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누가 우리 애한테 ‘장애’가 있대?” 
“감히 누가 우리 애한테 ‘장애’가 있대?”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1.01.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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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부모에게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라"는 말

이번 글은 제가 처음 느림을 이야기한 부모에게 전하는 사과와 위로의 글입니다. 

늘 선택의 연속인 육아, 특히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매우 혼란스러우실 테지요. 그런 분들과 오늘은 유난히 지나가는 길, 따뜻한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 입소 상담 온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 보여서, 장애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폐성 장애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네요" 라고 말하니, 수화기 넘어로 아이 엄마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탁.탁. ⓒ베이비뉴스
"아이가 자폐성 장애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네요" 라고 말하니, 수화기 넘어로 아이 엄마 애간장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탁.탁. ⓒ베이비뉴스

아이는 네 살이었다. 한 살 어린 동생과 어린이집에 왔다. 아이는 큰애가 말이 느린 것 같아 지역 육아정보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으나, 큰 문제 없으니 잘 키워보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

네 살 아이는 유독 말이 없었다. 나와 아이 부모가 상담하는 내내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편식이 심하니 밥은 먹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봤을 때 이 아이는 발달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단지 말만 느린 게 아니라, 교사의 지시를 따르기 어려워했고, 장소가 바뀔 때마다 격렬히 저항했다.

아이의 생활에 대해 몇 차례 물었다. 아이 엄마는 왜 그런 걸 묻는지 의아하단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전 기관에선 아무 말 없었는데, 왜 여기에서만 유난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간단한 아동발달 검사지로 발달검사를 하는 것까지 동의를 구하고 검사를 진행했다. 아이는 전 영역에서 지연을 보였고, 조기개입이 필요해 보였다. 굳이 ‘자폐’라고 규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감각적 예민함이나 몇 가지 특성이 자폐성 장애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아이 부모에게 전했다.

물론 어릴 땐 장애라고 확언해서도 안 되고, 의사가 아닌 교사 입장에선 더더욱 그럴 필요도 없지만, 감각통합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여,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원장님, 심장이 멎는 것 같아요.”

아이 엄마의 울음 섞인 말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숨이 탁.탁. 왈칵 눈물이 쏟아지며 나 역시 숨쉬기 힘들었다. 나도, 이런 상담을 해야 할 땐 고통스럽고, 아프다.

감정을 추스르고, 이제 아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아이는 어떻게 자랄지, 느린 아이도, 결이 다른 아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좀 더 넓게 보고 잘 키워보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를 나아지게 할 순 없지만, 늘 고민하겠다고.

다만 아이는 특별한 지원이 필요해 보이니, 비장애아반 말고 장애아반 정원이 생기는 내년에 장애아반으로 들어와서, 열심히 함께 키워보자고.

◇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란” 말, 그것 또한 폭력이었음을 

아이의 장애에 대해 처음 이야기 하는 순간, 부모는 억장이 무너진다. ⓒ베이비뉴스
아이의 장애에 대해 처음 이야기 하는 순간, 부모는 억장이 무너진다. ⓒ베이비뉴스

그런데, 다음날 아이의 부모가 화가 난 채 어린이집에 방문했다 했다. 교사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당장 퇴소할 테니, 아이의 짐을 챙겨 달라고 했단다. ‘그 어떤 전문가도 내 아이에게 장애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감히 어린이집 원장 따위가’ 하는 마음이었을 테다.

부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한 선생님은 그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안절부절못했다. 하필 내가 없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의 의도를 설명하고 의견 나눌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선생님을 다독였다. 10년 넘게 장애통합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이런 일이야 비일비재했다. 아이의 느림을 이야기하거나, 아이의 장애를 이야기하는 순간, 듣는 사람도 고통스럽지만 말하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이 아린다. 물론, 부모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보내고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눴다.

“저분들 얼마나 후회하시려고….”

“어느 기관을 보내든 지금 특수교육이 지원돼야 할 텐데, 어디 보내시려고 그러실까요?”

“조기 중재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런 감정싸움으로 아이의 하루를 허비하는 게 너무 아깝네요.”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내 편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니 마음이 곧 잔잔해졌다. 하지만, 놓친 게 있었다. 아이의 느림을, 다름을, 장애를 인정하라고 하는 ‘폭력’은 바로 내가 먼저 휘둘렀다. 

우리는 아이들끼리 가해와 피해가 발생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사자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네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지나가다가 그냥 부딪혀서 장남감이 부숴진 것이라고 해도,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거야. 이 친구는 그냥 네가 부순 것처럼 느꼈을 거야.”

장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순간이 내가 이렇다. 아이 편에서 이야기한다고, 수백 번 다짐 해도 듣는 부모는 늘 아프다. 특수교육을 정말 오래 해왔음에도, 부모가 아프지 않게 아이를 지켜내는 일은 늘 미숙하다. 아이의 상태를 솔직히 이야기한 게 잘못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아팠다면 나는 사과를 해야 했다.

선생님도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되고 내 아이의 성장을 본다. 때로는 속상한 일도, 때로는 화가 나는 일도 있다. 아이와 함께 있음에 행복하지만, 육아가 고되지 않고 365일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거짓말일 테다. 아이에게 하는 나의 모든 행동은 사실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옳을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느림을 이야기한 나에게 보여준 그 부모의 모습 역시 ‘사랑’이었다. 아이를 장애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사랑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장애는 두렵다. 몰라도 두렵고 알아도 두렵다. ‘괜찮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장애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무지를 함께 이겨내며 그 속에서 소소한 삶의 행복을 찾도록 함께 해줄 수는 있다. 크게 보면 희로애락이 있는 우리의 삶은, 장애인의 삶과 장애가 없는 여느 삶과 다를 바 없지만, 또 가까이서 내 삶이 되긴 여전히 두려운 게 ‘장애’다.

부모는 그 두려운 장애에서 고작 네 살 된 아이를 지켜내고 싶었을 테다. 부모의 선택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우리는 그 부모의 마음마저 “틀렸다”라고 쉽게 이야기하지 말자. 나는 그렇게 선생님들에게 이야기했다.

◇ 부모가 아이를 위해 늘 ‘최선’을 선택한다는 것, 알고 있어요 

어떤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오는 시기가 있다. 유아기, 아이의 장애를 처음 만난 그 시기가 그런 듯하다. 장애와 비장애.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 수용과 거부.

처음 나와 다른 여러 이들을 만나는 사람은 극단적인 두 가지 가치만 들이미는 듯하다. 그 사이에 다양한 생각이 있지만, 공감의 포인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게 만든다. 날카로운 양쪽의 끝, 한쪽 끝에서 한쪽 끝을 바라보는 2차원에 사는 것처럼.

부모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 후회의 순간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지혜롭게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다시 돌아와 이야기할 때,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후회하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더 커져 있다. 

부모가 다시 찾아와 들려주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혹은 잘못 선택한 치료나 교육에 대해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아프다. 지난 선택에 대한 후회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아이를 보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어떤 선택을 해도, 그 순간만큼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관한 결과만 보지 말고, 함께 한 과정에서 소소한 의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실패한 경험’은 없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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