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주는 '고사리'가 올라오는 중입니다"
"지금 제주는 '고사리'가 올라오는 중입니다"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1.04.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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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1. 올해도 어김없이 '제주 고사리 따기'
4월 초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제주 들녘에서는 야생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재원
4월 초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제주 들녘에서는 야생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김재원

4월 초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제주 야생 고사리를 꺾는 시기입니다. 일 년 중 이때만 제주 고사리를 채취할 수 있는데요. 제주 고사리 줄기는 꺾어도 아홉 번까지 새순이 돋아난다고 합니다. 제주 분들 말씀으로는 5월 하순이면 고사리 잎이 펴버리고 줄기가 단단해져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지금 부지런히 따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사리 채취가 시작되면, 제주에는 비가 자주 내리는데 이 비를 '고사리 장마'라 부릅니다. 고사리를 땅속에서 쑥쑥 키워낸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고사리 장마는 방금 채취한 고사리도 다음날 같은 자리에 가면 다시 자라게 하는 신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밤에 비가 내리면, "고사리 장마를 머금고 얼마나 많은 고사리가 고개를 내밀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른 새벽 고사리를 따러 출발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되면 '5.16도로', '금백조로', '번영로', '남조로', '평화로'부터 중산간(해발 200~600m 사이의 마을)으로 연결되는 시골도로마다,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지 마세요', '이곳은 고사리로 인해 길 잃는 사고가 많은 지역입니다'와 같은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근처에는 반드시 등짐을 가득 짊어지거나, 고사리 따기 전용 앞치마와 장화를 쓰신 분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기가 되면 제주도가 들썩(?)거릴 정도로 새벽부터 차량들과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주 고사리철에는 도로 갓길에 주정차 된 차량이 많은 지역이 고사리가 많을 확률이 높다. ⓒ김재원
제주 고사리철에는 도로 갓길에 주정차 된 차량이 많은 지역이 고사리가 많을 확률이 높다. ⓒ김재원

그러나 막상 주변 사람들에게 "고사리 좀 꺾을만한 곳 좀 알려 달라" 이야기해 보면, "어디 어디쯤 가면 많다" 정도의 두루뭉술한 답변뿐이었지 정확한 주소지를 알려주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먼저, 이분들도 정확한 주소를 몰라서입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지를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익숙하게 가던 곳을 가기 때문입니다. 실제 동행하여 고사리 채취 지점에 가보면 이곳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한 지역이 많고, 길안내기상에 정확한 주소지가 나오지 않거나, 도로가 지도상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주소지를 말해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 철 고사리 채취로 수입을 올리는 분들이 있어, 자신만 아는 고사리 채취 지점이 노출되는 부담 때문에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얄밉게 생각하는 것보다 영업 비밀(?)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제주살이 4년 차가 되다 보니, 저 역시 나만의 고사리 채취 지점이 몇군데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곳도 있고, 고사리철에 여기저기 다니다가 무작정 고사리가 있을법한 곳을 살펴보며 찾아낸 곳도 있습니다.

제주 야생 고사리. ⓒ김재원
제주 야생 고사리. ⓒ김재원

이곳에서는 고사리가 아직 잎이 피지 않고 동그랗게 말린 새순을 꺾습니다. 고사리를 잡아서 최대한 아래 줄기 부분을 잡고 톡톡 소리가 나도록 옆으로 젖히며 꺾는데 처음에는 쉬워 보여 막 꺾다가 보기 안 좋게 채취되어 아까운 고사리를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중에는 자꾸 연습하다 보니 잘 되었는데요. "고사리 꺾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 직접 경험해 보면 이해가 됩니다. 이 녀석을 찾아 꺾는 맛이라는 게 정말 좋습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해서 시야에 들어오는 고사리가 몇 개씩 있으면 가까운 것부터 꺾은 뒤에 얼른 미리 봐두었던 다른 고사리를 꺾고, 그런 식으로 꺾는 재미에 쭉쭉 전진하다 보면 어느덧 들판 정중앙에 와 있거나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뚝뚝 끊는 맛에 지친 줄도 모르고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앞으로만 전진해 나가다 보면 길을 잃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고사리 채취할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보조배터리와 생수 정도는 꼭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호루라기 같은 경우에는 무겁지 않으니 주머니에 챙길 수 있으면 좋습니다.

고사리 장마를 머금고 부쩍 자란 제주 고사리. ⓒ김재원
고사리 장마를 머금고 부쩍 자란 제주 고사리. ⓒ김재원

고사리 철에 제주에 머물고 계시다면 제주고사리를 찾아 여러 들판과 오름 등으로 나가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사리 해장국'이나 '고사리 육개장'도 추천합니다. 비주얼 때문에 주저하시는 분이 있지만, 독특하고 개성있는 맛이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 분도 '갈칫국'이나 '접착뼈국'과 같은 정통 제주 음식보다는 괜찮으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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