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했다. 남편과 나는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수업을 듣고, 나는 거실에서, 남편은 안방에 사무실을 차렸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자신만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은 지 오래다. 그 중 4학년 막내는 예외인데, 꼭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와서 물었다.
“엄마, 온라인 수업 듣는 거 너무 힘들어.”
“엄마, 아직도 2교시야, 이거 실화야?”
“엄마... 목말라, 음료수 없어?”
“엄마, 숙제 하고 있는데 날아갔어. 짜증나.”
“엄마, 애들은 여행 간다는데... 우리도 가면 안 돼?”
“엄마, 난 온라인 수업 다 들었는데... 휴대폰 하면 안 돼?”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참고로 막내는 나보다 아빠를 ‘훠얼씬’ 좋아한다. 평소에도 아빠 말이라면 뭐든 좋고, 아빠 역시 막내딸 말이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왜, 남편도 나도 둘이 똑같이 일하고 있는데, 왜 나만 찾느냔 말이다. 왜왜왜! ‘너 내가 만만하니? 엄마가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니? 내가 하는 일은 아빠만큼 중요한 일 같지 않니? 왜 나만 그렇게 부르는데...’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고 오른다. 물론 기껏해야 5분을 채 넘기지 않는 잠깐의 방해지만,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왜 아빠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지가 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런데 남편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나는 거실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특히 막내가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지, 혹시 딴짓을 하는 건 아닌지가 너무너무 신경이 쓰였다. 한창 유튜브와 웹툰에 빠져 있을 때라 더 그랬다. 회사에 있었다면 애가 뭘 하든 전혀 신경도 안 썼을 일을, 알게 모르게 아이들을 감시(?)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실제로 아이가 딴짓을 하고 있는 걸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내 목소리가 고울 리가 없다. 집안은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된다. 그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늘 기분이 상한 상태였던 것 같다. 3월 4월... 몇 날 며칠을 아이와 전쟁을 벌이다시피 했는데, 이상했다. 왜 남편은 아무 이야기가 없을까. 아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걸까?
남편은 아이가 뭘 하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남편은 제 시간에 일을 하고 오전 미팅을 하고 보고를 하고 업무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 준비를 하고, 운동을 하고 돌아와 다시 일을 하는 아주 완벽한 루틴의 직장인 모드였다. 나는 남편보다 한 시간 먼저 일을 시작한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을 살핀다. 내 딴에는 긴장감을 준다고 중간 중간 잔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서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점심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근무를 하긴 하는데, 애들이 또 신경 쓰이고. 이 과정이 무한반복이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은 거다. 왜 일은 똑같이 하는데, 나만 애들한데 잔소리를 하는 건데!
어느 날 진지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자긴 애들이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애들이 뭘 하든 상관없는 아빠냐고. 저렇게 오래 휴대폰을 하게 둬도 되는 거냐고. 왜 보고도 아무 말도 안 하냐고. 코로나 때문에 애들이 학교에도 못 가고 온라인으로만 수업하는데 안 불안하냐고, 우리는 사교육도 안 시키는데 이렇게 저 하고 싶은 대로 뒀다가 나중에 애들이 잘 못 되면 어떡하느냐고. 나는 솔직히 좀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둑이 터진 듯 이어갔다. 듣고 있던 남편이 가만히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래도 난 아직까진 애들을 믿어주고 싶어. 이러다가 우리 애들이 막 잘못 되고 그럴 것 같지는 않아. 그리고 뭘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괜찮지 않아? 그게 게임이라고 해도... 친구들도 못 만나는데, 게임이라도 하면서 이야기 하고 놀잖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거보다는 나은 것 같아. 뭐든 하고 싶은 게 중요한 거잖아. 저러다가 또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달라질 수도 있고. 쟤가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래. 저러다 큰애처럼 자기 할 일 알고 그러면 달라질 거야. 자기가 막내랑 왜 싸우는지 알겠는데, 나는 꼭 그렇게 싸울 일인지 잘 모르겠어. 우리 애들 잘 못 되지 않을 거야. 너무 불안해하지 마. 하지만 나도 막내 휴대폰 오래 하고 그러면 하지 말라고 할게. 좀 신경 쓸게. 너무 걱정하지 마.”
조용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는 뭐 애를 못 믿어서 그런 줄 알아?”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아이를 못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그동안 내게 보여준 모습들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그걸 애도 눈치 챈 것 같았다.
“내가 아니라는데 왜 엄마 맘대로 생각해?”
“안 봤어. 안 봤다고, 왜 내가 봤다고 그렇게 생각해?”
“게임 시간 내가 다 계산했어, 아직 2분 더 남았거든?”
상황이 이런데도 남편은 아이를 믿어주고 싶단다. 먼저 믿어 주느냐 마느냐, 나는 기로에 섰고 결정을 내렸다. 남편과의 이날 대화를 시작으로 아이와의 전쟁을 끝냈다. 남편이 믿는다는데, 내가 못 믿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를 못 믿을 이유는 열 손가락을 세고도 남았지만, 반대로 아이를 믿어줄 이유도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는 되었다. 남편이 위험한 정도라고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도 혼자 마음을 끓일 이유가 없겠다 싶었다. 내 아이만이 아니니까. 가족이니까. 나는 혼자 열 내는 대신, 남편이 펼친 우산 속에 잠시 있어 보기로 했다. 적어도 막내 아이와의 일에서는.
5월 이후 막내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고 있다. 낮 12시 전까지 온라인 수업을 듣는 시간은 수업을 잘 들을 거라 믿으며 존중해주고 있고, 점심시간 이후부터 6시까지 뭘 하든 두고 있다. 단, 뭘 보는지 정도는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너무 오래 하는 것 같으면, 한 번씩 집이라도 한 바퀴 돌라고 말한다. 운동이라도 좀 하라면서. 오후 6시 전까지 해야 할 숙제 등도 있는데, 이것은 아이도 잘 협조하고 있다. 그렇게 오후 6시가 되면 핸드폰을 반납하는 일상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
휴대폰을 반납한 이후에는 저녁을 함께 먹고 영어 그림책 한 권은 아이가, 동화책 한 권은 내가 읽어주고 있다. “귀찮다”고 “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막상 한 챕터만 읽겠다고 시작한 동화책 읽기가 끝날 때쯤이면 "한 챕터 더 읽을까?"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 영어 그림책 한 권을 여러 날 반복해서 읽다가, 어느 날 엄마의 도움 없이도 읽게 된 날은 ‘나 좀 똑똑한 것 같다’고 의기양양 하는 모습도 좀 귀엽다. 남편 말을 속는 셈 치고 따랐을 뿐인데, 막내와의 사이가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나는 느낀다. 아이 마음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사사건건 아이 잘못을 따지고 날을 세우던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평화롭긴 하다. 남편도 그런 눈치다. 아, 그런데 이제 방학이다. 오전에는 온라인 수업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가도 괜찮을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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