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진짜 사교육은 바로 이것!
우리 아이 진짜 사교육은 바로 이것!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1.08.0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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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부모가 할 수 있는 진짜 사교육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만 4세가 된 큰아이의 나이와 영어 실력 등을 고려해 싱가포르의 사교육 정보를 알려주는 분이 가까이 계셨다. 영어 실력이 떨어지니 어디에 있는 영어 학원을 보내면 좋다, 몇 살이니까 동네 OO학원에서 수학 연산을 시작하면 좋다, 싱가포르 어디 어디에 좋은 학원이 밀집한 동네가 있다, 한국인 코치가 있는 OO센터는 인기가 많아서 줄을 서야 들어간다 등등 6개월가량 귀가 아프게 싱가포르 유아 사교육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학원이 밀집한 지역에 주말에 나가보면 만 3세부터 5세가량의 아이들을 학원 수업에 보내 놓고 카페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내 또래 부모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학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하나였다.

“아직 어려서 실컷 놀게 해 주려고요, 지금 많이 놀면서 아이 스스로 마음과 감정에 충실한 것이 뭔지도 배우고요. 그리고 신나게 놀아봐야 나중에 커서도 본인 스타일에 맞게 노는 방법을 잘 찾을 수 있잖아요. 신나게 놀아야 공부도, 학교 생활도, 사는 것 자체를 신나게 하는 사람으로 클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나의 대답을 듣고 미간에 짙은 굴곡이 생기고, 양쪽 눈썹 끝이 아래를 향하면서 굳어가던 이 분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던진 대답대로 참 열심히 아이와 놀았다. 하루 4시간 유치원 일과가 끝나면 동네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길도 놀이였고, 비가 오는 날 굳이 우산을 쓰고 나가서 산책을 하는 것도 놀이였다. 옆 동네 놀이터로 원정을 떠나기도 했고, 수시로 드나드는 동네 도서관은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놀이터였다. 문구점에 가서 각자 좋아하는 노트와 볼펜을 쇼핑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다녀와서는 하루의 일과를 글과 그림으로 마무리짓곤 했다. 길에서 놀이를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하늘과 나무와 바람을 마주하며 마음을 키우던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노는 것에 자신 있던 나였기에 주변의 ‘학원 찬양’에 귀를 막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큰아이도 영어 학원을 보내야겠어. 싱가포르에 살면서 영어 못하면 어떡해. 애가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잖아. 당장 학원 등록하러 가자.”

평소 내가 아이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똥철학을 알고 있는 남편은 의아하다면서 학원을 보내겠다고 다짐한 이유를 물어봤다. 아이 영어 실력이 너무 뒤처지면 안 되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라고 짧게 대답했다. 남편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록이 가능한 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큰 아이는 동네 영어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얇은 책 서너 권을 담은 커다란 학원 가방을 내가 둘러매고 일주일에 한 번 동네 쇼핑몰에 있는 학원으로 온 식구가 출동했다. 큰아이가 학원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는 한 시간 반 동안 돌도 안된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쇼핑몰을 하염없이 돌았다. 우리 삼총사의 학원 투어는 큰아이가 유치원을 옮기면서 끝이 났다. 주중 다른 시간대의 수업이 없어서 주말로 수업을 옮겨야 한다는 학원 담당자의 말에 우린 그 즉시 학원 수업을 관뒀다. 영어 학원을 그만둔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가 주말에 학원에 가면 우리가 다 같이 놀 시간이 줄어들어서였다.

아이는 영어를 못해서 동네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담백하게 말했을 뿐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아이는 영어가 힘들어서, 영어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고백건대 아이를 영어 학원에 보낸 것은 모두 내 욕심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이가 뒤쳐질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내가 못 견뎠다. 엄마가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아서 더 잘 클 수 있었던 아이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불안이 나를 조종했고, 그 응답으로 나는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만 7세가 된 아이는 싱가포르 일상에 잘 적응해 학교를 다니다 얼마 전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코비드로 인해 5월부터 중단되었지만 학교에서 수영을 배우고, 내가 테니스 강습을 받을 때 가끔 라켓을 쥐고 공을 받아치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집에서 나와 한글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한글로 된 수학 문제집을 하루에 한쪽 씩 푼다. 매일 학교 숙제를 스스로 하는 연습도 했다.

아이는 한글을 배운다는 것을 할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끔 혼자 종이 한 바닥에 단어를 적어놓기도 한다. ⓒ김보민
아이는 한글을 배운다는 것을 할머니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끔 혼자 종이 한 바닥에 단어를 적어놓기도 한다. ⓒ김보민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를 보면서 지금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과 앞으로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늘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아이가 배우는 것을 ‘기본 공부’라고 한다면, 앞으로 아이가 배우는 것은 아이 스스로 찾은 ‘진짜 공부’가 될 것이다. 양육자로서 아이의 인생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배움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 독서, 운동, 규칙적인 생활

아이가 사용하는 언어로 된 책을 찾아 읽으며 마음으로 감동하고 머리로 이해하며 독해력을 키우는 일, 아이가 제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쌓는 일,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익혀 밥을 먹고 청결을 유지하고 충분히 자면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일에 애정을 쏟는다면 언젠가 ‘진짜 공부’를 하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뭐든 자신이 선택하고 내적 동기로 움직일 때 에너지가 샘솟고 세상 어떤 일이 일어나도 긍정적인 마음 담아 애쓸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양육자로서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녹록지 않다. 아이의 영상 시청 시간을 제한하고 시청이 가능한 콘텐츠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독해력에 맞춰 읽으면 좋을 책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보다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영역에 대해서 같은 호흡으로 좇아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해하고, 다른 친구의 집이 우리 집보다 더 크고 좋은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같이 놀다가 쉽게 마음을 다치고 마는 친구와의 관계로 괴로워하고, 인종과 성 차별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아야 하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 한자를 더 보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곱절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각이 돌고 돌아 이 지점에 오니 아이의 진짜 사교육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수학 문제집을 몇 장 미리 풀어보고, 각종 스포츠와 활동들을 미리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다양한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 앉아 의견을 나눠 보는 것. 아이 스스로 본인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살펴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일, 인간으로 태어나 지구에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 보는 일,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주는 일, 이것이야말로 사적으로 할 수 있는 사교육이 아닐까.

코비드를 피해 사람이 없는 곳만 다니다가 이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기 시작했다. ⓒ김보민
코비드를 피해 사람이 없는 곳만 다니다가 이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기 시작했다. ⓒ김보민

그리고 또 하나! 묵묵하게 노력하며 제 길을 갈 수 있는 이른바 ‘엉덩이 힘’을 키우는 일. 요즘 다들 즐겨 보는 올림픽 경기를 보다 보면 천재의 자질을 가진 어린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각기 다른 종목에서 등장하는 천재들의 기록을 볼 때마다 보통 사람으로서 그저 놀랍고 신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가 그들과 같은 천재가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우리 아이의 배움은 어떠해야 할까? 더디 가더라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힘,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하고 배우자고 덤비는 열정,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이 험한 세상 조금 더 신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 나와 아이는 또 어떤 모습으로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지금 마음 그대로 하고 있을까 아니면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갈까. 방향에 상관없이 우리의 일분일초를 애써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이라면 어디든 신나게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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