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사람, 어른과 아이의 '기울어진 운동장'
차와 사람, 어른과 아이의 '기울어진 운동장'
  • 기고=최예지
  • 승인 2020.12.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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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로드 대장정 16] 최예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

아이들은 집에서부터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합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베이비뉴스는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어린이 통학로 안전을 위한 ‘그린로드 대장정’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어린이 안전 인식 개선을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통학로의 가장 주요한 이용 당사자인 아동의 이익은 다양한 이유로 선택의 순간마다 배제되곤 한다 ⓒ베이비뉴스
통학로의 가장 주요한 이용 당사자인 아동의 이익은 다양한 이유로 선택의 순간마다 배제되곤 한다 ⓒ베이비뉴스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중 학교의 통학관련 내용에 따르면, 통학거리는 관련 규칙상 1.5Km 이내로 하고 통학에 위험하거나 지장이 되는 요인이 없어야 하며, 교통이 빈번한 도로·철도 등이 관통하지 아니하는 곳에 설치할 것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통학거리는 도보 30분 정도로, 학교 통학로가 주간선도로 및 보조간선도로를 횡단하지 않게 설치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경기도의 경우, 경기연구원에서 발표한 이슈&진단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초등학생들의 통학시간을 분석했을 때 통학시간이 30분을 초과하는 학생 비율이 5.9%로, 수도권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통학시간이 긴 것은 원거리 통학을 의미하고, 원거리 통학은 도로를 횡단할 확률을 높이기에 사고 위험 또한 높을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아동이 살고 있는 지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차선이 많은 도로와 인접해 있는 초등학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북부아동옹호센터에서 실시한 통학로 실태조사와 아동참여활동에 참여한 경기북부의 모 초등학교는 조사 결과 많은 학생이 집에서 학교로 오기 위해 왕복 6차선의 넓은 도로를 횡단해야 했다.

이에 대해 평소에 통학로를 이용할 때 드는 생각을 물어보니 아이들은 “차들이 레이싱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아이들이) 다니는 길인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통학로 아동참여활동 사진 ⓒ최예지
통학로 아동참여활동 사진 ⓒ최예지

통학로·어린이보호구역 내의 위험은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통학로가 아동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다양한 법안과 규칙이 생겨나고, 예산이 투여되고 있지만 학교를 지을 때, 어린이보호구역을 지정할 때, 제한 속도를 정할 때, 안전을 위한 시설물을 설치할 때를 생각해보자.

매순간 통학로의 가장 주요한 이용 당사자인 아동의 이익은 다양한 이유로 선택의 순간마다 배제되곤 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 아동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충돌하는 순간, 우리의 선택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회 속에서 특정 집단만을 위한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아동은 단순한 이익집단이 아닌, 보호의 이유가 명확한 대상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동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충돌하는 순간에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통학로에 존재하는 위험은 그런 순간에 아동을 ‘조금만 나중에, 조금 있다가’로 미뤄둔 결과물이 아닐까? 경기도의 사례를 예로 들었지만,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통학로에 있어 UN아동권리협약 3조에 명시된 ‘아동 이익 최우선’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흐릿하기만 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로,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나 질서가 있을 때, 그 상대방은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편에서 공을 차는 것처럼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혹자는 강화된 규제로 인해 통학로에서 불리한 것은 운전자이고, 운전자가 통학로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신체적 조건은 성인과 같지 않고, 자동차는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통학로에서 차와 마주하는 아이들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아래쪽에 있다는 것에서 생각을 시작한다면, 통학로 내에서의 규제는 그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초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기울어진 통학로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손 내밀어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잠시 힘이 든다고 손을 놓아버린다면 아이들은 끊임없이 위험과 마주해야 한다.

‘아동 이익 최우선’이라는 UN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기억하며, 적어도 아동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손을 내밀 준비가 돼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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