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이기 전에 다양한 꿈을 가진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남자, 여자이기 전에 다양한 꿈을 가진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1.03.02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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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장난감의 여성다움, 남성다움의 고정관념을 깨려는 노력

미국의 마텔사(Mattel)는 바비(Barbie)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켄(Ken)을 만드는 유명 장난감 회사이다. 최근 미국의 한 뉴스에 따르면 바로 이 마텔사가 올 9월경에 어느 성으로도 쓰일 수 있는 중성적인 인형(Gender-neutral doll)을 출시한다고 한다. 중성적인 인형이라니 어리둥절할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인형을 갖고 노는 아이의 결정에 따라서 이 인형은 남자 인형이 될 수도 있고 여자 인형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성이 때때로 변하는 존재일 수도 있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남자 아이들의 장난감 혹은 여자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구획 짓고 분리해서 라벨링(labeling)하는 것에 의문과 반감을 가진 부모들의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그리고 2010년대 이후부터 이러한 부모들의 입장이 본격적으로 조명되면서 남자 아이 장난감, 여자 아이 장난감을 구분 짓는 것 자체의 불합리성이 문제시 됐다. 결국 미국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 타깃(Target)이 2015년에 장난감 섹션에 남자아이 장난감, 여자 아이 장난감을 나누던 라벨을 없앴다. 뒤이어 디즈니사에서도 2017년 아이들의 코스튬에 남자아이 것, 여자 아이 것으로 구분 지어 상표를 달던 것을 폐지했다. 마텔 사가 출시하려는 중성 인형의 경우는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젠더의 유동성, 젠더라는 것이 실상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는 부분까지 반영한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엄마들처럼 나 역시 나의 아들, 딸이 아들 답게, 딸 답게가 아니라 아이 답게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은
다른 많은 엄마들처럼 나 역시 나의 아들, 딸이 아들 답게, 딸 답게가 아니라 아이 답게 그리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이은

아이들은 사실 장난감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자로서 나 역시 성 역할과 젠더의 개념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아들인 큰 아이에게 바비를 사주기도 하고 딸인 작은 아이에게 총이나 로봇을 사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엄마인 내가 무언가를 일정하게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편견 없이 가지고 놀고 싶은 것, 또 관심이 가는 것을 택하고 또 접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동시에 좋아하는 장난감 중에 하나가 바로 동물 인형이다. 두 아이 모두 보들보들한 천의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는 인형을 참 좋아한다. 주방 놀이를 하면서 냄비에 마카로니(주로 팬트리에 넣어 놓은 진짜 마카로니를 갖고 가버린다. 그래서 번번이 막상 맥앤치즈 요리를 하려면 재료가 없다)를 넣고 국자로 젓는 것을 좋아한다. 둘 다 로봇을 참 좋아한다. 한국에서 이모가 보내 준 리모컨으로 움직일 수 있는 벌레 로봇은 두 아이의 요즘 말로 ‘최애템’이다. 솔직히 작은 아이는 징그럽다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까르륵 까르륵 웃으며 한참 잘 가지고 논다.

비단 장난감뿐만 아니라 참 많은 것들이 우리 아이들이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결정되고 또 강요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한국에서 축구 교실에는 여자 아이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주짓수 도장에도 여자 아이는 거의 없다. 발레 클래스에는 남자 아이가 거의 없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큰 아이에게 “사나이가 왜 울어?” 하고 한다든지 나도 모르게 겨울에 치마를 입은 상태로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작은 아이에게 “아가씨가 이게 뭐예요?” 한다든지 스스로도 놀랄만한 발언을 하고는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사나이'니 '아가씨'니 얼마나 어이없는 활용인가. 그저 우리 아이가 왜 우는지 궁금하고 우리 아이가 추운 날씨에 옷을 더 잘 추슬러 앉았으면 하는 것 아닌가. '남자'이고 '여자'이기 전에 그냥 한 아이이고 나의 소중한 자식인 것을 더 먼저 말해줘야 하는데 무심결에 말이 그렇게 나가는 거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남녀 구분에 사로잡힌 꼰대인가보다.

남자가 왜 설거지를 하냐고 목소리를 높이셨던 우리 시어머니처럼 내 아들을 키울 생각은 없다. 날 참 자유롭게 키우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그래도 목소리가 차분하고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친정어머니 밑에서도 나는 낮은 목소리를 가진, 웃음소리가 가끔 호탕 해지는 여성으로 자라났다. 우리 아이들도 본인이 느끼는 대로 그리고 본인이 믿는 대로 자신의 가능성을 무한히, 편안히 펼쳤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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