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부부지만 ‘애는 누가 키워요’라는 질문은 엄마만 듣죠”
“과학자 부부지만 ‘애는 누가 키워요’라는 질문은 엄마만 듣죠”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1.09.24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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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워킹맘 보고서⑨] 8살 아이 엄마면서 과학자·벤처기업대표, 윤정인 씨

【베이비뉴스 김민주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직장·사회 내에서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윤정인 씨는 이공계 박사 출신의 과학자이자 8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그는 임신 후부터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선택에 제약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윤정인 씨는 이공계 박사 출신의 과학자이자 8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그는 임신 후부터 ‘아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선택에 제약을 받았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제가 임신을 했던 박사 3년 차는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였어요. 가령 교수나 가르치는 직업을 원한다면 거기에 맞춰서 실험을 준비해야 하고 회사에 간다면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야하죠. 원래 제 목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가는 거였어요. 그래서 개인 연구도 하고 싶었고, 포닥(Post Doctor)도 나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임신을 했으니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란 고민 뿐이었어요. 제가 낸 연구성과나 노력은 의미가 없었어요.”

윤정인(35) 씨는 과학자이자 벤처기업 대표이면서 8살 아이의 엄마다. 박사 3년 차에 임신을 하고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과학 관련 벤처기업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임신한 과학자가 겪게 된 현실은 어땠을까.

“우선 박사과정을 밟을 때, 대학원 연구실에서 임신을 한 건 제가 처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 커리어때문에 임신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임신했을 당시 연차가 가장 높은 학생이었고, 후배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감사하게도 주위에서 배려를 많이 해 줘서 원래 저녁 9시에 퇴근을 해야했다면, 임신 후에는 저녁 8시까지 있었던 거 같아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7시에 퇴근했고요.”

주위의 사려깊은 배려가 있었지만, 힘든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했던 진로를 선택하지 못한 부분도 크지만, 연구실 환경 자체가 임신부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 “절반은 제 욕심이고, 절반은 임신부가 일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거든요”

윤정인 씨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논다'는 이미지를 주기 싫어서 더 노력했던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윤정인 씨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논다'는 이미지를 주기 싫어서 더 노력했던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화학물질을 자주 다루게 되는 연구실 특성상, 윤 씨가 근무했던 대학원 연구실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해로운 실험용품들이 많았다.

“일종의 데이터를 엑스레이처럼 계속 찍어야 하는 실험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임신했으니 실험에 참여하면 안됐거든요. 그래서 기계를 사용하는 연구실 동료들한테 ‘내것도 같이 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어요. 또, 시약들 중에는 유기용매라고 하는 용매를 일상적으로 많이 써요. 그런데 이게 흡입 독성 문제가 있어서 임신부에게 좋지 않거든요. 저는 항상 마스크를 풀로 쓰고 있어야 했는데, 임신부를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 등이 부족했어요.”

연구실에 임신부를 보호할 장비가 부족했지만, 이런 상황을 고려해도 윤 씨의 연구실은 좋은 환경이었다. 우선, 윤 씨의 부탁을 연구실 동료들은 들어줬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연구실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윤 씨는 “제가 임신을 안 했으면 혼자서 끝냈을 일들이에요. 당연히 속도도 떨어지죠. 혼자서 실험을 할 수 없으니까요. 실험이 한가한 사람들을 찾아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어요. 너무 미안해서 커피나 치킨을 수시로 사줬죠. 그런데 이렇게까지 한건 제 욕심이고 한데, 절반은 임신했다고 일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라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임신부는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윤 씨는 “다른 팀에 출산휴가를 가신 박사님이 계셨는데, 그 박사님이 출산휴가를 가고 주변에 젊은 선임 연구원들께서 지나가는 말로 ‘노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걸 몇 번 들었어요”라며,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임신을 해도 저렇게 얘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죠. 또 우리 쪽 일이 교수님 평가와 추천서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어요. ‘논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썼던 것 같아요”고 말했다.

◇ “면접을 본 회사 중에는 ‘아이를 키운다’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윤 씨가 박사를 졸업했을 때 아이는 돌이 지날 무렵이었다. 이 기간동안 윤 씨는 하루에 2~3시간 정도의 시간만 잠을 잘 수 있었고, 졸업 이후 취직을 했을 때부터는 저녁 8시 퇴근 이후 아이와 2시간 정도 놀아주고 목욕시키기, 밥 먹이기, 재우기, 간식먹이기 등이 계속 반복됐다. 집에서는 엄마, 직장에서는 직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니 체력적으로 힘든 건 당연하다. 그러나 윤 씨를 힘들게 한 것은 면접과 회사에서 겪은 경험이었다. 

