary Ellen). 메리의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메리를 맡겼지만 메리는 결국 고아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거의 인신매매에 가까운 방식으로 또 다른 가정으로 보내진 메리는 아동학대를 당하고, 이웃의 관심으로 겨우 구조됐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1874년, 메리를 학대하던 학대범을 처벌할 법안이 없었다. 그래서 그 학대범은 ‘동물 학대죄’로 법정에 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의 개입과 예방, 아동 인권 옹호를 다루는 정책과 제도가 생겼다.

1974년에는 아동 학대 법안인 ‘Child Abuse Prevention and Treatment Act (CAPTA)’ 를 제정해, 학대 및 방임의 위험에 놓인 모든 아동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책임을 확실히 했다. CAPTA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화, 의무교육과 치료지원, 연구기금 제공을 골자로 하는데, 이 때문에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경우, 교육기관의 스태프들이나 병원 관계자들은 무조건 신고를 할 의무가 있다.

관계자들이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이 법이 더 의미가 있다. 마땅한 법안이 없거나, 즉각적으로 사건을 다뤄도 되는 제도가 없어서 학대가 의심되는 데도 경찰조차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가정의 부모가 아이들만 집에 두고 잠시 외출했다가 아동방임죄로 곤란한 상황을 겪거나, 아이들만 차에 남겨두고 상점에 갔다가 체포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주(州)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아이에 대한 정신적 학대나 방임까지 중요한 문제로 다루는 미국의 의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아동학대, 미국에선 종신형인데 한국은 길어야 15년 

아동학대 범죄자에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피해 아동이 이웃의 관심으로 드러나길. 사진은 지난 가을의 끝, 우리 네 식구. ⓒ이은
아동학대 범죄자에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코로나로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피해 아동이 이웃의 관심으로 드러나길. 사진은 지난 가을의 끝, 우리 네 식구. ⓒ이은

아동학대범 형량도 미국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2016년 12월. 조지아주 지방법원은 22개월 된 아들을 더운 차 안에 방치해 사망케 한 남성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징역 32년을 추가로 선고했다. 아동학대에 의한 살인죄 형량은 주마다 다르나, 대부분 종신형 이상이 선고되고, 여기에 추가로 수십 년의 형량이 더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다섯 살 의붓아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수차례 내던진 끝에 숨지게 만든 아버지에게 징역 10년과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80시간을 선고했다. ‘원영이 사건’이라 불리는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의 가해자인 계모와 친부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7년과 17년 형을 받았다. 이들에게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가 적용됐기 때문에 가능한 형량이었다. 

한국의 현행 아동학대법에서는 아동이 사망에 이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권고 형량은 징역 4~10년, 질이 나쁜 경우에도 최대 징역 15년에 그친다고. 

우리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게 우선이지만, 이에 대한 처벌도 강력해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더 사각지대에 놓인 학대받는 아이들의 아픔과 고통이 드러날 수 있도록 이웃과 주변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제도로써 그 관심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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