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자 ‘이모님’은 가족일까 아닐까
돌봄 노동자 ‘이모님’은 가족일까 아닐까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10.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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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미씽: 사라진 여자’(2016)

시터가 내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워킹 맘이 꿀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이다. ‘미씽: 사라진 여자’(2016)는 이 악몽을 다룬 영화다. 지선은 이혼 소송 중에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딸 다은도 키워야 한다. 그런 지선에게 입주 시터 한매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한매 없이는 일도, 육아도 불가능하다.

워킹맘 지선에게 한매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워킹 맘 지선에게 한매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싱글 시절, 아들 둘이 있는 직장 동료가 양가가 모두 멀리 살아서 아기 맡길 사람이 없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좋은 시터를 구해서 몇 년째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자리에 함께 있던, 이젠 자녀들이 장성한 기혼 여성 선배들이 말했다. “그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지. 시터는 워킹맘 오복(五福) 중 하나야. 그분 꼭 잘 잡아.” 그때는 흘려듣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실감한다. 하물며 한매는 입주 시터인 데다가 지선은 남편의 조력도 기대할 수 없다. 지선에게 한매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동아줄이다. 지선은 한매에게 말한다. “내가 한매한테 늘 고마워하는 거 알지?”

분명 철석같이 믿고 아기를 맡긴 시터였는데, 그 시터가 아기와 함께 사라져버린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분명 철석같이 믿고 아기를 맡긴 시터였는데, 그 시터가 아기와 함께 사라져버린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그런 시터가 아기와 함께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를 하자 경찰은 시터의 사진을 요구한다. 지선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살펴보지만, 한매의 사진이 없다. 집에서 딸과 둘이서 돌잔치를 할 때 분명 한매와도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

이 장면을 보는데, 쌍둥이가 100일쯤 됐을 때 우리 집에 오셔서 두 돌까지 아기들을 키워주신 출퇴근 시터 생각이 났다. 나도 지선처럼 아기들이 돌이 됐을 때, 집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날, ‘아차, 내일 사진 찍을 때 시터님도 같이 찍자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육아 및 가사 시간으로만 따지면 늘 퇴근이 늦은 남편보다도 공헌도가 높은 분이었는데도, 시터는 ‘의식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쉬운 존재였다. 그 다음날, 시터님께 아기들을 안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을 때 그분은 흠칫 놀라시며 “어, 나도요?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좋은 옷 입고 올걸 그랬네”라고 하셨다.

딸 다은과 시터 한매를 찾아 맨발로 뛰어다니는 엄마 지선.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딸 다은과 시터 한매를 찾아 맨발로 뛰어다니는 엄마 지선.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맞벌이 부부에게 시터는 꼭 필요한 존재지만, 종종 투명인간 취급 받는다. 피가 섞인 양가 조부모들도 해 주기 힘든 육아를 돕고, (특히 입주 시터는) 거의 가족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이들은 가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돈을 주고 고용한 서비스 노동자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다. 이들이 제공하는 노동은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한다든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과는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육아라는 노동의 특성상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안 들어갈 수가 없고, 그들의 일터가 나의 가정이기 때문에 사생활을 속속들이 공유하게 된다.

이들은 가족은 아닌데,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니다. 시터와 함께 쌍둥이를 키우면서 느꼈다. 이분은 우리 가정 안에서 가족도 아니고 생판 남도 아닌, 좌표를 정확히 찍기 힘든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이모님’이라는 호칭 자체가 절묘하지 않은가. 가족은 아닌데, 친척이다. 고모가 아니라 이모다. 돌봄 노동은 여성이 도맡는 일이 많으니 부계 쪽 친척이 아니라 모계 쪽 친척 호칭에서 따온 것 아닐까.

비밀을 간직한 한매. 지선이 그의 자취를 추적하자 이름부터 모든 것이 가짜였음이 드러난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비밀을 간직한 한매. 지선이 그의 자취를 추적하자 이름부터 모든 것이 가짜였음이 드러난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유자녀 기혼 남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때, 그의 성취는 온전히 개인의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그 뒤에는 보통 그의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건사한 아내의 존재가 그림자처럼 숨겨져 있다. 시터들이 자주 투명인간 취급 받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 아닐까. 유자녀 맞벌이 부부 뒤에는 이들 부부가 출근할 수 있도록 그 가정을 지탱하는 시터가 있다. 아내든, 시터든 가사와 육아를 맡는 여성들의 존재는 손쉽게 지워진다. 쓱싹쓱싹.

쌍둥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9시간 시터가 필요 없어져서 우리는 ‘이모님’과 헤어지게 됐다. 처음 그분과 함께 하게 됐을 때,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나는 고용주고 시터는 피고용자다. 시답잖게 시터를 가족처럼 대하겠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도 우리 회사 사장님이 나한테 가족처럼 지내자고 하면 싫다. 그 대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미움 받을 짓을 피하자. 세상에 고용주를 좋아하는 피고용자는 없다.

그렇게 ‘칼 같은 관계’를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전혀 쿨하지 않았다. 시터님께 “우리 아기들을 두 돌까지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분을 안는 순간, 눈물이 나서 끝까지 말할 수 없었다. 울먹이면서 깨달았다. 돈이 오가는 계약 관계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관계이기도 했구나.

여성이고, 외국인이다. 돈이 필요하다. 한매는 이중, 삼중의 약자가 우리 사회에서 생존하기 얼마나 힘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여성이고, 외국인이다. 돈이 필요하다. 한매는 이중, 삼중의 약자가 우리 사회에서 생존하기 얼마나 힘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아이가 있는 여성이 육아를 돈을 주고 외주화하면, 그 여성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더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이 그 노동을 떠맡게 된다. <미씽> 속 한매가 전형적으로 그런 경우다. 중국 교포고, 돈이 절박해서 시터 일을 한다. 지선은 사라진 딸과 한매를 추적하면서 외국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약자성에 갇힌 한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지선이 한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결말부에서 ‘이모님’이 떠올랐다. 나는 그분을 어떻게 투명인간 취급하고, 어떻게 손을 내밀었을까. 아니, 손을 내민 적은 있었을까. 나의 호의는 그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서가 아니라, 아기 맡기는 사람이 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도망치지 않으시기만을 빌며 전전긍긍하면서 베푼 호의에 불과한 것 아니었나. 계약 관계인 것도 맞고, 인간 관계인 것도 맞다면 나는 어떤 고용주였고 어떤 사람이었을까.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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