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딸이랑 두 바퀴로 국토종주... "자전거길 위에서 깨닫는 인생"​​​​​
아빠랑 딸이랑 두 바퀴로 국토종주... "자전거길 위에서 깨닫는 인생"​​​​​
  • 최대성 기자
  • 승인 2021.05.26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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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빠살이] 아이와 자전거 국토종주하는 마흔셋 아빠 이야기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지난 19일 한강 종주를 마친 아빠 남수현(43) 씨와 딸 다영(12) 양이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3월 부터 자전거 종주를 시작한 이들은 국토종주 코스를 진행하면서 한강 자전거길 아라 한강갑문~충주댐(192km) , 남한강 자전거길 팔당대교~충주탄금대 (132km) 코스도 함께 완주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9일 한강 종주를 마친 아빠 남수현(43) 씨와 딸 다영(12) 양이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3월 부터 자전거 종주를 시작한 이들은 국토종주 코스를 진행하면서 한강 자전거길 아라 한강갑문~충주댐(192km) , 남한강 자전거길 팔당대교~충주탄금대 (132km) 코스도 함께 완주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라서해갑문에서 낙동강하굿둑까지 633km. 국토종주 인증수첩에는 꼬박 42시간 이상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도착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머나먼 여정을 12살 딸아이와 함께 내달리고 있는 아빠가 있다. 종주의 시작과 끝 지점인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서 아빠살이 12년 차 남수현(43) 씨를 만났다.

◇ “자전거 국토종주에 온 가족이 나서다“

‘거의 다 왔어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부여잡고 자전거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미 예상시간이 1시간가량 지난 상황. 때 이른 무더위에 아이가 쳐졌을까 걱정이 쌓일 무렵, 길 끝에서 점 두 개가 불현 듯 나타났다. 빨간색 복장에 형광색 조끼. 남수현 씨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란히 달리는 다른 자전거는 그의 첫째 딸일 것이다. 먼지 같은 점이 순식간에 커졌다. 마음 급하게 셔터를 눌렀다. 자전거 두 대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지만, 뷰파인더 속 부녀는 생각보다 무덤덤해 보였다. 그때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7살 둘째가 자전거에서 내린 언니와 쌍둥이 동생들 사이를 팔랑거리며 뛰어다녔다. 그제서야 아빠와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인사를 건네며 사진부터 찍자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 라이딩이  끝나지 않았단다.

”아... 도장부터 먼저 찍고요.“

아빠와 아이는 성큼성큼 인증센터로 향했다. 빨간색 공중전화박스에 아라서해갑문에 도착했음을 증명하는 도장이 놓여 있었다. 부녀가 자전거 국토종주 인증수첩에 뿌듯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비로소 또 한 번의 종주가 완료되는 순간이다.

이들에게 수첩 속 도장의 의미는 특별하다. 딸아이가 도전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보상’이기 때문이다.

“종주를 시작할 무렵, 인증수첩에 도장을 다 찍으면 인증서랑 메달을 준다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제법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코스를 하나씩 완주하며 도장을 모으는 게 재미있었나 봐요.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여정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온 가족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전거 국토종주에 동참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온 가족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전거 국토종주에 동참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한강 종주 코스를 완주한 이날도 아이는 완주 도장이 찍힌 수첩을 카메라를 향해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그런 아이 옆에서 검게 탄 얼굴로 자덕(자전거 덕후)의 미를 뽐내고 있는 아빠 역시 국토종주의 계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둘 일 때는 취미 생활도 하고 가끔 좋아하는 캠핑도 했는데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물리적으로 개인 시간을 갖기 힘들었어요. 저 좋자고 취미 찾아 훌쩍 나가버리면 아내가 너무 힘들어지잖아요. 제가 좋아하면서 아이도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고민했어요. 마침 코로나 때문에 실내 운동은 제약이 있어서 자전거가 생각이 났어요. 다영이(첫째)에게 제안하니 흔쾌히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자전거를 타기보단 목표를 정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함께 국토종주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면서 아이도 돌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하지만 아빠가 첫째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 남은 세 아이는 아내의 몫이 된다. 꼼짝없이 독박육아를 해야 할 상황.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활동적인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나름의 방식으로 라이딩에 동참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국토종주를 하는 셈이다.

“주로 빨간 날에 라이딩을 해요. 미리 정해놓은 코스로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이동을 한 후, 출발점에서 저와 딸아이가 라이딩을 시작하면 아내가 차를 끌고 도착점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는 방식이죠. 오늘도 아내가 여의도에 자전거를 내려주고 이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만난 거예요.”

◇ “젊은 날의 도전... 알려주고 싶은 경험들"

그는 20여 년 전에 이미 자전거 국토종주에 도전했다. 그 경험을 통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자신감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딸아이 역시 같은 경험을 통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대학교 3~4학년 때였을 거예요. 벌써 20년 가까이 됐네요.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침 다니던 학원에서 3일간 방학을 했었는데, 그 기간을 이용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에 도전했습니다.”

7월 즈음이었다. 당연히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선크림을 잔뜩 바른 채 출발했다. 그런데 첫날 점심 때부터 비가 내렸다. 보통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하면 주변 사람들과 의논을 하고 선택을 한다. 그런데 당시 그는 혼자였다. 의논할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 놓은 플랜 B도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결단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는 완주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끝을 봐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첫날 목적지인 대전까지 페달을 밟았다.

그는 자전거를 안 넘어지고 안 다치고 탈 수 없다고 말했다. 잘 다치는 것도 겪어야 할 경험인 것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그는 자전거를 안 넘어지고 안 다치고 탈 수 없다고 말했다. 잘 다치는 것도 겪어야 할 경험인 것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두 번째 날도 비가 내렸어요. 대구에 아는 지인 집에 가야 했는데 하필이면 전화기가 고장이 났어요. 연락을 못 하니 또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그냥 끝을 보기로 결심했어요.”

