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입니다”
“아이들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입니다”
  • 소장섭 기자
  • 승인 2022.04.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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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주년 특집 대담]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_上편

【베이비뉴스 소장섭 기자】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아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권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권리를 가진 주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아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권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권리를 가진 주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올해 5월 5일은 어린이날이 제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린이날은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처음 제정됐다. 방정환 선생을 비롯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돼 어린이날을 만들었는데, 당시는 5월 5일이 아니라 5월 1일이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정해진 것은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서다.

3·1독립운동이 있던 해인 1919년, 영국 런던에서는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창립됐다.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교사로 활동했던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1876~1928)은 여동생 도로시 벅스톤(Dorothy Buxton)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고통 받은 아이들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을 세웠다. 이후 1953년 우리나라에도 세이브더칠드런이 들어와 부산을 중심으로 전쟁고아 등 한국전쟁 피해자 대상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 약 120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한때 구호의 대상이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원조 국가가 되어 국내 어린이뿐만 아니라 해외의 어린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는 오준 이사장이 이끌고 있다. 오 이사장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UN 핵심 기관인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제24대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 대사, 제15대 주싱가포르대한민국대사관 대사 등을 역임하는 등 38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퇴임 후 지난 2018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오다, 이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적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제가 다른 아이들하고 다른 면이 있었다면, 저는 밖에서 놀고 운동하고 이런 것보다는 생각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도 많았어요. 어른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생각하는 것과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의 꿈은 처음부터 외교관은 아니었다. 한때 언론인이 되는 것을 꿈꿨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외무고시를 치르게 됐고, 단 번에 합격을 하면서 외교관이 됐다. 외교관 생활 7~8년을 한 뒤,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 외교관을 그만 둘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또래 친구들의 처지를 보니 외교관의 길을 계속 걷는 게 나아보였다.

그렇게 38년간을 외교관으로 일한 뒤, 오 이사장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NGO에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 이사장은 NGO의 여러 분야를 놓고 고민을 했지만, 장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고 실제 여러 장애관련 NGO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장애단체가 아닌데, 제가 함께 일을 하는 거의 유일한 단체가 바로 세이브더칠드런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었는데, 그것은 제가 어떤 특정분야에 중점을 둔 NGO활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아동도 취약계층이긴 하지만, ‘이걸 했다 저걸 했다’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사양했었어요. 그런데 이사장은 맡지 않고 이사만 맡아달라고 해서 이사로 반년을 일하다 보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 제가 생각하는 NGO로서의 굉장히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운영도 제가 생각하는 NGO의 원칙에 맞게 되고 있었습니다. 제 전임자인 김노보 이사장님이 잘 하신 거죠.”

이렇게 시작한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의 길을, 오 이사장은 지금 5년째 걷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서울 마포구 베이비뉴스 스튜디오에서 오 이사장을 만났다. 오 이사장에게 우리 아이들의 인권을 오롯이 지켜주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물었다. 

오 이사장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 인터뷰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다음은 오 이사장과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한 대담 전문이다. 오 이사장의 철학과 통찰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서, 그의 표현과 말투를 최대한 살려 적었다. 분량이 적지 않은 관계로, 대담은 上편과 下편으로 나눠 싣는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것과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생각하는 것과 공상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소장섭 편집국장 = 안녕하세요. 오준 이사장님! 바쁘신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오시다가 2018년 7월부터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님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첫 질문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요. 이 질문을 첫 질문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사장님의 어린 시절은 어떠하셨는지요?

·오준 이사장 = 저도 질문지를 보고 뭐라고 해야 되나 생각했는데, 제가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났는데 우리 세대 서울의 중산층의 평범한 아이었던 것 같아요. 저를 돌이켜 생각할 때 특별히 어려운 환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유복한 환경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한 아이였던 것 같고요. 

저 자신이 다른 아이들하고 좀 다른 면이 있었나 생각해본다면, 사람마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잖아요? 우리 세대는 밖에 나가서 놀고 요즘처럼 집에서 컴퓨터 하는 세대가 아니잖아요.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땅위에서 놀고, 동네에서 놀고 그러는 거죠. 제가 북촌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굉장히 오래된 동네이고 서울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지방처럼, 시골처럼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그런 동네였어요.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하고 다른 면이 있었다면, 저는 밖에서 놀고 운동하고 이런 것보다는 생각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도 많았어요. 어른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어요. 

