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에서 분만할 때, 청각장애 엄마는?
산부인과에서 분만할 때, 청각장애 엄마는?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1.12.0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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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수어통역 없는 의료시스템 유감
청각장애 엄마도 안심하고 산부인과를 다니기를 바라며. ⓒ픽사베이
청각장애 엄마도 안심하고 산부인과를 다니기를 바라며. ⓒ픽사베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광고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며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중에 농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이후 아들 예준이를 낳았다. 아들을 낳기 전에 임신을 망설이던 때가 있었다. 저출산 1위라는 악명이 생길 정도로 한국은 아이를 키우기엔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무엇보다 비장애인도 아이를 키우기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지만 나처럼 장애가 있는 부모도 아이를 키우기엔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가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존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임신 확인부터 막달까지 금천구 수어통역센터의 도움으로 수어통역사와 함께 정기 검진을 다녔다. 수어통역을 통해 산부인과 관련 용어도 쉽게 알아갈 수 있었고,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도 옆에서 수어통역사가 차근차근 설명해 준 덕분에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농인의 삶에 없어선 안 될 수어통역사는 이미 내 삶으로 스며들었다.

‘쿵쾅 쿵쾅’ 태아의 우렁찬 심장 소리는 수어통역사의 손끝으로 봤다. 아주 건강하게 잘 뛰고 있다는 수어통역사의 ‘수어’를 통해 우리는 벅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뱃속에서 ‘꿈틀꿈틀’ 태동을 힘차게 하는 아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막달이 다가오면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아침이나 낮에만 나와 달라.’ 사실 수어통역센터는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갑자기 밤늦게나 새벽시간대에 출산이 임박하면 수어통역사가 바로 달려오기엔 힘든 시간대이기에.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 그걸 염려했다. 아뿔싸, 잠들고 있던 중 진통이 강하게 느껴져서 미리 수어통역사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놓고 손말이음센터 통신중계서비스를 통해 산부인과 당직실과 문자 중계로 통화했다. ‘지금 가야 할까요?’라는 내 질문에 산부인과 당직 간호사는 증상을 물어보고 난 후 바로 와야 한다는 대답을 했다. 잠들고 있던 남편을 깨워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깊이 잠들었는지 약속된 수어통역사와 연락이 계속 안됐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애타는 마음이었다. 농인(청각장애인) 임산부가 처음이었던 산부인과도 마찬가지였다.

분만실 간호사의 얼굴 표정과 입 모양을 살피며 스마트폰 메모장을 통해 밀려오는 진통 사이로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어통역사가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분만실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다독이며 입 모양으로 천천히 말해 주었다.

“할 수 있지요? 잘 할 수 있어요. 곧 아기를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거에요.” 몇 번의 다독임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어렵사리 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 예준이를 첫 눈이 내리던 날 새벽 다섯시에 만났다.

아이를 낳은 후에야 수어통역사와 연락이 닿았다. 알고 보니 감기약을 먹고 깊이 잠들었다는 속사정을 전해 들었다.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나라도 그 야심한 시간대에 바로 달려올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농인(청각장애인) 엄마들을 위해 야간 수어통역사, 특히 24시간 수어통역이 원활하게 지원되는 의료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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