마지막 날 역시 집에 도착하기로 미리 말해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에 200km씩 3일을 꼬박 달려 마침내 부산 고향집에 도착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되려 든든했다. 앞으로 남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완주했다는 이야깃거리도 생겼지만, 특히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어요. 변수가 생겼을 때 본인의 의지로 결정을 내리고 어려움을 이겨내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된 거죠. 그리고 그 마음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업힐 5km... 아이 혼자 힘으로 이화령고개를 넘었어요“

국토종주 코스 중 가장 높은 고도는 이화령고개다. 특히 오르막길 구간이 무려 5km 이상 이어진다.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하는 어른들이 속출할 만큼 힘들기로 유명하다. 아빠는 그 힘든 길을 아이가 혼자 힘으로 이겨냈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다 왔어, 다 왔어!"

세상에 ‘다 왔다’는 말만큼 눈물 나는 말도 없다. 아이가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아빠의 마음이 느낌표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아빠는 ‘다 왔어’를 수없이 외쳤다. 마른침을 삼키고 삼킨 아이가 마침내 이화령고개 정상에 올랐을 때를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국토 종주를 하면서 끝까지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힘들어서 짜증이 나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남수현
아이는 국토 종주를 하면서 끝까지 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힘들어서 짜증이 나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남수현

“사실 이화령고개는 저도 처음 가본 코스였어요. 업힐(오르막길)이 길어서 힘들다고 이야기만 들었었죠. 가기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가 밀바(뒤에서 자전거 밀어주기)를 조금 해주긴 했지만, 결국 아이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고개를 올라서 정말 기특했어요. 아이에게 ‘어른들도 힘든 길을 네 힘으로 올라온 거야'라고 칭찬하니까 녀석이 그냥 피식 웃더라고요. 아마 뿌듯했을 거예요. 보상이요? 게임기를 사줬던 것 같네요. 하하.“

◇ “중간에 내려서 물을 마실 것인가, 정상에 올라가서 물을 마실 것인가”

바람이 많이 불면 아빠는 아이 앞으로 나선다. 체력을 안배할 수 있도록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서다. 오르막길에서 속도가 떨어지면 밀어주기도 한다. 마치 마라톤에서 30km까지 동료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완주를 위한 페이스 조절만이 목표는 아니다. 종주 내내 아빠는 아이의 마음도 절묘하게 조절했다. 속도가 떨어질 땐 일부러 앞에서 빨리 달리고, 고갯길에서 쳐질 땐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때론 혼자 힘으로 이겨내길 바라며 지켜봐 주었고, 마침내 이겨냈을 땐 “거봐, 너도 할 수 있잖아!“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아이의 인생은 30km 보다 훨씬 더 멀기 때문이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 처음부터 도와주진 않아요.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리는 거죠. 그리고 의지를 보일 때만 도와줍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아빠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업힐 중간에 내려서 물을 마실 것인가 정상에 올라가서 물을 마실 것인가를 아이가 직접 결정하고, 그 결과를 깨달았으면 하는 거죠. 제가 알려주는 것보다는 아이가 직접 체득했으면 좋겠어요. 인생도 마찬가지잖아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잖아요. 또 계속 내리막만 있지 않으니 절대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거죠.”

아빠와 아이가 자전거 종주를 마친 후 도장을 찍은 인증수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와 아이가 자전거 종주를 마친 후 도장을 찍은 인증수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아빠가 꿈꾸는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그리고 바람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총 633km로 크게 아라자전거길 → 한강종주자전거길 → 남한강자전거길 → 새재자전거길 → 낙동강종주자전거길로 이어진다. 부녀는 5번에 걸쳐 현재까지 256km를 달렸다. 지금은 새재자전거길 코스가 진행중이다. 앞으로 3~4번 정도 나머지 코스를 달리면 올해 안에 국토종주길이 완주 된다. 그런데 그는 더 큰 목표가 있다고 고백했다. 내년에 제주환상자전거길,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종주길, 동해안자전거길을 모두 완주해 자전거인들이 꿈꾸는 그랜드 슬램 달성이 최종 목표다. 사실 딸아이에겐 아직 말하지 못했단다. 그래도 아빠의 머릿속엔 이미 함께 달리고 있었다.

“20년 전에는 혼자 자전거 종주를 했지만, 이번에는 딸과 함께하고 있어요. 40대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나이라고 보면, 그때의 경험이 생각나서 새롭고 또 그 경험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아이는 점점 더 클 거고 저는 점점 작아지겠죠. 훗날 아이가 새로운 라이딩 코스를 제안하며 저보고 같이 가자고 말할 날도 올 거예요. 장성한 자식이 할아버지가 된 아빠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듯이, 그렇게 서로 보완적이고 친구 같은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올해의 목표는 자전거 국토종주이고 내년엔 모든 자전거 코스를 완주하는 그랜드 슬램이 아빠의 계획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올해의 목표는 자전거 국토종주이고 내년엔 모든 자전거 코스를 완주하는 그랜드 슬램이 아빠의 계획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12살 아이는 아빠의 이런 마음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인터뷰를 마친 후 첫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빠와 자전거길을 동행하는 소감을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는 수줍게 대답했다.

“아빠가 자전거 종주를 같이 가줘서 고마웠어요. 왠지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종주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크면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획 연재 [40대 아빠살이]는 인생의 하프타임에서 '결단'을 내린 이 시대 40대 아빠들의 삶을 담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거나 주변에 그런 결단을 내린 사람을 추천해주고 싶으시다면 이메일(ds.choi@ibabynews.com)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직접 만나서 듣고 찍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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