어떤 때는 창밖에 내다보면서 한 시간도 앉아있는 적이 있었어요. 우리 집 마당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감나무에 까치가 와서 감을 쪼아 먹는 걸 보려고 한 시간을 기다린 거예요. 저로서는 아주 진지하게 기다렸지만, 어른들이 볼 때는 괴짜 아이였죠. ‘애가 괴짜다, 애들은 보통 참을성도 없고 그런데...’

그런데 저는 사실은 계속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생각은 공상이니까요. 어린애들이 많이 보는 만화책 중에 투명인간이 돼서 돌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내용이 있잖아요. 그럼 저는 그것에 공감을 갖고, 진짜로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 부분이 제가 스스로 생각할 때, 저의 어릴 적 특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하!

·소장섭 편집국장 = 그러면,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언제부터 키우셨는지요? 

·오준 이사장 = 저희 선친이 1공화국 때 외교관이셨어요. 우리 정부가 수립하던 1948년부터 1960년까지. 그리고 제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 LA에서 해외근무도 하셨어요. 그래서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저희 선친이 저에게 ‘네가 크면 외교관이 돼!’ 이렇게 얘기하진 않았어요. 요즘엔 공무원의 처우가 많이 나아졌는데, 옛날에는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선친께서는 공무원을 별로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으셨는지, 저에게 별로 권장하지 않았어요.

저는 대학교 4학년 때까지는 언론인, 기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제가 외국어를 영어나 불어, 독어 등은 이미 조금씩 했기 때문에, 대학은 불문과에 진학했습니다. 외국어 여러 개를 하면 외무고시를 합격하는데 굉장히 유리하니까 한번 외무고시를 쳐보고 그게 안 되면 기자시험을 치라고 주변에서 권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외무고시를 1년 동안 공부해서 시험을 쳤는데, 합격을 한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외교관이 돼야겠다는 원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 덕분에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 됐다’ 이렇게 말씀드려야겠네요.

2014년 UN안전보장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2014년 UN안전보장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소장섭 편집국장 = 그런데 거의 40년 가까이 하셨는데, 실제 외교관을 해보시고 나서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오준 이사장 = 실제 해보니까, 저에게 잘 맞는 일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일을 하다가 뭐 몇 년 됐을 때, ‘이게 나에게 맞는 건가, 직업을 바꿀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갖게 되잖아요. 7~8년 됐을 때, 저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이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어떤 회의보다는, 공무원에 대한 회의였던 거 같아요. 외교관도 공무원이니까...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제가 공무원이 됐을 때, 특히 초기에는 굉장히 틀에 짜여있고, 권위적이고, 개인이 어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제한됐기 때문에 저는 좀 더 제 스스로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만둘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만두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 은행 등 당시로서는 좋은 직업군에서 일하는 제 또래 사람들을 보니까 특별히 저보다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별 대안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죠. 

또 한 가지 이유는 공무원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기가 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가 넓어지잖아요. 사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직급이 올라가도 회사의 오너에 의한 통제와 제약이 있는데, 공무원의 경우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제가 할 수 있는 재량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오래 일을 하면 언젠가는 좀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갔죠.

·소장섭 편집국장 =외교관이라는 꿈을 이룬 뒤, 이제는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의 수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사장님에게,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준 이사장 = 제가 외교관 퇴직했을 때가 정확하게 2017년 1월이니까, 정확하게 5년 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퇴직하면서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에요.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은 그 후에 2018년 중반서부터 했고요.

제가 UN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으로 퇴직을 할 때에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이런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요. 그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가 선택한 방법 중 한 가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해서, 제가 얻게 된 지식이나 경험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직접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NGO들과 일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강의를 하는 일은, 제가 현재도 경희대와 KDI대학원 두 군데 강의를 하고 있고요. 특히 경희대는 퇴직하고 작년 2월까지 4년 동안은 전임교수로 있었습니다. 양쪽 다 대학원의 영어로 강의하는 과정을 강의하고 있고요, 그건 계속되고 있고요. 

