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 굴곡 많은 인생 그리고 3전 4기
박근혜 당선인, 굴곡 많은 인생 그리고 3전 4기
  • 손대성 기자
  • 승인 2012.12.20 0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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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딸' 멍에 벗고 유력 정치인으로 성공, 대통령까지 당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물리치고 마침내 청와대 주인자리에 오른 박근혜 당선인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故) 육영수 여사의 맏딸로 지난 1952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 1961년 당시 9살의 나이로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 장충초등학교와 성심여고를 졸업한 뒤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이후 1974년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나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어머니가 피살당해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박 당선인은 이 때부터 선친 곁에서 국정 운영을 배웠다. 청와대 직원들의 보고를 꼼꼼하게 메모하는 습관은 이 당시부터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에는 '독재자의 딸'로 몰려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는 이 당시에 권력의 최정상에 있을 때 가깝다고 믿었던 측근들이 한 순간에 등을 돌리는 경험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평소 그가 강조하는 '약속'과 '신뢰'는 이같은 배신의 세월 속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박 당선인이 40대 초반이던 1993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 실린 1989년 11월3일자 일기에서는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정말 두려운 것"이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소신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욕의 삶'을 살아온 박 당선인이 마침내 '청와대 주인'이 될 수 있는 발판은 한때 멍에처럼 지어졌던 부친에게서 왔다.

 

◇ '은둔의 독재자 딸' 멍에 벗고 유력 정치인으로 

 

그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1997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도우면서 부터다. 그는 이듬해인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은둔의 독재자 딸'에서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당시 건국 이래 최초의 진보정권 수립에 동요된 보수진영은 새로운 아이콘을 찾게 됐고, 이들의 레이더망에 박근혜라는 이름 석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각인됐다.

 

박 당선인은 정계에 입문한 지 2년 후인 2000년에는 한나라당 부총재로 선출되는 등 중앙 정치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여세를 몰아 2001년 12월10일 대구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정치개혁을 이루기위해 경선에 참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처음 당내 경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첫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이회창 총재 중심의 당 운영에 반발하며 집단지도체제의 도입을 요구했다. 그는 당시 경선 룰에 대해서도 "시대흐름에 맞게 바꿔야 한다"며 국민참여경선제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 첫 대권도전 실패 뒤 탈당 화려한 복당

 

하지만 박 당선인의 이 같은 요구를 이 총재가 받아들일리는 만무였다. 이 총재와 갈등을 빚던 그는 다음해인 2002년 3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게 된다.

 

탈당한 그는 한국미래연합이란 이름으로 비(非) 정치권 인사가 참여하는 신당을 창당해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선다.

 

이후 당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추진 등 다양한 정치적 연대를 추진했으나 결국 그 해 10월에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당내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총재 옆에서 대선을 치렀지만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 밀려 야당 정치인으로 여전히 머물러야 했다.

 

박 당선인은 이어 5년 뒤인 2007년에도 대통령의 꿈을 꾸고 도전에 나선다.

 

그는 당시 두 번째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 5년 안에 선진국에 진입하는 기적을 이루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박 당선인은 서울 시장을 지냈던 이명박 후보와 대권 레이스를 벌였다. 당시 박 당선인의 후보선출이 유력시됐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경제위기에 힘입이 CEO출신 이 후보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주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경선 결과가 발표되던 날 결과를 보자마자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 정치적으로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초기에 그는 사실상의 은둔생활을 택했다. 당내에서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사였지만 청와대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종종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나라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 "국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세종시 원안"이라며 "대한민국 전체 균형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원칙론을 앞세워 세종시 원안 지지발언을 했다.

 

박 당선인은 정부와 청와대의 전면적 압박 속에서도 원안을 끝까지 고수했고, 이 때부터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 위기의 한나라호 구한 '선거의 여왕'

 

그러던 그는 지난해 12월 선관위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 각종 악재로 시달리던 당을 구하기 위해 다시금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패한 뒤 당내 비주류를 자처했던 박 당선인은 4.11총선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총선을 진두지휘한 박 당선인은 각종 악재로 인해 100석도 못 얻을 것이라는 정치권의 관측을 비웃듯 152석을 획득해 선거의 여왕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새누리당은 이후 5·15 전당대회를 열고 황우여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고 박 당선인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이 때부터 정몽준 전 대표와 이재오 의원 등 비박계 인사들은 '박근혜 본선 불가론'을 주장하며 대립각을 형성했다.

 

비박계 인사들은 경선 흥행을 우려하면서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도입, 경선 일정 연기 등을 주장했다.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박 당선인은 원칙론을 앞세워 정면돌파했다. 그는 "경기의 룰을 보고 선수가 경기하는 것이지 매번 선수에게 맞춰 경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 지도부도 그의 원칙론에 손을 들어줬다.

 

흥행 없는 경선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은 정면돌파를 선택해 마침내 대선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 악재 속 3전4기 끝~ '대권쟁취'

 

당내 상대후보들을 큰 표차이로 따돌리고 대세론을 앞세워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그에게 순탄한 앞길이 깔린 것만은 아니었다.

 

2011년 혜성처럼 등장해 범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그의 최대 적수로 등장했다.

 

친노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문재인 후보도 점차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박 당선인을 괴롭혔다.

 

민주당은 특히 5·16 군사 쿠데타를 중심으로 박 당선인의 인식을 맹공격했다.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 행보는 진보진영의 반발로 출발과 함께 흔들리고 말았다.

 

게다가 경선 레이스 막바지에 불거진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파문도 그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됐다.

 

안철수 원장이 후보군에 합류하면서 3파전 양상이 전개되면서 박 당선인의 대세론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야기된 갈등이 그에게 반사이득을 가져다 주며 지지율을 회복했다.

 

안철수라는 우군을 등에 업은 단일후보 문재인과의 대결은 매 순간이 피를 말리는 접전이었다. 특히 선거 막판 불거진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은 여론을 출렁이게 하며 대선판세를 안갯속으로 몰고들어갔다.

 

선거를 수일 앞두고 일각에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맹공을 가한 문 후보의 역전가능성을 제기하며 새누리당을 긴장시켰지만 박 당선인은 야당의 공세를 네거티브 전략으로 정면반박하면서 지지세를 유지, 결국 3전4기의 승리를 일구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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