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에게 대권승리를 안긴 공신들의 면모가 관심을 모은다.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그의 주변에는 그림자처럼 보좌하던 측근 그룹과 함께 공식 규모로만 20만명의 회원들이 결집돼 있는 국민희망포럼·대한민국 박사모·청산회 등 10여개의 외곽조직 등 숨은 공신들이 부각된다.
박 당선인은 원로부터 중진 인사들까지 풍부한 인맥을 자랑한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따라 9살때부터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맺게된 인연이 원동력이다.
핵심측근이란 말은 박 당선인 자신이 꺼리는 단어다. 이같은 배경에는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으로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를 대신하다 박 정권 몰락 후에는 배신을 겪으면서 겪었던 배신의 기억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박 당선인은 몇사람만을 중용하는 측근정치보다는 인재풀을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인사 스타일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이 누구냐는 국민적 시선은 경선 캠프를 중심으로 한 원로와 중진 인사 등 측근 그룹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우선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비롯해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 김용준·김성주 중앙선거대책위원장,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 이정현 공보단장, 권영세 종합상활실장 등이다.
원외인사인 이들은 정치적 자산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이 지난 8월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한때 '안철수 전 대선 후보'의 멘토로 알려졌을 만큼 야권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안 전 후보의 '여러 멘토 중 한명' 발언과 관련 둘 사이가 틀어져 등을 돌린 후 박 당선인과 뜻을 맞췄다.
이후 지난해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정강·정책 개혁 및 경제민주화 도입을 주도하면서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김 위원장은 캠프에서 박근혜 후보의 핵심 공약인 '경제 민주화'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4선 의원·장관·교수 등을 지내면서 느낀 체험을 토대로 박 당선인의 조언자 역할을 확실히 해냈다.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안대희 위원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서울고검장 출신으로 2002년 '차떼기 한나라'를 파헤친 장본인이다. 당시 성역없는 수사로 실체를 파헤치며 당시 한나라당을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얻게해 국민들 사이에서 '안짱'으로 불리며 검사로는 최초로 팬클럽이 결성되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부정부패, 권력비, 공천 등 전반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박근혜 식' 정치쇄신안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김용준·김성주 공동 선대위원장은 최일선에 서서 박 당선인의 당선에 힘을 보탰다.
헌재소장을 역임한 김용준 위원장은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지만 모든 걸 이겨내고 19살인 1960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해 헌법재판소 소장까지 지냈던 인물로 상징적 효과가 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 CEO로 꼽히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박 당선인이 취약한 연령층인 2030세대, 특히 여성 표심을 노리고 영입한 인물로 톡톡튀는 언행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2007년 경선 당시 친박계의 좌장 역할을 하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한때 박 당선인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새누리당은 '보수대연합'이라는 새판을 짜는 역할을 해냈다.
김 선대본부장은 선거를 보름가량 남겨두고 이회창-이인제-동교동계 인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사실상 보수대연합이라는 '빅 텐트'를 완성했다.
그는 1985년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인물들)에 합류한 이래 줄 곧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선봉에 섰고, 19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40대의 나이에 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거치며 정치권의 거물로 이름을 올렸다.
박 당선인의 '입'으로 불리는 이정현 공보단장도 빼놓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논객으로 불렸던 이 단장은 각종 의혹과 검증공세에 대해 순발력있게 대응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아울러 권영세 전 사무총장은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전략기획을 비롯해 홍보, 네거티브 대응 등 거의 모든 실무를 지휘했다.
박 후보 비서실장을 지내다 사퇴한 최경환 의원을 비롯해 수행단장을 맡고 있는 윤상현 의원, 비서실장 이학재 의원, 직능본부장 유정복 의원, 조직본부장 홍문종 의원이 24시간 박 후보를 보좌했다.
선대위에서 부위원장을 맡았던 유승민 의원과 '정책 브레인'으로 대선 공약 개발 업무를 해오던 안종범·강석훈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큰 힘이 됐다.
당 살림을 책임진 서병수 사무총장은 안방마님 역할을 했고, 이상일 대변인과 조윤선 대변인도 박 당선인의 입과 발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이다.
강창희 국회의장,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김용환·최병렬·김용갑·김기춘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이 주축이 된 '7인회' 원로그룹도 드러나진 않았지만 박 당선인을 도왔다. '7인회'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계기로 결성됐다.
박 당선인은 지난 2007년에도 대선 후보 경선을 치렀던 만큼 외곽 조직도 규모가 크고 조직화됐다.
특히 국민희망포럼이 핵심조직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럼은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상 박 후보 지원 단체다.
국민희망포럼은 지난 2008년 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성헌 전 의원의 주도로 만들어진 포럼으로 공식 등록회원만 2만5000여명에 달한다. 실제로는 전국적으로 40만명에 육박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전국 16개 시도 지부의 조직까지 구성해 박 후보를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규모로만 보면 박근혜 팬클럽인 '박사모'를 빼놓을 수 없다.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박사모는 등록 회원수만 8만여명에 달한 데다 시도별로 30개의 본부와 본부 산하에 10여개의 지부가 결성돼 박 후보를 도왔다.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가 주도해 만든 '청산회'도 박 후보의 주요 지원 조직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청산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도우면서 '친박'(親朴)으로 유명해졌고, 그후 박 후보가 직접 산행에 함께 하면서 힘을 실었다.
박 후보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미래연구원과 현경대 전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밝은사회실천전국연합회도 대표적인 외곽 조직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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