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 산타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법
'무자녀' 산타가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법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0.12.30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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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클라우스’(2019)

*이 칼럼에는 영화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른이 된 이후로 산타에 대해 잊고 살았다. 산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쌍둥이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 때문이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돌도 안 된 쌍둥이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나갔고, 두 번째 크리스마스는 정식으로 아기들 선물을 챙겨보기로 했다. 아직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기들은 일어나자마자 문 앞에 준비된 선물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성탄절의 의미가 뭔지, 산타 클로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기들은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온몸으로 행복을 발산했다. 부모되는 기쁨에는 이런 자잘하지만 태산 같은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산타인 척하면서 성탄절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산타에게 받는 기쁨보다 내가 직접 산타가 되는 기쁨이 더 크구나!

영화 ‘클라우스’는 산타의 기원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애니메이션이다. 산타는 왜 빨간 옷을 입는지, 왜 굴뚝을 통해 집에 들어오는지,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루머(?)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왜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지, 산타의 온갖 디테일이 어떻게 형성된 건지 짚어낸다.

황량하고 으스스한 스미어렌스버그로 쫓겨난 우체부 제스퍼가 클라우스를 만나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Netflix
황량하고 으스스한 스미어렌스버그로 쫓겨난 우체부 제스퍼가 클라우스를 만나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Netflix

그 중에서도 내 가슴을 쿵, 하고 떨어뜨린 설정은 ‘클라우스’, 일명 산타 클로스는 무자녀 독거노인이었다는 것. 클라우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를 기다리지만 끝내 아기는 오지 않고, 아내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홀홀단신 산 속에서 오랜 세월 은둔하던 클라우스는 우연히 이 마을의 우체부 제스퍼를 통해 동네 어린이의 그림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자기가 만든 나무 장난감을 남몰래 전달한다. 클라우스에게 편지를 쓰면 집에 선물이 도착한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다. 클라우스는 자신이 만든 장난감을 동네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한다. 그 장난감이 어떤 장난감인가. 자신의 아이를 기다리면서 만들다가 이내 집을 가득 채워버린, 고통스러웠던 기다림의 징표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를 멀리서 몰래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제스퍼와 클라우스. ​ⓒNetflix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를 멀리서 몰래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제스퍼와 클라우스. ​ⓒNetflix

난임 시절,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아파트 우리 동 옆에 커다란 어린이집 건물이 있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겐 오지 않는 아기, 저 어린이집에는 그 아기들이 날마다 들락거릴 텐데 나는 무심하게 그 광경을 지나칠 수 있을까.

아동학대 뉴스를 보면 우리집에는 주지 않는 귀한 생명을 왜 저런 집에 보내는 걸까, 화가 났다. 임신만 되면 아동학대 피해자를 도와주는 단체에 정기 기부를 하겠다는 다짐을 혼자 비장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부는 조건 없이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되는 거지,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기부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끝도없이 옹졸하고 작아지던 시절이었다.

아. 그런데 클라우스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도, 손주도 없는데 어린 아이에게 뭔가를 주는 기쁨이 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못난이 시절을 힘겹게 거쳐 쌍둥이의 생물학적 부모가 된 후에야 얻은 깨달음인데! 클라우스는 자신의 장난감 창고를 모두 털어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진심으로 주는 걸 즐긴다.

스미어렌스버그의 아이들은 클라우스의 선물 덕분에 아이답게 뛰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는다.ⓒNetflix
스미어렌스버그의 아이들은 클라우스의 선물 덕분에 아이답게 뛰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는다.ⓒNetflix

클라우스의 선물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 마을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진정한 배려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을 어른들은 엘링보와 크럼 가문끼리 싸우느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다. 아이들을 얼마나 방치해두냐면, 애들을 학교도 보내지 않아 학교가 생선 가게로 바뀔 정도다. 아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배움의 즐거움, 놀이의 기쁨이 뭔지 모른다.

클라우스의 선물을 받고 아이들은 변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귀담아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가문에 상관없이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행복이 뭔지 알게 된다. 클라우스는 그동안 어른들이 자기들 싸움에 골몰하느라 방임해둔 아이들에게 진짜 어른이 되어준 것이다.

내게는 아동 학대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아이들을 성인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이자 우리 사회의 엄연한 일원으로 존중할 줄 아는 비혼 혹은 무자녀 친구들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을 다시 떠올렸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부터, 이미 ‘모든 아이들의 어른’이 되어주고 있던 친구들, 내 주변의 ‘클라우스’들.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올해 산타가 되면서 느낀 기쁨은 소위 ‘내 새끼’에 대한 사랑에 그쳐버린 것 아닐까 싶다. 새해엔 나도 조금은 클라우스를 닮은 어른이 되고 싶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육아 퇴근 후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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