“면접을 볼 때 제가 아이 엄마라서 회사도 당황한 것 같았어요. 일단 아이가 있는 여자 박사는 처음이라고 한 곳도 많았고, 아이는 부모님한테 맡기고 회사 기숙사에 들어오라고 한 곳도 있었어요. 대부분의 회사는 ‘아이를 키운다’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몇 년 전에도 이직 준비를 했는데, 진짜 좋은 조건에 입사가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거기도 아이를 키우면서 다닐 순 없었어요.”

이후, 윤 씨는 남편과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업계 특성상 부부 연구원이 드물고, 윤 씨가 취직하면서 남편까지 스카웃한 것이다. 윤 씨가 박사출신 연구원이라면 남편은 석사 출신 연구원이다. 당연히 실험 연차도 윤 씨가 남편보다 4년 위지만, 윤 씨의 경력은 회사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 씨는 “한 번은 아이가 크게 아팠거든요. 특히 수족구 같은 전염병에 걸리면 기관에 못가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번갈아 가면서 휴가를 썼죠. 회사에서 저와 남편은 팀이 달랐는데, 저희 팀 팀장이 와서 ‘어차피 휴가 쓸 거면 그냥 엄마가 쭉 쉬면서 애 보는게 좋지 않냐’고 했어요. 경력이나 연구실적은 남편보다 제가 많았지만, 이런 경우 회사는 남편보다 제가 집에 가길 원했어요”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회사가 야근이나 회식이 많았는데, 회식은 남편이랑 같이 빠져서 괜찮았고, 퇴근은 저녁 7~8시 쯤이었고요. 그런데 이것도 일찍 가는 느낌이었나 봐요. 어느 순간부터 중요한 이야기엔 제가 항상 빠졌어요. 저는 중간 관리자였는데, 주말에 모여서 회의를 하게 되면 항상 ‘윤 박사는 애 키워야지, 윤 박사는 애기 봐야지’라고 했죠”라며, “이공계 쪽이 워낙 남초 문화가 강하긴 해요. 아마 그래서 그랬을 거에요. 직원들 중에 아이 엄마가 있었던 적도 없고, 아이 엄마가 관리자급이 됐을 때 어떻게 협업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윤 씨를 힘들게 한 것은 업무나 육아의 고됨이 아니었다. “남자가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면 가정적이고 훌륭하다고 평가받죠. 또 아이가 있으니 일을 더 열심히 할 거라 평가도 받고요. 그런데 여자는 항상 애가 있으니 일하기 힘들겠다는 식이죠. 이런 시선이 많이 힘들었어요.”

◇ “저는 엄마로만 살려고 했던게 아니니까요”

윤정인 씨는 “이왕이면 아이가 ‘엄마는 되게 멋있는 과학자’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윤정인 씨는 “이왕이면 아이가 ‘엄마는 되게 멋있는 과학자’라고 이야기하면 저는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부모님은 육아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윤 씨는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동생들의 도움을 받는 등의 노력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하지만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회사’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선 연봉을 낮춰서 이직해야 했고, 자금이 불안정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와 일을 위해선 또 다른 도전이 필요했다. 

“회사가 자본상의 문제로 폐업하는 걸 겪었죠. 아무래도 육아를 하기 위해선 일이 많은 곳은 못가니까요. 이런 일들을 겪으니 내가 앞으로도 정상적인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창업을 결심했어요. 제 목표는 우선 사업이 망하지 않는 것과 육아와 과학자 커리어로 고민하는 분들을 많이 채용하는 것이에요. 지금도 사무실에 애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거든요. 이런 게 자연스러운 회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예요.”

윤 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위해 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해 7월 과학 분야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창업 이후 가장 좋은 점은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만족하지만, 지금도 윤 씨에겐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은 항상 있다.

윤 씨는 “저는 육아휴직도 쓸 수 없었어요. 아이에겐 미안해요. 회사 다닐 때는 아이가 아파도 아프다고 표현을 안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아파도 엄마, 아빠는 회사를 가야 되는 상황을 알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 엄마로만 살려고 했던게 아니니까요.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제 일도 너무 소중해요. 지금도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 일도 중요해’라고 이야기 해줘요”라고 말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과학자인 윤정인 씨. 그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아이가 ‘과학자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때 보통 ‘엄마는 예뻐’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저는 이왕이면 ‘엄마는 되게 멋있는 과학자였다’라고 이야기해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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