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엄마들이 알게 된 것
글쓰는 엄마들이 알게 된 것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1.06.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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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손화신 지음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를 읽고

“엄마... 원고 써?”        

“응. 이제 진짜 쓸 시간이야.”

“그럼 안녕히 원고를 잘 쓰세요.”

글을 쓰려고 거실 책상 위에 앉은 나와 열한 살 아이가 나누는 대화다. ‘안녕히 원고를 잘 쓰라'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이 말마따나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다.

나는 내 방이 없다.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남편과 작은 아이 덕에 매일 오후 10시 반까지는 거실에서 티비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을 아까워 해봐야 나만 손해. 그저 ‘가족이 함께 즐겁게 웃는 시간’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그렇더라도 오후 10시 반이 되면 나는 칼같이 말한다.

“이제 엄마, 글 쓰는 시간이야. 더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안방으로 가서 봐요.”

그제야 비로소 거실은 내 방이 된다. 글 쓰는 공간이 된다. 한 자 한 자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럼 나는 무얼 쓰나. 육아를 하면서, 일하다가 깨달은 걸 쓴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도 마찬가지. 오래 일했다고 일을 잘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라고 생각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은 늘 있다. 육아와 일은 하루 하루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의 연속으로 나를 가장 긴장하게 하는 무엇이었다.

일과 육아, 그 무수히 많은 사건 사고, 도전과 실패와 성공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나는 글로 쓴다. 글로 내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러다보니 엄마와 편집기자 사이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하나 더 얻었다. 그렇게 나는 쓸수록 내가 되었다.

손화신 작가의 책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최은경
손화신 작가의 책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최은경

이런 나의 마음을 제목으로 삼은 책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손화신 지음, 다산초당)를 최근에 읽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한번을 생각했을 문장.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가 일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엄마들을 떠올렸다. 나는 일반 시민기자들이 보내온 글을 검토하면서 기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기사가 되는 글이 되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일을 한다.

그때 만난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를 찾은 것 같다’는 말,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산 기간이 너무 길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 내 이름을 찾은 것 같다’는 고백이다. 다시 내 이름을 찾고 싶어서 글을 썼다는 엄마들. 혹은 글을 쓰다보니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는 엄마들.

그 감동의 첫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엄마들이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상처받고 아픈 마음을 돌보는 글쓰기에 대해 작가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잃었을 때 미친 듯이 쓰기 시작했다’면서 작가는 말한다.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답답한 그때가 오히려 새로운 문이 열리는 때다. 자기극복은 그것 자체로 기회고,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쓴다.' - 36p

멀리서 사례를 찾을 것도 없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냥 이렇게 집과 회사만을 오가며 살아도 되는지 매일 고민하던 그때, 글을 쓰면서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책의 작가도 다르지 않았다. 그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첫 책을 내면서 ‘비로소 글 쓰는 삶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을 때, 유일하게 내가 즉각적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을 수 있는 건 글쓰기였다.

“쓴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는 목적 없이도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의 일이며,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주체의 일이다.” - 59p

이른바 치유의 글쓰기. 이 책은 작가의 그 절절한 증언이다. 삶의 순간순간에서 유일하게 위로가 되었던 글쓰기, 글을 쓰면서 삶 혹은 자신의 의미를 찾고 쌓아올린 시간들, 그 모든 합이 지금의 작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나다움을 찾는 일, 내 감정을 살피는 일,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 모두에 글쓰기가 있었다는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다.

책 내용 중 일부. ⓒ최은경
책 내용 중 일부. ⓒ최은경

작가는 독서가 만인의 취미이듯, 글쓰기도 만인의 취미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취미란 하면 할수록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행위(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인데, 글쓰기는 ‘자신을 더 알아가고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는 속성을 지닌 일’이니 취미를 글쓰기로 삼는다면 그 효과가 분명할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글쓰기 팁도 전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글쓰기를 결합시켜 루틴을 만들라는 당부다. 그림일기도 좋고, 주식일지도 좋고, 자전거 출퇴근 기록도 좋겠다. 실제 나는 그런 체험을 하는 중이라 특히 공감하며 읽었다. 6월 들어 새벽명상요가를 주 3회 하고 있는데, 명상이 끝나고 짧은 기록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내 삶이 더 충만해진 기분이 든다. 명상 이후 글쓰는 시간이 더 의미있게 느껴질 만큼.

작가가 책에 쓴 모든 말은 사실 쓰기 시작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보고 조금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지금 당장 세 문장이라도 적어보자. 메모장도 좋고, 카카오톡 나에게 쓰기 기능을 이용해도 좋다. 냉장고 앞에 붙여놓은 메모장도 좋다. 일주일만 써도 나와 내 일상이 달라질 거라 확신하다. 나는 그런 엄마들을 많이 봐 왔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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