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방법
아이가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방법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2.01.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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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연재]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의 아이들과 가족①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의 아이들과 가족 이야기를 영화 세 편을 보며 풀어낼 예정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13살 코이치는 기적을 바란다. 코이치에게 기적은 엄마와 아빠, 남동생 류노스케가 다시 모여 사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코이치는 엄마와 가고시마에, 류노스케는 아빠와 후쿠오카에 떨어져 살고 있다. 코이치는 네 식구가 같이 소풍을 가는 꿈을 꾸고, 길거리에서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집에 가는 이름 모를 아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쳐다본다.

코이치는 엄마와 조부모님과 함께, 동생 류노스케는 아빠와 함께 멀리 떨어져 산다. ⓒ(주)미로비젼
코이치는 엄마와 조부모님과 함께, 동생 류노스케는 아빠와 함께 멀리 떨어져 산다. ⓒ(주)미로비젼

그러던 중 코이치는 기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다. 규슈 신칸센이 개통하는 날, 가고시마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기차와 후쿠오카에서 가고시마로 가는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접한 것이다. 평일 오후에 그 장소까지 어떻게 갈 것이며, 학교 수업은 무슨 거짓말을 해서 빼고, 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코이치의 모험이 시작된다.

기적을 바라며 코이치와 류노스케 형제의 여정에 합류한 친구들의 소원은 다양하다.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엇갈릴 때, 아이들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빠가 파친코에 가지 않게 해 주세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죽은 반려견을 살려 주세요. 빨리 달리고 싶어요. 그림 잘 그리게 해 주세요. 아이들의 소원이 왜 그리 진지하고 귀엽고 가슴 아프던지.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친구들과 함께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모험을 떠난다. ⓒ(주)미로비젼
코이치와 류노스케 형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친구들과 모험을 떠난다. ⓒ(주)미로비젼

기차가 땅을 울려가면서 달리고, 기적을 바라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질 때, 이 여정의 대장 역할을 맡았던 코이치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문다. 그리고 카메라는 지금까지 코이치가 마주쳤던 일상의 순간들을 가만히 보여준다. 먹다 만 아이스크림, 화창하게 갠 하늘, 땅바닥에서 주운 동전, 훌라 춤을 배우는 할머니의 손,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떡, 친구들과 함께 본 코스모스 꽃, 동생과 같이 살았을 때 즐거웠던 추억들, 아빠의 인디 밴드 음반, “나도 아버지가 없었다”며 코이치의 어깨를 꽉 잡던 선생님의 손.

이 뜬금없는 플래시백이 나에게 말해줬다. 삶은 그저 수많은 일상의 순간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짧은 일상의 순간들 사이 어느 구석에 기적이 끼어들 틈이 있나. 잔인한 진실을 품고 있는 플래시백이었지만, 영화가 다시 보여준 소년의 과거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잡을 수 없는 기적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일상에 숨어 있었다고 말해주는 듯이.

코이치의 부모님이 재결합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코이치는 기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주)미로비젼
코이치는 기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주)미로비젼

코이치의 과거에는 동생과 함께 살았던 가슴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도 있고,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다른 가족이 하염없이 부럽기만 했던 가슴 저미게 아픈 순간도 있었다. 아이의 삶이라고 어른의 삶보다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어른과 아이 모두, 이 시간의 물결을 마주하는 방법은 동일하다. 시간의 파도를 맞는 수밖에 없다. 높은 파도가 오면 온 몸이 흠뻑 젖을 테고 거센 파도를 맞으면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한다. 발목을 간질이는 낮은 파도는 기분 좋게 즐기면 된다.

코이치는 동생과 헤어지면서 말한다. “사실 나 아까 소원 안 빌었어. 나는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거든.” 부모의 이혼이라는 파도는 자신이 원한 파도가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고 기적으로 도망치던 소년의 담담한 고백이 가슴을 울렸다. 나는 이 파도를 맞기로 했다고, 부모가 제공하는 가족만이 내 환경의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는 소년의 선언.

"나는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거든." 열세 살 소년이 힘든 시간을 통과하여 내린 결론이다. ⓒ(주)미로비젼
"나는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거든." 열세 살 소년이 힘든 시간을 통과하여 내린 결론이다. ⓒ(주)미로비젼

얼마 전 강릉으로 아기들과 겨울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갔다. 짙푸른 바다에 일어난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면서 끊임없이 우리 쪽으로 밀려왔다. 내가 감탄하면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아들이 내 품에서 말했다. “엄마, 파도가 나한테 오는 거 싫어.” 나는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아.. 파도는 원래 우리한테 오는 건데.. 엄마가 옆에 있을게. 무서워하지 마.”

기차 모험 후 훌쩍 큰 코이치가 내게 가르쳐줬다. 내가 아기를 품에 안고 파도를 함께 맞는 시간은 길지 않다. 언제까지나 내가 아기 옆에 있어줄 수도 없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어진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는 언젠가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아이는 친구와 같이, 학교에서, 사회로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깎고 다듬으며 스스로 성장하겠지. 그 성장은 가슴 저리게 멋진 용기의 결과물일 것이다. 열세 살 코이치의 성장이 그랬던 것처럼.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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