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동 건강식단, 그거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유아동 건강식단, 그거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1.06.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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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미국 엄마의 건강 식단 좌절기

큰 아이에게 갑자기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며칠이나 고생했다. 지난 학기 계속되는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활동량이 줄어 들어서인지 그도 아니면 방학하자마자 노는 재미에 자꾸 밤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쁜 엄마 아빠 스케줄 탓에 자꾸만 밖에서 사온 피자와 햄버거, 타코 같은 것을 먹이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두드러기는 알레르기의 일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병원에 가도 원인 불명이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만 오래되거나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어도 금방 탈이 나는 엄마와 항상 비슷한 식단을 먹기 때문에 엄마에게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보니 음식 탓에 두드러기가 난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최근 수면 시간도 줄고 집 밥을 먹는 일이 줄어 들다 보니 생긴 일인 것 같았다. 팔, 다리와 얼굴까지 벌겋게 일어나서 간지러움에 괴로워하는 큰 아이를 보니 여간 속상한 게 아니었다. 간지러움을 가라앉혀주는 어린이용 연고와 크림을 발라주고 중간중간 시원한 물로 닦아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불편해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도 불편하다. 요즘 바쁘다고 식단에 너무 신경을 안쓰긴 했다.

 

남매가 함께 만드는 간단한 피자: 피자 매니아인 아들을 위해 미리 반죽을 만들어 냉동 해두곤 한다. 맛이나 모양은 그럭저럭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아이들도 좋아한다. ⓒ이은
남매가 함께 만드는 간단한 피자: 피자 매니아인 아들을 위해 미리 반죽을 만들어 냉동 해두곤 한다. 맛이나 모양은 그럭저럭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아이들도 좋아한다. ⓒ이은

두드러기의 원인이 식단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식단에 조금 더 신경을 쓸 필요는 있었다. 패스트 푸드 위주로 먹이다 보니 최근에 아이의 피부도 까칠해지고 배도 갑자기 볼록 나온 기분이다. 오랜만에 마음 먹고 건강한 식단을 해줄까해서 이것 저것 메뉴 고민을 하였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일단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뉴들은 모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이 작은 미국 시골 동네에서는 구하기 힘든 한식 식재료들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건강한 음식, 그것도 유아동 식단으로 적절하면서 건강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제한된 식재료를 사용해서 건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잘 먹을 만한 걸 요리하는 것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피자를 워낙 좋아하니 사먹는 걸 조금 줄이는 대신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워낙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니 아예 안먹을 수는 없고 조금 색다른 메뉴는 없을까하고 고민한 끝에 내가 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라비올리이다. 직접 만들 시간은 없었고 근처 수퍼마켓 냉장고에서 얼른 집어온 치즈 라비올리에 약간의 바질 페스토와 닭가슴살, 콜리플라워와 브로콜리를 작게 다져서 넣었다. 생 라비올리는 3분 정도만 요리해도 잘 익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걸리지 않는다. 다행히 큰 아이는 물론이고 작은 아이도 잘 먹었다.

 

저녁에는 오징어가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서 이 곳에선 구할 길 없는 오징어 대신 우리 나라로 치면 한치인 칼리마리를 대신 데치고 간장 양념을 얹어서 채소 샐러드와 같이 먹였다. 큰 아이는 채소 샐러드를 그냥도 잘 먹지만 작은 아이는 올리브 오일과 약간의 식초 그리고 귤을 갈아 넣어 드레싱을 금방 만들어 얹어준다. 대단하지 않고 힘들 것도 없지만 아이들은 다행히 잘 먹어준다. 오늘은 운이 좋다. 이렇게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들도 잘 먹고 내 마음도 편한데 바쁘다 보면 쉽지 않다.

 

바쁘지 않더라도 몸이나 마음이 힘들면 아무래도 그냥 쉽게 편하게 끼니를 “때우고” 만다. 나는 지속적으로 꾸준히 건강 식단을 해 줄 자신은 없다. 아무래도 식사는 일상이고 또 습관이기 때문에 나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바뀌어야 지속적인 건강 식단 만들기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바쁜 엄마는, 혹은 바쁜 척하는 엄마는 사실 강력한 동기나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엄마도 힘들고 엄마도 건강 식단이 필요하지만 당분간은 그냥 쉬운 식단을 하려한다. 그러다가 여력이 되는 날이면 혹은 오늘처럼 갖지 않고 싶지만 저절로 갖게 되는 죄책감 같은 것이 일어나는 날이면 또 열심히 건강 식단을 찾아서 아이들에게 해주려 노력할 것이다.

 

인류학자 로린 아놀드(LORIN B. ARNOLD)가 그녀의 연구, '나 자신과의 저녁 약속: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과정의 위치성에 대한 다중적 의미 협상하기(Meeting Myself for Dinner: Negotiating the Multiplicity of Positionality While Feeding the Family)'에서 언급하듯이 식사를 챙기고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먹인다는 행위는 사회와 문화가 내게서 기대한 역할과 의미를 충족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내 자신이 스스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하는 가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공부하느라 바쁜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고 일하는 여성이기도 하며 체력은 약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한없이 낙천적인 사람이다. 때로는 건강한 식단을 때로는 게으름 피우며 좀 쉬운 음식을 먹으며, 그렇게 나는 엄마이자 또 나 자신인 상태로 오늘을 살아가려 한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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