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핸드폰 사진첩에 이걸 보관하는 이유
남편이 핸드폰 사진첩에 이걸 보관하는 이유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6.2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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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이들의 어린 시절 기록에서 얻는 위안

대학 후배가 오랜만에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왔다. ‘오잉? 이 옷은...’ 후배의 아이들이 입은 화이트 드레스는 내가 보내준 옷이었다. 친정 오빠 결혼식 때 한번 입은 옷인데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던 것. 마침 후배가 두 딸을 키우고 있어 나중에라도 입히면 좋을 것 같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우리 아이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싱긋 웃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들이민다. 화면엔 친정 오빠 결혼식 때 화동을 했던 둘째 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아, 이 볼살 어쩔 거야? 이때 이렇게 귀여웠나? 그런데 자긴 이 사진이 아직도 핸드폰에 있어? 2015년도 사진이잖아.”

“있지. 애들 옛날 사진 볼 때의 즐거움이 있더라고.”

“응? 그런 이유로 계속 보관하는 거야? 가끔씩 이 사진들을 봐?”

“아니 꼭 그런 이유는 아니고... 이렇게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보면 좋더라고. 애들 때문에 걱정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이런 사진 보면 좀 풀리기도 하고 그렇더라.”

남편이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모습. ⓒ최은경
남편이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모습. ⓒ최은경

화동 당시 둘째 아이는 다섯 살. 그 아이가 지금은 “왜 저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열세 살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원래부터 엄마 껌딱지는 아니었지만 열세 살의 아이는 10대(10살이 되면서 10대라고 했던 둘째)가 되기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가족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가족과는 절대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지만 친구들과 찍은 인생네컷은 보물단지 마냥 소중히 보관하는 열세 살(엄마 무지 서운해) 아이로. 거실에서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제 방에서 핸드폰으로 틱톡 보는 걸 더 좋아하고, 웹툰+웹소설에 빠져 온갖 덕질을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사춘기 소녀로.

‘저렇게 놀게만 둬도 될까’와 ‘저러다 말겠지’와 ‘언젠가 (공부)하겠지’로 심한 내적 갈등을 일으킬 무렵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온 김붕년 교수(소아청소년 정신과)의 말을 듣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연민’이라는. 어차피 떠날 사람이기에 있는 동안 귀한 손님 대하듯 하라는. 그러기 위해서 부모들은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솔직히 ‘연민’까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불쌍하거나 가련할 만한 상황으로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충분한 자유를 주고 있기에(아이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문장에서는 마음이 쿵 내려앉을 만큼 울림이 컸다.

‘당신 자녀를 나와 아내에게 온 귀한 손님처럼 여겨라.’

이 문장은 그저 듣기 좋은, 기억에 남는 그런 경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 몸이 안 좋아진 나는 둘째를 계획할 무렵 의사에게 ‘엄마 몸이 좋지 않은데 굳이 둘째를 낳아야겠냐’는 말을 들었다. 혹시나 싶어 병원을 옮겨봤지만 그곳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약을 잘 먹으면서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렸다. 의사의 허락 하에 약을 끊는 동안 바로 둘째 아이가 생겼는데 그러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야말로 ‘귀한 손님’이었다.

그런데 반전. ‘이런 아이라면 열두 명을 데리고 와도 키우겠다’는 말을 들었던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기질부터 달랐다. 다른 만큼 아이를 처음 키우는 것처럼 힘들었다. 그래서 번번이 ‘귀한 손님’이란 사실을 잊고 살게 된다. 그러다 이렇게 옛 일을 떠올리면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간절히 기다렸던 아이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인 것이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으로 옛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라고. 미래를 보고 앞으로만 전진하라고.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육아를 하다 보면 과거를 돌아보는 게 좋을 때도 있더라. 그러니 남편은 오래된 아이 사진을 삭제하지 않고 핸드폰에 남겨뒀을 것이고, 나는 오래된 육아일기를 종종 꺼내보는 것이겠지.

태어나자마자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 읽을수록 새롭다. ⓒ최은경
태어나자마자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 읽을수록 새롭다. ⓒ최은경

육아일기를 보는 순간엔 모든 불안들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걱정했던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고 실패보다 성공한 적이 많았던 아이와의 일들이 준 믿음 때문이다. 엄마 젖을 잘 못 물어서 걱정이었지만 한 달을 씨름하다가 모유 수유에 성공했고, 뒤집기도, 기기도 해냈다. 걸음이 느려 돌잔치에도 잡고 설 수 있는 정도였지만 13개월이 넘어가자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뛰어다녔다. 말하는 것도, 글을 읽는 것도 걱정은 걱정일 뿐이었고 아이는 아이의 속도대로 자라왔다. 

그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빨리 걸을 수 있는 무엇, 말을 잘할 수 있게 하는 무엇, 한글을 빨리 뗄 수 있게 한 무엇도 하지 않았다. 그보다 기다려 주는 시간이 더 많았다. 걷다 넘어지면 잡아 주고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할 수 있다고, 잘했다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격려해 줬다. 그렇게 길게는 17년을, 짧게는 13년을 함께 성장했다. 아이는 아이들 대로, 부모는 부모 대로. 세상에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아이의 10대 시절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가 믿어주는 것뿐이라고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거라 믿으며.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해서다. 매일 잔소리할 수 없으니까 나 역시 내 하루를 온전히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한다. 만약 아이가 가정에서 보고 배우는 게 크다면, 적어도 이런 엄마의 모습은 기억해 주겠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았던 엄마를. 물론 십여년 전에 쓴 육아일기를 보면서 쓰린 마음 달래는 건 모르겠지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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