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정말 가정의 달일까?'
이상한 말이겠지만 나는 요즘 자꾸 이런 질문이 맴돈다. 최근에 나는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의 선물을 챙겨야 했고, 곧이어 있을 어버이날을 위해 양가 부모님들을 위한 선물과 식사 등을 준비하고, 스승의 날과 다른 기념일까지 고민하고 있다. 남편조차 며느리인 내가, 엄마인 내가 해주길 더 바라는 그런 고민들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남이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가정일과 사회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에게는 더욱 큰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역시 5월은 가장 바쁘고 잔인한 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의 장난감을 함께 고르러 매장에 갔더니 더욱 황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 코너와 파란색 코너로 거의 양분화가 된 듯 보이는 매장 전경부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놀잇감을 마치 편 가르듯이 구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역할 놀이 캐릭터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청소, 빨래, 요리 장난감 등인데 이러한 역할 놀이 완구들은 패키징부터 여성 캐릭터들로 가득했고, 심지어 대놓고 ‘엄마와 함께해요’, ‘엄마 역할 놀이’라는 문구도 쓰여 있었다. 설상가상 아이가 조금씩 한글을 읽을 수 있다 보니 그것들을 보고 결정 지어질 선입견이 두렵기까지 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이런 장난감은 여자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직 성장하는 시기라 점점 본인의 성(性)에 대해 뚜렷하게 알게 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역할을 배워가는 시기라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규정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고 위험한 일은 아닐까?
실제로 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만 3세에서 7세 정도 시기에 아이들이 성 역할, 혹은 성 정체성을 갖게 되며,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사주냐에 따라 학습된다는 연구들이 상당 부분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특별한 날인만큼 본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을 사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의 성별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이런 후회와 반성이 밀려 든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아이 손을 이끌고 장난감 매장에 들어서면 인형, 혹은 여성이 한다고 생각해 온 역할 놀이 장난감 등이 몰려 있는 코너는 아예 갈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 요리사, 여성 경찰과 소방관 등 직업에 남녀 역할이 무너지고 있는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입견과 관습은 아직 한참 뒤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빠, 엄마 평등하게 육아와 가정일에 참여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는 현재 사회의 모순된 모습이 아닐까 싶어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어쩌면 내가 자초한 엄마 역할! 이제는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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