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써도 괜찮아. 엄마는 기다릴 수 있어"
"떼써도 괜찮아. 엄마는 기다릴 수 있어"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1.07.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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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약국 장난감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
너는 멋진 장난감을 가지기 원했지만 엄마는 너에게 기다림을 알려주고 싶었어. ⓒ이샛별
너는 멋진 장난감을 가지기 원했지만 엄마는 너에게 기다림을 알려주고 싶었어. ⓒ이샛별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 앱 알림 메시지가 보여 확인해 봤다. 주말 내내 햇빛이 강한 실외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실내를 번갈아 놀아서 그런지 코감기 초기 증상이 나타난 것 같았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야간 진료를 하는 소아과로 직행했다. 아직 문 닫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마을버스를 타고 갔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만화 캐릭터 ‘타요’를 부르며 “타요~ 타러 가자” 했더니 방방 뛰며 좋아했다.

퇴근하고 와서, 어린이집 가방만 집에 두고 부랴부랴 다시 나왔더니 몸이 세찬 소나기를 맞은 듯이 무거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이가 건강해야 엄마도 다음날 출근할 수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지원 서비스는 평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하고 있어서 퇴근 시간 이후로는 수어 통역이 없이 스스로 필담으로 의료진과 소통해야 했다. 그래서 소아과 문 앞에서 미리 메모장 앱에다 아이의 증상을 간단히 적어 두고 접수 받는 간호사에게 보여 주었다. 자주 가는 소아과라 그런지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바로 진료실로 안내했다. 콧물을 빼고 나니 아이의 얼굴은 한결 편해 보였다.

소아과에서 나오면 바로 코 앞에 약국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약국이 오늘의 함정이었다. 약만 받고 서둘러 집으로 오겠다는 나의 ‘로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빨리 침대에 맡기고 싶었지만, 아이는 잠도 달아날 정도로 눈이 초롱초롱했다. 약국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가득했다. 아이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안 장난감은 빼돌리고 약만 샀다. 뒤늦게 속은 아이는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다. 횡단보도에서 서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아이를 쳐다봤다. 주저앉은 아이를 따라 앉은 채 가만히 지켜보다 한마디 했다.

“예준아, 엄마가 미안해. 대신 저기 가서 까까 아님 젤리 사자?”

그럼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한참을 둘이 쪼그려 앉은 채 무언의 협상을 벌였다. 몇 분이 더 흘렀을까, 다시 말했다.

“엄마가 로봇 하나 대신 까까 그리고 젤리 다섯개 사다 줄거니까 일단 가자.”

“아주 많이 사는거야.”

질보다 양으로 승부수를 던진 엄마의 말에 아이는 마지못해 수긍했다. 집 앞 편의점을 가리키며 “가자! 먹고 싶은 거 다 사자!”라고 말했더니 저녁바람을 가르며 뛰어가는 아이의 뜀박질이 보였다. 엄마의 속마음은 이랬다.

“네 마음을 알지만, 안 된다는 것도 배워야지.”

“떼써도 괜찮아. 속상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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