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여행지인 제주에 살며 글을 끄적이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예정되어 있던 운명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시절부터 저는 세계 100여개 나라를 배낭여행 다녔고, 시간과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어디든 떠났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여행을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어디든 떠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고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 고질병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면 이유 없이 힘이 쭈욱 빠져있곤 했어요. 서울시민의 교과서적인 삶을 이제는 살아야 할 운명이었지만 그걸 애써 밀어내느라 혼자서 끙끙대기 일쑤였고요. 일 년에 몇 번씩 이유 없는 우울감에 젖어 있을 때면 제 아내는 항상 '어디라도 다녀오라'라고 나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제 아내는 신랑이 앓고 있는 이름 모를 그 몸쓸 병이 그 어딘가를 다녀오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막상 그 어딘가로 떠나 그리던 곳에 도착하더라도 저는 여는 다른 여행자와 달리 야단법석을 떨며 지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굳이 떠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용히 책을 읽던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던지.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던지. 커피를 마시든지 하는 게 여행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디에서든 익숙한 듯한 능숙한 이방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런 삶을 계속 살아왔기에 저는 제가 지극히 평범한 가장의 삶을 살면서 이렇게까지 직장 생활을 진득하게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행작가이기 이전에 저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더욱이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반듯하고 올바르며 예의 바르게 그리고 항상 신중하고 겸손하게 살아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요.
그래서 저는 제 성향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내느라 진땀을 흘리며 주어진 제 그릇에 맞는 삶을 비슷하게라도 살아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 노력은 지금도 여전한 상황이고요. 애초부터 그와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조금 쉬웠을 텐데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온몸을 비틀고 꼬집고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를 치며 애써야 겨우 이 정도의 모습이라도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역시나 '어디론가 며칠이라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멋진 '제주'에 살면서도 말이죠. 왜 이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떨 때 이상한 행동을 하고, 나는 이럴 때 이기적이며, 나는 이러면 화가 난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겐 '여행'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떠나는 것이 설레고 좋았어요. 다녀오는 만큼, 일상을 떠나있는 시간만큼 나는 나와 더욱 가까워졌고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요.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해도 매번 다름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그런데 잠시 숨을 쉬며 살았던 여행작가의 노마드 인생도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떠나고 싶은 생각마저 억지로 잠재울 수는 없습니다.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이렇게 애써 위로해 줍니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 거야"라고요.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이는데요.
"언젠가는 다시 너만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거야"라고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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