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게임이 재밌다는 아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게임이 재밌다는 아이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5.24 1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깨달음 육아] 재미를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르다

"주말에 뭐하고 싶어?”

“엄마랑 게임.”

열한 살 둘째는 게임을 즐겨한다. 요즘은 게임도 혼자 안 하더라. 아이패드에 깔아둔 앱으로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보이스톡을 한다. “거기로 와라”, “내가 먼저 간다”, “나를 따라 와라”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게임에 집중한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일하던 내가 종종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라고 말할 정도. 그럴 때 아이는 그 신나고 재밌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 제 방 베란다로 나가 더 마음껏 게임을 즐긴다. 그 모습이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하면 오버이려나.

평일에 게임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주말은 그보다 훨씬 적은데, 어느 날 주말에 뭐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나랑 게임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게임? 나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그 유명한 국민게임도 내 손으로 깔아본 적 없다. 당연히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에게 게임을? 솔직히 하기 싫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요즘 애들은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 ⓒ최은경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 ⓒ최은경

아이는 로블록스라는 게임을 즐겨했다. 그 안에서도 게임의 종류가 여러 개였다. 나는 가장 쉽고 단순한 걸 추천해달라고 했다. 아이는 고심하더니 게임을 시작했다. 옆에서 보는 나는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 게임이었다. 그나마 내가 쫌 해봤던 게임은 보글보글, 테트리스 이런 수준인데(이런 거 아시는 분 나랑 동년배)... 아이가 하는 게임은 왼손으로 는 캐릭터의 방향을 정하고, 오른손으로는 점프나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들을 썼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가르쳐줬다.

“엄마 이건 방향키 같은 거야. 그리고 이건 무기 사용하거나 점프할 때도 이걸 써.”

“응. 그럼 이제 내가 한번 해볼게.”

이게 뭐라고 짐짓 긴장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똥손이었다.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물에 빠지거나, 상대방의 공격에 당하거나. 살아있는 시간이 몇 초 되지 않았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것도 못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나를 위해 아이는 여러 개의 게임을 시작하고, 종료하기를 반복했다. 그때쯤부터 슬슬 나는 좀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똥손 파트너라서, 게임을 함께 즐겨주지 못해서. 그때였다.

“그럼 엄마, 엄마는 방향키나 점프 같은 것도 아직 어려워하니까, 내가 아주 기본적인 걸 훈련할 수 있는 게임으로 들어갈게.”

딱 봐도 전과 다른 단순한 게임이었다. 방향을 정하고 점프해서 계단을 계속 오르고, 장애물을 넘기만 하는 되는 거였다. 그림으로만 보면 그랬다. 그러나 나는 번번이 타이밍을 놓쳐 벽 앞에 착지하고, 점프를 아무리 해도 제자리였다. 이게 재밌다고? 정말? 나는 재미가 없어서 그랬는지 딴생각만 들었다. 심지어 이런 게임을 왜 하는지 궁금했다.

“근데, 이거 왜 하는 거야? 이게 재밌어? 계단 오르고 장애물 넘는 이런 게 재밌어?”

“응, 재밌어. 그리고...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내가 해낸 거잖아. 성취감이 있어. 레벨을 높일 수 있고, 다른 게임에서는 아이템 같은 걸 (돈을 주지 않고도) 살 수도 있어. 엄마가 현질(돈을 주고 게임 아이템을 사는 것)은 못하게 하잖아.”

"아, 그랬어... 그런 거야..."

그동안 나는 재미를 너무 납작하게만 보고 있었나 보다. 재미란 그저 깔깔 대고 웃는 것, 그 정도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취감이 재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미처 생각 못했다. 왜 몰랐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일하고, 살림하고, 없는 시간 쪼개서 글을 쓰는 것도 재미있어서 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신기하다는 듯 봤던 지인들. 게임이 재밌다는 아이를 보는 내 눈빛도 그랬을까. 재미를 느끼는 건 모두 다른 것인데, 게임하는 걸 좋게 보지 않고 심지어 재미없는 걸로 치부한 그동안의 나의 태도가 생각나 아이에게 조금은 미안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등 과도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게임하는 아이 마음도 적당히 헤아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아이는 결국 나와 딱 맞는 게임을 찾아냈다.

“아, 이건 괜찮네. 이게 그나마 제일 낫다.”

“역시... 엄마, 그건 좀 올드한 게임이야. 역시 엄마에겐 이런 게 낫구나.”

역시라니. 올드한 게임이 나에게 맞는다니. 차마 부정하진 못하겠고 머쓱해진 내가 물었다.   

“근데, 나... 게임 진짜 너무 못하지?”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 못한다기보다는... 기본적인 방향키 사용 등 연습이 좀 필요한 것 같아. 우선 방향키부터 익혀야 할 것 같아."

아이와 한 시간 남짓 게임을 하는 동안 아이 마음만 헤아리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뜻밖에 성숙한 자의 면모를 발견했다.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면박 주지 않는 것. 그 어려운 일을 아이가 내게 행동으로 보여줬다. 종종 성숙한 자의 면모를 잃고 흥분한 채 아이를 대한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