NGO는 ’NGO의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할까‘ 고민을 했는데, 제가 처음에 생각한 분야는 3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개발협력입니다. 제가 UN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했거든요. 그 다음은 장애입니다. 제가 UN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2년간 했는데, 독특한 경험이었고요. 그리고, 세 번째는 북한입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 연설한 걸 사람들이 많이 보셨고, 탈북민들을 포함해서 저에게 북한에 관련한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자문을 구하는 분들도 있어서요.

그래서 제가 3가지 대상을 놓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 결론은 장애분야에서 일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그 이유는 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화 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적더라고요. 안타까운 일인데요, 인권문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치세력들 보수와 진보 간의 싸움을 볼 때, 북한 문제를 놓고 시각이 다른 건 괜찮은데, 시각이 다른 정도가 아니고 싸우잖아요. 

사실은 인권이라는 건 국제적인 잣대가 있기 때문에, 그걸 보면 싸울 이유가 없는데도 굉장히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 싸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런 정치적 논쟁을 피하면서 북한 문제를 다루는 NGO를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북한 관련 활동을 하긴 하는데, 북한 관련 NGO에 제가 가담하지 않았어요.

개발 협력 분야는, 저 말고도 우리나라에 국제적인 개발협력 담론의 수준에 이른 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많이 있어서, 제가 UN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했다는 것 이외에는 부가 가치가 없어요. 제가 그 분야에서 일한다고 해도. 이미 다 국제 수준을 일하고 있기 때문에요.

장애 분야를 택한 이유는, 소 국장님도 장애에 대해 잘 아시지만,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가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러나 UN장애인권리협약이 이야기하는 권리중심적인 접근과는 격차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격차를 줄이는데, 제가 UN장애인권리협의회 의장 2년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장애인 분야에서 일을 하기로 하고, 장애단체들과 지금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고문도 맡고 있고,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청각장애인 지원을 하는 사랑의 달팽이 부회장도 하고 있고, 그밖에 장애인시설의 운영위원 등으로 참여하는 곳이 몇 군데 있고, 주로 장애단체들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단체가 아닌데, 제가 함께 일을 하는 거의 유일한 단체가 바로 세이브더칠드런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었는데, 그것은 제가 어떤 특정분야에 중점을 둔 NGO활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아동도 취약계층이긴 하지만, ‘이걸 했다 저걸 했다’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사양했었어요. 그런데 이사장은 맡지 않고 이사만 맡아달라고 해서 이사로 반년을 일하다 보니까, 세이브더칠드런이 제가 생각하는 NGO로서의 굉장히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 운영도 제가 생각하는 NGO의 원칙에 맞게 되고 있었습니다. 제 전임자인 김노보 이사장님이 잘 하신 거죠. 그래서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세이브더칠드런이 국제적으로 큰 NGO지만 국제적으로 크다고 해서 한국에서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세이브더칠드런은 국가별 독립채산제입니다. 전 세계 30개국이 있는데 자기 나라 세이브더칠드런은 자기 나라가 알아서 해야 해요. 도움 주는 거 없습니다. 오히려 세이브더칠드런 본부에 돈은 내야해요, 얼마씩.

한국의 세이브더칠드런이 굉장히 성장의 포텐셜이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돼서, ‘아 여기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도 맡게 됐죠.

2015년~2016년 사이 UN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오준 세이버드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의 모습.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2015년~2016년 사이 UN경제사회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오준 세이버드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의 모습.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소장섭 편집국장 =그래서 5년째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을 하시고 계시는군요. 말씀을 계속 해주셨지만 장애인 인권, 북한 인권, 아동 인권 등 살아오신 궤적이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오준 이사장 = 네, 제가 외교관에 퇴직하는 후에는 그런 셈인데요. 제가 외교관이었을 때는, 정부의 공무원이니까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정권을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니고, 국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긴 하지만. 

