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나도 하고 싶어요, 나도 하고 싶어요"
"선생님! 나도 하고 싶어요, 나도 하고 싶어요"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3.07.0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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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 어른들이 해야 할 것

아이들은 늘 잘하고 싶답니다. 잘하지 못한다고 잘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지 않으며, 말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지 않아요.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 어른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지켜 줄 수 있을까요? -필자 주-

지금은 유아교육과정이 누리교육과정, 놀이중심으로 교육과정이 개편되었으나, 과거에는 주제 중심의 유아교육과정이 운영됐다. 특수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그 많은 주제 중에서도 가장 난처했던 단원이 ‘세계 여러나라’ 단원이었다. 특수학교에서 세계 여러나라 단원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계획을 세우다 보면 ‘우리나라에 대한 개념도 없는데 세계 여러나라 개념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관심을 보일만한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이나 의상, 노래 등으로 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업장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하필이면 그날의 수업주제는 세계 여러나라 단원이었고 내가 가장 취약하게 생각하는 음률 활동이었다. 세계 여러나라 음악에 맞춰 우리는 춤을 추기로 했었다.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민정이를 위해 빙글빙글 돌아가는 베어링을 넣은 동그란 판도 만들었다. 요즘에는 베이킹도구로 나오는 케이크 돌림판을 구입하면 될 일이었지만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그 때에는 그런 소소한 교구들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서 철판을 동그랗게 오린 다음 돌림판을 만들었다. 아버지라고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근처 공장에 따로 부탁해 두었다가 시간을 내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그렇게 동그란 돌림판이 만들어졌다. 한 명의 아이 때문에 이렇게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 질문은 내내 받았던 듯하다. 나 역시 한 명의 아이 때문에 이렇게 수고롭게 부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송구스러워 여러아이들에게 다양한 수업장면에 고루 활용하게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 수업이 있기 몇 달 전이었다. 강당에서 전체 유치부 아이들이 모여 놀이하는 시간이 있었다. 준비운동 같은 시간이 있었는데 딱딱 각이 떨어지는 군무는 아니어도 음악에 맞춰 아이들은 저마다 즐겁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다소 그 시간이 무기력해 보였다. 고작 하는 것이라고는 보조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상체 동작 몇 가지를 따라해 보는 것이 전부였다. 휠체어에 앉아만 있어야 하는 민정이는 제법 자기 의사표현도 잘 했기에 나를 쳐다보면서 ‘나도 하고 싶어요’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못 들은 체 할 수 만은 없었다. 민정이를 안고 노래에 맞춰 이리저리 움직여줬다. 처음에 민정이는 나의 움직임에 맞춰 소리내 웃었다. 나는 민정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이렇게 움직이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가슴에 안겨 있는 민정이는 다시 이야기를 한다.

“나도 하고 싶어요. 나도 하고 싶어요.”

나는 민정이가 내 품에 안겨서 내 등에 땀이 흐르도록 움직여 주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나도 하고 싶어요"라고 반복하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멈추지 말고 계속 움직이길 바라나보다라고만 생각했다. 두어 번 반복하자, 나는 숨이 가빠졌다. 민정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휠체어에 내려놓으려 했다. 민정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민정이가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고만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을 보조 선생님에게 부탁드리고 민정이와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아 자리를 옮겼다. 민정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진정되지 못했다. 나는 아이가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해 다소 엄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울음이 터진 아이를 일단 달래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민정이의 울음이 옅어지자 나는 왜 울었는지 물어봤다. “나도 하고 싶어요...” 민정이는 가느다랗게 눈을 흘기면서 이야기했다.

“알아, 민정아. 너도 하고 싶은거 알아. 그런데 선생님이 너만 안고 이렇게 움직이기에는 좀 힘들어.”

“아니. 나도 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여태 해주고 있었잖아.”

“아니야. 나도 진수, 민성이... 나도 하고 싶어요.”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민정이는 호흡도, 발성도 짧고 어눌하기만 했다. 나는 민정이의 입에서 진수와 민성이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민정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민정이는 제 발로 서서 ‘스스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 아이는 다른 여느 친구들처럼 제 발로 서서 음악을 즐기고 싶은 것이었다. 선생님 품에 안겨서도 아니었고, 휠체어에 앉혀서도 아니고 제 발로 일어서서.

“민정아, 선생님도 그렇게 해주고 싶어. 그런데... 해줄 수가 없어.”

“왜요?” 눈물이 마르지 않은 천진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묻는 민정이에게 나는 무어라 이야기해야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선생님이 도와줄게. 민정이 선생님이랑 운동 열심히 하자...”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 어른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지켜 줄 수 있을까요? ⓒ베이비뉴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할 때, 어른들은 어떻게 그 마음을 지켜 줄 수 있을까요? ⓒ베이비뉴스

어리기만 했던 초임교사인 내가 기껏 꺼낸 이야기는 운동 열심히 해서 네 발로 서서 움직일 수 있게 해보자는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다. 민정이의 발에는 단단한 보조기가 채워져 있었다. 이 보조기를 다시 고쳐 채울 때마다 민정이는 고통스러워 했다. 강직형이었던 민정이는 보조기를 다시 채우기 전에 충분히 운동을 해야했다. 그 운동을 하는 시간도 무척 괴로워 했고, 딱딱한 보조기 때문에 복숭아뼈 언저리는 살이 벗겨지기도 했기 때문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한여름에도 늘 신고 있어야 했다. 아치는 무너져 있었고 발의 긴장도는 늘 높았다. 보조기를 빼면 까치발로 종아리까지 단단하게 긴장되는 발이었다. 저 발로 걸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치료 선생님들의 말에 수긍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민정이의 “나도 하고 싶어요” 말에 어떤 확신도 줄 수 없었던 그 순간이 내내 마음속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순간순간마다 고민했다.

선생님 품에 안겨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기 같은 민정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제 연령의 여느 아이들처럼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하고 싶어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민정이도 그렇게 스스로 크고 싶다고 외쳐댔다. 아이가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이를 걷게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못하는 경험만 늘 상 제공하면 아이는 ‘나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돌림판은 스스로 하고 싶은 아이를 위해 꼭 필요했다. 민정이는 돌림판 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돌림판이 빙글 돌아가면 내가 안고 아이를 돌려주는 것보다는 조금 더 스스로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 있었다.

공개수업일이었다. 아이들이 저마다 세계 여러나라 노래에 나오는 왈츠를 추고 있었다. 나와 손을 잡고, 보조교사와 손을 잡고 아이들은 음악을 즐기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민정이는 걸어서 스텝을 밟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휠체어에 앉아 보조교사가 잡고 움직여 주는 손보다는 더 많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려고 애썼다. 휠체어를 치우고 돌림판에 아이를 앉혔다. 내가 민정이가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고 살살 돌려주자 제법 균형을 잡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의사가 아닌 이상, 아이의 정형외과적인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 아이가 바라고 바라는대로 제 발로 걷게는 해줄 수 없을 것이다. 하루를 보내는 일상 중에서 민정이가 환하게 웃음을 보이는 일, 스스로의 움직임을 즐거워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 친구들과의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의사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그렇다. 아이의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것, 교사로서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나가는 것, 내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삶을 사는 선생님이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우리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운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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