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가, 혼자 갈거야!"
"엄마는 가, 혼자 갈거야!"
  • 칼럼니스트 김덕화
  • 승인 2021.06.02 09: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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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발달장애 아이 키우기] 독립심 폭발한 아이를 응원하며

발달장애 외동 아이를 키우는 나는 비장애 아이의 발달단계를 잘 모른다. 물론 책으로 연령별 발달단계와 수행과제를 달달 외웠던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아이에게 의미있는 발달 모습이 나오지 않으니 연령별 발달 단계는 까마득하게 잊은지 오래다.

그러다 한번씩 ‘탁’ 무릎을 치는 순간이 온다. 우리 아이도 드디어 하는구나!

19개월에 처음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혼자서 그네를 탈 줄 몰라서 5살이 되도록 엄마에게 안겨 타던 아이가 그네를 혼자 타게 됐을 때, 대소변을 가리게 되어 기저귀를 벗고 드디어 팬티라는 것을 사게 됐을 때 등. 그러고 보면 기다리고 기다리다 엄마가 잊어버릴 때 쯤 아이는 하나씩 뭔가를 보여주며 엄마를 다독이곤 했다.

“엄마, 나 느리지만, 잘 자라고 있어”라고.

◇ 느리지만 잘 자라고 있어요, 엄마!

초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인지능력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면 한번씩 가슴이 답답해진다. ‘공부 까짓것 안해도 괜찮아, 한글 몰라도 괜찮아!’를 외치다가 정말 괜찮을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혼자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 때문에 숨바꼭질을 하느라 두세 배 더 시간이 걸린다. ⓒ김덕화
혼자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 때문에 숨바꼭질을 하느라 두세 배 더 시간이 걸린다. ⓒ김덕화

불안한 엄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요즘 아이의 모습에서 또 한뼘 자란 모습을 보게된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덧 고학년이 되어 자신감이 커진 아이의 가장 큰 변화는 독립심이 폭발한 것이다.

매일 “엄마는 가”, “내가 할거야”를 외친다. 아마도 비장애아이의 4~5세 정도에 해당하는 독립심 발달 정도가 아닐까?

아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모집과 학교에 혼자 가고 싶어 한다. 덕분에 매일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듯 길을 간다. 혼자 간다고 외치다가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엄마를 살피고, 또 같이 걸어가다가 ‘엄마는 집에 가’를 반복하는 통에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0분, 30분이 걸린다. 

짧은 거리라서 아이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차가 다니는 도로나 동네 하천에 위에 있는 다리도 건너가야 해서 나 역시도 혼자서 보내기는 아직 불안하다. 아이를 먼 발치에서 보면서 또 찾을 때는 재빨리 아이 눈에 나타나야 하니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려고 한다. 목적지가 있는 층수의 버튼을 누르고 혼자 올라가서 ‘짠’하고 내리고 싶어한다. 덕분에 엄마는 매일 몇번씩이나 계단 운동을 한다. 짐이 있을 때는 엘리베이터 안에 짐을 실어주고 말한다.

“엄마는 계단으로 갈테니까, 네가 짐 들고 내려.”

그럼 또 짐을 다 들고 아파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밥하고 라면 끓이기 성공, 이만하면 잘 컸다!

장난감같아 보이지만 진짜 밥이 되는 1인 밥솥. 아이는 이 밥솥으로 자기밥을 하길 좋아한다. ⓒ김덕화
장난감같아 보이지만 진짜 밥이 되는 1인 밥솥. 아이는 이 밥솥으로 자기밥을 하길 좋아한다. ⓒ김덕화

하긴 진즉 스스로 해낸 것들이 있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유난히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는 다른 발달에 비해 훨씬 빨랐다.

가전제품을 좋아해서 대부분의 가전제품 작동시키기를 좋아하지만, 특히 좋아하는 것은 밥솥. 전기밥솥에 쌀을 넣고 밥이 되는 과정을 너무 좋아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자기가 밥을 하겠다고 졸라서 1인용 미니 밥솥을 하나 사줬다.

장난감같이 작지만 엄연히 작동이 되는 진짜 밥솥이었다. 아이는 내가 밥을 할 때, 자기도 미니밥솥에 쌀을 담아 씻고, 물을 붓고, 전기코드를 꼽은 후 취사 버튼을 눌렀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한두번 만에 척 해냈다. 금방 뚝딱하는 모습에 내가 더 놀랐다. 그동안 수없이 엄마가 밥을 하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해보고 싶은 열망이 강했으리라. 

자기 밥솥에서 밥이 다 됐다는 소리가 나면 신나게 달려가서 밥을 퍼온다. 그리고 ‘주원이 밥’이라며 더 신나게 밥을 먹는다.

얼마전부터는 컵라면 조리도 성공했다. 비닐을 뜯고, 수프를 뿌리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여 눈금까지 붓기. 물론 마음이 급해서 3분간 기다리기는 너무 어렵지만, 컵라면 끓이기 과정을 엄마 도움 없이 해낸다. 

‘밥솥에 밥하고, 컵라면 끓일 수 있으면 배고플 때 자기 끼니는 해결할 수 있겠지.’ 컵라면 조리에 성공하던 날, 이만하면 제법 잘 컸구나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등교길 숨바꼭질과 계단 걸어올라가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고단하지만 나는 아이의 이런 시도, 노력이 고맙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그 마음, 혼자는 조금 무섭지만 용기내어 스스로 해보고 싶은 그 마음이 대견하다. 무엇보다 여전히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엄마에게서 조금씩 떨어져보려는 노력을 보면서, 나보다 낫구나 싶다. 어쩌면 독립심이 필요한 것은 아이보다 내가 먼저일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김덕화는 제주에서 열 살 발달장애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년 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덜컥 제주도로 가족이 이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원이를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주원이를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읽기선생님, 장애이해교육강사, 발달장애이해 그림책 「우리 아이를 소개합니다」 공동저자가 돼 있네요. 다양한 매체에서 잡지를 만든 경험이 있고,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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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j**** 2021-06-02 23:18:56
너무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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