저는 UN 관련 일을 많이 했습니다. UN 대표부에 4번을 근무했고, UN 관련 국내 일까지 합친다면 거의 20년 가까이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제가 스스로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국가라는 단위로 흔히 생각을 하잖아요.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아시아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나는 서울사람이다’, ‘나는 호남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중에 제일 강력한 정체성이 국가거든요. 

무슨 학교나 교회처럼, 국가도 인간이 만든 거긴 하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 단위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국가라는 바운더리, 국가라는 경계에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보면 ‘스톱’(stop)돼 있는 거예요. 갇혀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넘어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 사람일 뿐인 것이 아니고, 나는 아시아인이고, 더 나가서 나는 인간이다, 세계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는데, 특히 세계화 시대에서는. 그래서 UN에서는 세계시민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워요. 왜 어렵냐? 우리는 국가라는 너무 강력한 틀에 갇혀 버린 겁니다. 제가 오늘 오다가도 기사에서 그걸 봤는데, 우리나라의 이근 대위라는 사람이 자기 맘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게 지금 위법이라는 겁니다. 여권법 위반일 뿐 아니라 사전법 위반이라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되는데, 전쟁에 참여했으니까 법 위반이라는 겁니다. ‘왜 개인이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되지?’ 개인이 대한민국에 어떤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런데 스페인이 전쟁을 하는데 스페인의 투쟁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거기 가서 스페인 사람들과 같이 싸우겠다고 하면 위법이라는 거잖아요. 왜, 위법이냐? 대한민국에서 그런 법을 만들었으니까요. 그걸 어기면 위법이죠. 사전법이라는 게, 1953년에 만들어졌대요. 그런데, 여태까지 한 번도 그 법에 의해서 처벌된 사람은 없대요. 

