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 후]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제발, 그만 괴롭혀 주세요”
[단독 그 후]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제발, 그만 괴롭혀 주세요”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3.10 09: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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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라는 낙인에 정신질환까지...새 소장 부임하면서 해결 국면으로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육아정책연구소장 운전기사로 일하던 최홍범 씨를 만나 공익신고 후 겪은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육아정책연구소장 운전기사로 일하던 최홍범 씨를 만나 공익신고 후 겪은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순간순간 후회도 많이 해요. 지난해 8월 정신병동 들어가기 전에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어 유서도 썼었어요. 오랫동안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혀 억압당하다 보니 위축이 되더라고요. 외부에 나가면 안 그러는데 회사만 가면 위축되고 그렇게 힘들었어요.”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육아정책연구소 기관장 차량 운전기사 최홍범 씨의 말이다. 2017년 당시 육아정책연구소장은 최 씨가 운전하는 관용차로 교회 120번, 마사지숍 10번, 골프연습장 6회, 동창 모임 등 업무와 관계없이 주말과 야간에도 이용했다. 최 씨는 소장의 비위를 언론에 알리고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를 했다. 국무조정실 감사 결과 최 씨의 공익신고는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관련 기사: [단독] '문캠프' 출신에 기대했지만... 9개월간 책상만 지킨 공익신고자)

당시 소장이 받은 징계는 감봉 1개월이 전부다. 문제의 소장은 3년 임기를 다 채우고 연구소를 떠났다. 그 이후, 공익신고자 최홍범 씨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공익신고 두 달 뒤 업무에서 배제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운 소장인 백선희 씨가 왔지만, 최 씨는 내부고발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고통은 계속됐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정신병동 입원치료를 받았다. 여전히 그는 업무에 복귀하지 못한 채 우울증과 불안, 수면장애를 앓으며 약에 의존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로부터 최홍범 씨의 인격권을 침해해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됐다며 ‘기관경고’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최 씨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5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최 씨를 만나 공익신고 후 겪은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2966여만 원 초과근로수당 소송 승소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육아정책연구소에 공익신고자인 운전원 최홍범 씨에 대해 초과근로수당 2966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육아정책연구소에 공익신고자인 운전원 최홍범 씨에 대해 초과근로수당 2966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최 씨의 근황부터 물었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추석 연휴 이후부터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펜션에서 지내고 있다. 급여를 받는 건 아니고 펜션을 관리해주는 대신 숙박을 제공받는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최 씨의 가족들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는데, 최 씨는 순간순간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등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 집을 떠나왔다.

“지난해 8월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하루 10만 원 정도 병원비가 나왔어요. 병원비를 감당하기도 어렵고…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들에게 저도 모르게 순간순간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가족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연구소에서 마지막 출근한 날을 물었다. 지난해 7월 중순경으로 기억했다. 최 씨의 병이 악화된 데는 지난해 6월 열린 연구소 임시 월례회의 영향이 크다. 이 회의에서는 지난해 5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최 씨가 청구한 초과근로수당(연장·야간·휴일) 청구사건에 대해 최 씨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 논의됐다. 법원은 연구소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미지급한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약 2966만 원을 최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관련 기사: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3000만 원 초과근로수당 소송 승소)

판결 내용은 6월 초 언론에 보도됐고, 연구소는 열흘가량 지난 뒤 전 직원이 참여하는 월례회의를 열어 예산 등을 공개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최 씨에게 비용을 지급해야 해서 다른 직원들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연구소 측은 언론에 소송 결과가 보도돼 직원들의 불안감이 가중되는 가운데 회의를 열어 정확한 사실을 알리려 했던 것이고, 경영진의 발언 또한 예산구조를 설명한 업무상 적정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연구소가 이 사건 회의를 개최해 공개적으로 논의한 행위는 최 씨에게 심리적 충격과 압박을 줘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한 것”이라며 최 씨의 손을 들어줬다.
 
◇ 인권위, 공익신고자 인격권 침해한 육아정책연구소에 ‘기관경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게 인권침해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소에 대해 ‘기관경고’ 하기를 권고한다”고 지난해 11월 24일 주문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게 인권침해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소에 대해 ‘기관경고’ 하기를 권고한다”고 지난해 11월 24일 주문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인권위는 연구소의 6월 임시 월례회의 사건에 대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게 인권침해 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연구소에 대해 ‘기관경고’ 하기를 권고한다”고 지난해 11월 24일 주문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언론에 보도된 소송결과에 관해 직원들에게 설명한다는 명목하에 최 씨로 인해 연구소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말을 한 것으로 이로 인해 최 씨가 전체 직원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이 조성됐다”며 “이는 ‘부당한 갑질’”이라고 판단했다.

