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마을 속에서 자란다
우리 아이들은 마을 속에서 자란다
  • 칼럼니스트 노미정
  • 승인 2022.10.20 0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은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을육아+지구수다] 우리동네 마을잔치가 열렸어요

대용량 먹거리는 처음이라, 부모도우미는 바쁘다 바빠

해마다 열렸던 방어휴먼시아 마을잔치가 3년만에 열렸다. 아이, 부모, 교사가 함께하고 마을 안에서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아파트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 부녀회등이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 어린이집 부모님들은 먹거리마당을 맡았다. 떡볶이,어묵, 주먹밥 재료를 전날 사놓고 오전에는 손질하고 오후에 요리를 시작했다.

마을잔치 먹거리마당을 부모도우미들이 오전, 오후 역할분담을 하며 함께 준비했다. ⓒ노미정
마을잔치 먹거리마당을 부모도우미들이 오전, 오후 역할분담을 하며 함께 준비했다. ⓒ노미정

어묵은 긴 방향으로 3등분 접어서 촘촘하게 꼽았던 건 같은데 3년전이라 기억이 잘 안난다. 분식집에서 사 먹지 어묵을 꼽아본 경험이 없던 터라 다들 자기방식대로 알아서 했다. 주먹밥 재료인 냉동야채 두 봉지를 한꺼번에 넣었더니 볶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물이 한가득 생겨서 계속 따랐다. 떡볶이는 맛이 없다. 맵고 시큼하고. 이걸 어쩌지? 케첩이 많이 들어가고 자일로스 설탕이 달지 않아 단맛이 안 났다. 급히 설탕을 공수해와서 다시 제조했다. 어묵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는데 꼽혀있던 어묵이 줄줄 빠졌다. 접어서 촘촘히 꼽지 않아서 생긴 불상사다. 다 빼서 다시 작업을 하는데 몇 번씩 꼽힌 자리에 구멍이 나며 어묵이 해체될 지경이다. 미리 육수에 담가 놓으면 어묵 대탈출 사태가 눈에 선했다. 판매할 때 잠깐만 미리 담가서 주자고 했다.

어묵 200장 꼽기, 촘촘하게 꼽지 않으면 어묵이 다시 물에서 수영하는 사건 발생. ⓒ노미정
어묵 200장 꼽기, 촘촘하게 꼽지 않으면 어묵이 다시 물에서 수영하는 사건 발생. ⓒ노미정

오후에 도와주러 온 엄마가 주먹밥 재료를 보더니 이 양으로는 야채가 사라진 주먹밥이 될 거라고 했다. 급하게 계란 한판을 사서 스크램블을 하고 굴소스로 간을 했다. 야채와 계란을 다 넣고 밥을 섞었는데도 맛이 안 난다. 많은 음식을 해 본적이 없으니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김가루를 넣으면 좋을 것 같아 큰 김가루를 사와 섞었더니 허여멀건했던 주먹밥이 맛깔나 보이고 맛도 괜찮았다. 이 정도면 팔아도 되겠다.

크기는 어떻게 하지? 어른 주먹만 해야 하나? 크기가 균일해야하니 종이컵 한 컵으로 계량하면 되겠다. 종이컵에 담아서 전달하면 한 사람은 똘똘 뭉쳐 주먹밥을 싸고 다음 사람은 호일에 싸는 식으로 분업을 했다. 종이컵 옆에 있던 내가 얼떨결에 계량 담당이 됐다. 종이컵 하나에 꼭꼭 눌러 담아서 10개정도 만들었는데 이러다간 100개도 안 나오겠다 싶어 걱정이 됐다. 갯수에 신경이 쓰여서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판매할 때 내가 주먹밥 담당이다. 이건 작고, 이건 왜 이렇게 크냐고 민원들어오면 어쩌지? 걱정스런 가운데 130개정도 주먹밥이 완성됐다. 떡볶이도 조금 더 끓이고 제조를 했더니 매운맛도 줄고 단맛이 나며 먹을만 해졌다. 음식을 준비하며 시행착오가 많아 다음 마을잔치 때 하는 사람이 실수하지 않도록 순서, 준비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자고 했다.

◇ 온 마을이 배움터, 온 마을이 놀이터

4시부터 아파트 광장 구석구석에서 체험마당이 펼쳐졌다. 전래놀이체험, 풍선아트, 나무공예체험, 휴대폰가방 에코백 꾸미기, 커피드립백만들기, 삼베수세미 만들기. 아나바다장터에서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직접 집에서 갖고 온 물건들을 판매했다. 직접 물건값을 적고 큰 소리로 물건을 팔았다. 그 옆으로는 동네 형, 누나 주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재활용 물건들을 싼 값에 팔았다. 딱지, 캐릭터, 학용품, 옷, 신발, 가방 등 내겐 쓸모가 다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품이 새 주인을 만났다.