어쨌든 간에, 이 예를 드는 이유는 그런 식으로 우리는 국가라는 강력한 바운더리에 갇혀있다는 겁니다. 제가 UN관련 일을 많이 하면서 느낀 것으로는, 이제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국가만이 아니고 인류의 한 사람, 세계의 일원,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인데, 그게 굉장히 어렵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 국가라는 틀이 이미 우리의 모든 국제관계와 심지어 일상도 다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 말씀하신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대 인권의 개념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가 아닙니까? 잘 생각해보면 그런 인권을 기초로 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의식은 세계주의,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세계의 일원이다, 라는 것과 통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계주의는 개인주의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학생들도 ‘그게 무슨 소리에요, 왜 세계주의가 개인주의에요?’라고 그러는데, 세계주의는 개인주의이고, 그 반대되는 개념에 국가주의가 있어요. 국가라는 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국가에 나쁘게 하면 너는 안 돼! 너는 그럼 벌 받아! 국가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야!’ 이렇게 주장하는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 많이 박혀있는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외교관 생활을 끝내면서 저의 결론 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나는 세계주의를 신봉하고, 따라서 개인주의를 신봉하고, 개인주의를 신봉한다는 것이 인권이다! 인간의 권리는, 우린 인간이기 때문에 다 똑같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우크라이나 사람이든 인간인 이상 다 똑같다. 내가 팔이 두 개든, 팔이 하나든, 눈이 보이든, 눈이 보이지 않든, 피부색이 하얗든, 피부색이 까맣든,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다 평등하다.’ 이게 인권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권의 개념이, 결국 세계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는 그런 믿음을 갖고 NGO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인권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느냐’고 물어보시니까 제가 대답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권리,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런 활동, 이런 기여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그러면 당신은 그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가치를 위해서 공무원도 하고 평생 외교관도 했는데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말이냐’고 합니다. 물론 그것은 아니지만, 저는 인간의 가치가 더 중요하고 우리가 인류로서 이 지구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소장섭 편집국장 = 네, 잘 이해했습니다. 인권이라는 것은, 세계적 표준의 권리협약 형태로 만들어 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UN아동권리협약이라는 게 있고, 벌써 우리나라가 비준한 지 벌써 32년째가 됐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UN아동권리협약이 가지고 있는 의미나 가치나 이런 부분들을 우리 이사장님께서 제일 잘 설명을 해주시지 않을까 요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준 이사장 = 그건 아닌데요. 보통 우리가 UN의 ‘3대 필라(pillar)’라고 이야기하는 게 있습니다. 필라는 기둥이라는 뜻이니까, 3대 핵심 분야라는 뜻이죠. 그걸 얘기할 때, 평화와 개발, 인권으로 얘기하거든요? 인권은 UN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분야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인권을 위해서 UN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 77년 동안 9개의 인권협약을 만들었습니다. 9개의 인권협약 중에 2개는 정치적 권리, 시민적 권리, 경제적 사회적 권리 등 인권의 기본에 관한 협약이고, 나머지 7개는 전부 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협약들입니다. 여성, 소수인종, 아동,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권 협약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강자들은 인권을 잘 누릴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인권을 잘 누리게 된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권을 잘 누리게 되는 거니까 UN의 9개 인권협약 중 2개의 기본 협약을 제외한 나머지 협약은 모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협약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중에 하나가 아동권리협약인데요, 아동권리협약은 이제 1989년에 만들어졌는데 여성차별철폐협약보다 10년 후에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아동이 사회적 약자인 이유는, 우리가 사실은 누구나 다 아동이었는데 아동이 아니었던 사람은 단 한명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성인이 돼서 자기가 아동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아동을 함부로 대하거나 차별하거나, 아동이 성인에게 의존한다는 그것을 악용해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동권리협약이 만들어진 핵심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협약은 다 똑같긴 한데, 권리중심으로 접근하는 거죠. ‘여성차별철폐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똑같은 권리가 있다. 장애인 권리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라 똑같은 인간으로써 권리가 있다’,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동권리협약도 역시 아동이나 성인이나 다 똑같은 권리가 있고, 아동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아동은 권리의 주체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권리중심 접근이라는 게, 사실 아동 문제보다 장애인 문제가 더 설명은 쉽습니다. 장애인을 보호할 대상으로 생각하면, ‘장애인들이 불편하니까 장애인만 와서 보는 장애인 전용 영화관을 만들자’ 이런 발상을 하는 게 자선적 접근 또는 복지적 접근이고 권리적 접근을 할 때는 ‘왜 장애인이 장애인 영화관을 가야 되느냐? 모든 영화관에 장애인이 갈 수 있게 만들어야지’ 이게 권리적 접근이거든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은 권리를 가졌는데, 영화관들은 비장애인들만 보게 만들어놓고 장애인은 불편하니까 여기 특별영화관을 만들어 둘 테니 여기 와서 봐라, 이렇게 하면 그거는 권리적 접근이 아니잖아요. 복지적 접근이지. 

그래서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가 장애인분야에서도 사실 오랫동안 복지적 접근을 많이 했어요. 권리적 접근보다. 그래서 아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아동이 권리를 가진 주체다’ 이런 거를 분명히 했다는 게 아동권리협약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고요. 아동의 권리들은 협약의 전체 조항이 54개인데, 54개 조항에 자세히 나열돼 있습니다.

