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밖에 구름 조각이 비처럼 내리고 있어”
“엄마, 밖에 구름 조각이 비처럼 내리고 있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5.17 1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깨달음 육아] 나는 상상도 못할, 낭만의 순간을 선물해준 아이

"엄마, 엄마... 지금 밖에 구름 조각이 내려. 비처럼. 이거 뉴스에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전화를 건 아이는 짐짓 흥분하는 목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뭔가 솜뭉치 같은 것이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설마 이게 정말 구름 조각인가? 싶었지만, 점점 이건 절대로 구름 조각일 리 없다는 확신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하지만 설렘과 흥분이 가득한 아이에게 ‘무슨 소리야, 이게 어떻게 구름이니?'라고 말하기가 어쩐지 좀 망설여졌다. ‘구름 조각이 내린다’는, 나는 상상도 못할 낭만의 순간을 선물해 준 아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 순간의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는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목소리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때 겨우 생각해낸 것이 민들레였다.

"아, 엄마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민들레꽃씨가 날리는 거 아닐까?"

"아냐, 그거 아냐."

화단에 핀 민들레. ⓒ최은경
화단에 핀 민들레. ⓒ최은경

‘그거 맞는데...’ 속으로만 말했다. 전화기 상으로 아이는 내 말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친구들과 놀아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들으니 옆에 있던 아줌마가 민들레꽃씨라고 말해주었단다. 그렇게 들으니 그런 것 같더라나?

속에서 발끈했다. 왜 엄마인 내 말은 믿지 못하는 건데!!! 얄밉긴 했지만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구름 조각이 내린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서다. 이토록 귀여운 아이의 상상력이라니. 민들레꽃씨가 날릴 때마다 ‘구름 조각이 내리고 있다’는 열한 살 아이의 말이 자꾸 생각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생각난 그림책이 바로 <민들레 민들레>다.

제목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심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그림책. 2005년에 나왔지만, 지금 읽어도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책. 민들레는 싹이 나도 꽃이 펴도 민들레라는 이야기. 나무 아래 피든, 지붕 위에 피든, 콘크리트 사이에 피든 민들레라는 이야기. 씨가 맺혀 바람에 훅 하고 날아가도 민들레라는 이야기는 단순히 민들레의 생태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림책의 속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앞표지 속지에는 머리를 땋은 어린이, 양갈래 머리를 한 어린이, 파마를 한 어린이, 주근깨가 있는 어린들 다양한 어린이들(세어보니 모두 18명이다)이 그려져 있다. 또 뒷표지 속지에는 그 아이들이 그렸을 것만 같은 수많은 민들레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세어보니 모두 18개이다). 민들레의 생애를 전하면서 동시에 나다움에 이야기 하고 있는 그림책이 바로 <민들레는 민들레>인 거다. 이 모든 민들레가 민들레이듯, 이 아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책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의 말대로 라면 '구름 조각이 내린다'는 아이도, 온라인 수업 할 때 딴짓하는 아이도, 밥은 조금 먹고 아이스크림은 하루 두세 개씩 먹는 아이도, 씻는 걸 너무 싫어하는 아이도, 숙제는 꼭 잠자기 직전에 하는 아이도 새삼 모두 내 아이구나 싶다. 식탁 모서리에 발을 부딪혀 ‘으악’ 소리를 낸 나에게 “엄마 괜찮아”라고 물어주는 아이도,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안녕히 잘 주무세요” 하고 인사하고 가는 아이도, 무심한 언니 아빠와 달리 세심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상냥한 아이만 내 아이는 아니니까. 내가 원하거나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넌 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 좋은 모습, 그렇지 않은 모습 모두 내 아이니까.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는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그림책에서 한 번씩 일깨워주니 고맙다. 아주 잠깐이라도 나와 아이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니까. 이러고 나면 며칠은 좀 평화롭지 않을까. 금세 평화가 깨져도 괜찮다. 그림책은 계속 보니까.

며칠 후 커피를 사러 나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 핀 민들레를 보았다. 평소와 달리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동그란 모양으로 꽃씨가 잔뜩 달린 민들레. 웅크려 앉아 한참을 보았다. 불어 볼까, 말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