자기가 사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이 사 갔다며 속상해하는 아이와 판매부스를 구경하다 요즘 꽃혀 있는 포켓몬카드를 사줬다. 반짝반짝 빛나는 골드카드다. 조금 전까지 울상이던 얼굴이 활짝 피더니 엄마 최고, 엄마 좋아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투호 던지기도 하고 커피드립백에 예쁜 도장도 가득 찍어준다. 구경하다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며 자유시간을 즐겼다. 5시부터 먹거리판매부스를 지켜야해서 우리식구 저녁 먹거리 티켓을 미리 구입했다. 올해는 관리사무소에서 티켓도 만들고 판매도 맡아주셨다.

◇ 마을잔치를 준비하는 사람들, 판매자와 소비자 그 경계를 넘어서

3년 전 마을잔치에 티켓 판매 도우미를 할 때 일이다. 500원, 1000원, 먹거리종류도 많아 계산하며 티켓주고 잔돈받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줄 선 순서대로 했는데 바꿔 달라고 내미는 손들 사이로 어린 아이가 있었나보다. 계속 서서 말했는데 왜 다른 사람들만 먼저 바꿔주냐며, 아이 부모님이 버럭 화를 내시는데 깜짝 놀랐다.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화를 내며 가버리셨다. 자원봉사였고 이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마을잔치 부스를 운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시간과 품을 내서 하는 봉사다. 서툴러서 실수한 점이 있긴 하지만 내 돈을 내고 사는 소비자 입장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계셔서 아쉽고 속상했다. 구경하고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준비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누구나 즐겁고 신나야하는 마을잔치에 이용자, 소비자로써가 아닌 주체가 돼서 참여해 보시면 좋겠다.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는 그곳에 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크다.

미리와도 안되요. 먹거리 판매 5시에 시작합니다. 떡볶이, 어묵, 주먹밥, 팝콘. ⓒ노미정
미리와도 안되요. 먹거리 판매 5시에 시작합니다. 떡볶이, 어묵, 주먹밥, 팝콘. ⓒ노미정

◇ 엄마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 먹거리마당이 펼쳐지다

드디어 먹거리마당이 5시에 시작했다. 주먹밥과 음료판매는 계속 바쁜 게 아니라 괜찮았는데 어묵판매대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아이들 어묵은 긴 꼬치를 잘라서 줘야 해서 일이 많았다. 떡볶이는 생각외로 빨리 완판이 됐다. 팝콘은 아버님이 맡으셨는데 처음엔 조금 더디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도 나고 팝콘도 잘 튀겨졌다. 넣어놓은 어묵이 다 팔리기 전에 미리 다시물에 넣어야 하는데 까먹고 있다가 금방 넣어놓은 걸 판매했나보다. 어묵이 덜 익어서 맛이 없다는 민원이 있었다. 그것 외엔 어묵과 음료만 조금 남고 먹거리 판매를 종료했다. 먹거리부스를 운영하는 동안 일찍 퇴근한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먹거리를 사고 체험부스도 돌아다니며 아이를 돌봤다. 부모님의 퇴근이 늦은 아이들은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즐겼다.

우리동네를 그려보는 타일벽화 만들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했어요. ⓒ노미정
우리동네를 그려보는 타일벽화 만들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했어요. ⓒ노미정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멋진 타일벽화를 함께 만들어요. ⓒ노미정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멋진 타일벽화를 함께 만들어요. ⓒ노미정

◇ 마을벽화 제막식, 귀뚜라미음악회. 남녀노소 모두 무대에 서다

몇주전 아이들의 흔적을 마을에 남기는 타일벽화꾸미기를 진행했는데 어린이집과 놀이터로 연결된 계단 벽에 촘촘히 붙였다. 타일벽화완성을 축하하는 큰 박수와 함께 6시부터 본격적인 마을음악회가 열렸고 최연소 어린이의 무대로 시작됐다. 평소 어린이집 활동시간에 연습했던 악기와 율동으로 제각각 솜씨를 뽐냈다. 흥에 겨워 몸짓이 큰아이, 부끄럽고 수줍어하는 아이.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지만 저마다 각자의 속도로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은 뭉클하고 대견했다.

어린이집 아이들 공연, 근처 중학교 형·누나들의 밴드공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합창과 시니어모임 어르신들의 공연, 근처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난타공연으로 음악회가 가득 찼다. 대규모 공연장도 아니고 아파트 중앙 광장에 조명도 음향도 썩 좋은 상황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마을에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구나. 마을 잔치는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만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장이다. 마을에서 판매도 하고 사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봉사와 정리도 함께 하며 누구나 참여하는 시간이다. 등하원때 얼굴만 보던 부모님들과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 돕고,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나가며 가까워진 시간. 마을과 함께 하는 행사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고 함께하는 기쁨을 배우는 시간. 아이들은 이렇게 마을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우리는 지금 마을공동체 속에 함께 살고 있다.

바다소리 어린이집 아이들의 공연, 마을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노미정
바다소리 어린이집 아이들의 공연, 마을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노미정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고등학생, 중학생, 늦둥이 일곱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이사장,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