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뭐라도 가득 채우지 않으면 왠지 도태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비우는 것이 뒤처지는 것이 아님에도 하나라도 더 채워 넣으려는 욕심을 부리며 사는 것 같고요. 평범한 사람들이 비움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비움의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여행이 우리 삶에 큰 도움이 된다고요.
자신의 일상을 구속하는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비움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일 거예요.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그 시간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니까요. 여행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은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이나 시작하려고 집을 나가기 전에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하고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가장 폭발하지 않나 싶어요. 공항 곳곳에서 느껴지는 설렘 한가득. 공항에 도착하면 이 여행이 제대로 끝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느낌까지. 모두의 시간이 머무는 공항에만 가면 이 세상이 공항만 같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주에 살다 보니 공항에 참 자주 가게 됩니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육지 일정이 있어 제주공항에 나와있는데요. 공항을 오고 가는 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은 늘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낭만을 더해줍니다.
막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일상의 무게를 여행 가방 안에 압축해 놓은 사람들, 누군가를 마중 나온 사람들, 진한 포옹과 키스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공항에 나오면 길 위에 서있는 여행자들의 설렘을 만나게 됩니다.
공항의 풍경이 늘 설레고 새로운 이유는 여행의 시작이 공항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공항에서 보여지는 무언가가 일상과 먼 것일수록 공항은 점점 더 비현실적이며 매혹적인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이토록 여행을 추앙할까요? 돈을 모으고, 시간을 쪼개고, 때로는 도망치듯 떠나면서도 ‘여행’이란 말에 왜 항상 가슴이 뛸까요? 아마도 여행은 우리에게 감동과 행복, 무엇보다 우리 자신과의 만남을 선물하기 때문일 거예요.
낯선 곳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일상이 아닌 여행지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자기 자신,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마치 빈 공간에 지성의 나무 한 그루를 심듯 읽는 책을 통해서도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느끼게 되니까요.
굳이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더라도 가끔 한 번쯤 공항에 나가보길 권합니다. 실제로 공항이 주는 감성이 너무 좋아 마음이 우울한 날이면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가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을 한참 바라보고 오거나 공항에서 식사와 커피를 즐기기도 합니다. 도착장의 많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괜한 설렘마저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다음번 공항 방문에서는 또 어떤 사연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글을 쓰다보니 이제 탑승할 시간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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