저희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권리와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이브더칠드런의 창설자인 에글렌타인 젭 여사가 1919년에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들고 그로부터 5년 후에 제네바의 국제연맹에서 아동권리선언이 최초로 채택되도록, 아동권리선언의 초안을 만든 분이거든요. 그리고 그 분은 계속 제네바에 살았는데, 1924년 국제연맹이 채택한 아동권리선언이 나중에 UN이 1950년대에 다시 아동권리선언으로 채택했고, 그것이 더 발전해서 1989년에 아동권리협약이 된 거죠. 그래서 아동권리의 역사와 저희 세이브더칠드런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현대전에서 아동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피난민의 절반 정도가 아동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난민 캠프를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20여 명의 활동가들이 생필품, 식량, 식수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은 "현대전에서 아동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피난민의 절반 정도가 아동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난민 캠프를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20여 명의 활동가들이 생필품, 식량, 식수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소장섭 편집국장 =UN아동권리협약에 대해 국내 비준을 하면, 국내법하고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국내법에 비해서 UN권리협약은 멀리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그 부분도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준 이사장 = 그렇죠. 그거는 사실 아동권리협약뿐 아니라 다른 인권협약도 마찬가진데, 어떤 부분은 그 협약을 이행하려면 국내적인 법제화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국내적인 법제화가 빨리빨리 안 되는, 제때 안 되는 그런 부분이 하나가 있고요. 우리나라는 현재의 법제도가 선진국의 법제도에 완전히 가깝게 돼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법제화의 문제가 아니고 이제 시행의 문제, 이행의 문제인 경우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서 아동권리협약의 31조는 아동의 놀 권리에 관한 겁니다. 그 부분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제대로 이행이 안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또 우리가 민법 915조를 삭제했지만, 아동에게 체벌을 해서는 안 되는데 체벌이 우리나라에서 불분명했었죠. 그런데 작년에 민법 915조가 삭제돼서 우리도 체벌을 금지한 걸로 지금은 해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아동권리협약 상의 국제적인 의무가 이행되기 위해서 좀 더 법제화나 좀 더 제도의 보안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법은 우리도 돼 있는데 실제로 이행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아동권리위원회에 가서 심사를 받거든요. 그런 걸 통해서 계속 우리에게 뭐가 문제인지가 지적이 되기 때문에 사실은 그런 심사를 받는 것만 우리가 잘 이행을 해도 우리가 아동권리협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는 금방금방 진단이 되는 거죠.

·소장섭 편집국장 =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최근 인권 현안들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 아동이 한 40만 명 정도가 고통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도 전쟁을 멈추는 활동들을 계속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번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준 이사장 = 음... 그러니까 사실은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났을 때 민간인 중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여성과 아동이거든요. 요번에도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한 300만 가깝게 벌써 나왔는데, 폴란드나 루마니아로 많이 갔습니다. 남자들은 피난을 잘 안 갔기 때문에, 그 피난민의 거의 절반가까이를 18세 이하 아동으로 봐야 됩니다. 우리 세이브더칠드런은 이제 아동이라고 할 때 18세 이하를 보고 있습니다. 보통 지금 말씀하신 아동이 얼마다, 라고 이야기할 때는, 초등학교 학생 이하를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우리의 관점에서는 18세 이하로 보기 때문에, 피난민의 절반에 가깝습니다. 

아동은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는데, 특히 현대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만 비교해 보더라도, 1차 세계대전은 들판에 나가서, 전장에서 전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도시나 마을들은 좀 가만 내버려두고, 여자나 어린애는 가만히 내버려두고, 남자들끼리만 전장에 나가서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했기 때문에 사망자가 1500만 명이 나왔는데, 사망자의 70%이상이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되면서, 그게 거꾸로 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미사일, 전투기 등 무기가 발달해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했습니다. 오히려 군인들은 더 방어가 잘 되고, 민간인들은 노출되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는 700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70%이상이 민간인이었습니다. 군인 사망률이 30%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우크라이나가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사망자는 아직까지는 교전 당사자들인 군인들이 많이 피해를 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여성과 아동이 난민이 되고 있고, 난민으로서 기본적인 삶에도 도전이 되고 있기 때문에 세이브더칠드런 같은 경우는 우크라이나 내에서 아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 세이브더칠드런의 2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아직 우크라이나 내에서 생필품, 식량, 식수 등을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이제 폴란드나 루마니아에 나와 있는 난민캠프에 대한 지원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세이브더칠드런이 다 합쳐서 1억 2000만 불의 모금을 진행 중인데, 우리 돈으로 하면 1500억 원이 됩니다. 그런데 그 모금액의 상당수가 이미 걷히고 있고요. 국내에서도 성금이 답지하고 있습니다.

·소장섭 편집국장 = 그럼, 성금은 잘 모아지고 있나요? 성금이 답지되는 수준을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어떤 수준을 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준 이사장 = 2주 동안에 5억 원 정도가 답지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민주평통 측에서 저희 단체 1500만 원의 후원금을 전달해주셨는데요. 우크라이나가 아시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워낙 국제적인 관심사가 있고, 국민들은 공분이 있어서 후원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준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이사장 대담 기사는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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