또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직에 누를 끼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개인에게 심리적 충격과 피해를 초래하고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고 실제 최 씨가 이 사건 회의 이후 직장 내 스트레스로 6개월 정도의 병가 및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면서 “이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대한민국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권위의 ‘기관경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난 8일 인권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느 한 명이 책임질 일이라기보다는 기관 전체가 최 씨에 대해 인권침해를 했다는 데 대해 경각심을 줘야 한다는 판단에서 책임자 징계보다는 경고의 의미를 주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기관경고 권고 수용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기자가 구체적으로 묻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측에서 이 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회신했고, 한 달 전쯤 내부적으로 불복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 관계자는 “기관에서 권고를 수용 안 하더라도 (인권위가)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에 굳이 결정을 뒤집으려고 하는 절차를 밟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내부에서 판단해 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회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용하겠다고 회신이 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권고이기 때문에 그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 공익신고자의 바람은? “이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것”

경기도 한 병원의 의료진은 공익신고자 최홍범 씨가 현재 고도 우울 불안 수면장애 상태인 것으로 판단했다. 최 씨는 여전히 약에 의존해 지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경기도 한 병원의 의료진은 공익신고자 최홍범 씨가 현재 고도 우울 불안 수면장애 상태인 것으로 판단했다. 최 씨는 여전히 약에 의존해 지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앞서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연구소에, 최 씨의 출장신청 및 초과근무신청을 승인하고 미지급된 근무지 내 출장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할 것을 요구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연구소는 인권위와 권익위의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이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갈등을 증폭시킨 백선희 소장은 임기를 마치고 지난 1월 14일 퇴임했다. 지난 1월 19일 박상희 소장이 새 소장에 임명돼 업무에 들어갔다. 박 소장은 본인이 임명되기 전에 있었던 공익신고자 최 씨와 관련한 일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박 소장은 지난 8일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인수인계 시 업무보고받은 부분에 대해 들여다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소장은 지난 3일 최 씨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검토에 나섰다.

우선 기관경고에 대해, 박 소장은 “인권위와 권익위 행정소송을 모두 취하한 상태다. 더 진행하지 않고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2966여만 원 초과근무수당 지급 판결에 대한 입장에 대해선, “난감한 상황이다. 기관에서 임의대로 할 수 없고 정부 부처와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나 혹은 더 많이 기관에서 구성원들이 분담할 가능성도 있다. 원만하게 잘 해결해야 하는데 이 돈을 누가 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슬기롭게 구성원들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익신고자 최 씨에 대해서도 “우선 건강 회복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병가를 기관에서 수용하기로 했고, 만나 이야기 들어 보니 공간에 대한 두려움도 있더라. 차차 더 만나면서 건강도 회복하고 본인의 거취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씨의 바람은 무엇일까. “욕심이자 바람이라면 평범하게 이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는 겁니다. 그동안 조직 내에 저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새 소장님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누면서 원래대로 일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중받는 느낌, 배려를 느끼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 올해 내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요.”

지난달 10일 최 씨는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장기간 스트레스가 소실되지 않는 상황에서 만성 우울로 고착돼 가는 양상으로 보인다. 2월 8일 제출한 자가척도상 고도 우울 불안 수면장애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을 받은 상태다. 최 씨는 지금 앓고 있는 이 병에 대해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의사, 변호사가 모두 저한테 산재라고 해요. 인정받게 되면 적어도 더는 못 괴롭히지 않을까요. 이제는 정말 덜 괴롭힘 당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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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km**** 2021-03-25 00:33:45
힘내세요!!
같이 견뎌내어 이기죠!!

leekm**** 2021-03-25 00:31:21
저도 공익제보를 해서 경찰이 조사증인데요. 피의자로 조사를 받로 있는 사람이 저와 소속단체의 사업에 악의적인 민원을 계속 넣고 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허위사실이더라도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다며 계속 조사 중입니다. 그로인한 스트레스가 엄청납니다.
국민권익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가 권익위가 아닌 다른곳에 신고를 해서 보호해 줄 수 없다네요.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있으나 보호해 줄 국가가 없네요.
이제 5개월차, 정신적 고통으로 정신과 약물과 수면제는 고스란히 공익신고자의 몫인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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