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 혹 모양이 삐죽삐죽... MRI를 찍어볼까?"
"난소 혹 모양이 삐죽삐죽... MRI를 찍어볼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4.02.02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가 한번 해봤어] 난소암 고위험 이야기 2편

어수선한 밤을 지나 아침이 왔다. 너무 긴장했는지 예약 시간보다 산부인과에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산모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고 의사와 만났다.

“지난번에 초음파 봤을 때 없던 난소에 혹이 생겼는데 모양이 암 같아 보이진 않아서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고 혈액검사를 해봤는데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어요.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암이라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암이 아닌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아닌 거니까. 추가 검사를 하고 필요하면 수술을 해야 해요. 초음파 검사보다 좀 더 정확한 CT나 MRI를 찍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체혈로 받은 난소암 검사항목은 CA125와 HE4. CA125 검사의 경우 참고치가 0.0~35.0U/ml 인데, 나는 50언저리가 나왔고, HE4는 (폐경전) 참고치가 0.0~92.1pmlo/L인데 나는 200언저리가 나왔다. 이 수치들을 근거로 로마 Value를 계산하는데 70% 이상이 나와 난소암 위험도가 고위험군이라 판정한 것이다.

의사는 CT나 MRI 를 찍을 수 있는 상급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다행히 산부인과와 연계된 대학병원이 있어 열흘 정도 후에 외래 진료를 예약할 수 있었다. 가장 빠른 게 열흘이라니(나중에 대학병원 앱으로 외래진료를 예약하려고 보니 1월로 넘어가더라). 13일까지 열흘 이상을 또 기다려야 했다.

의사 말대로 ‘고위험군이 곧 암이라는 건 아닌데... 암이 아닌 가능성이 없다는 건 아닌 거니까’ 하루이틀 정도는 심란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을 하는 동안은 괜찮았다. 오히려 퇴근 후에 생각이 많아지니까 더 힘들었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할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암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다가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면 또 괜찮고.

그 와중에 친한 선배 언니랑 잡아놓은 1박2일 충주 여행까지 소화했다(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언니가 ‘지옥에 발 담그고 왔겠네’라고 말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게 들렸다). 사실 취소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 “가지 말까?” 물었는데 다녀오란다. 예정되어 있던 거고, 아직 암이라는 것도 아니니, 아니 암이 아닐 것이니 맘 편히 다녀오라고.

여행을 취소하지 않길 너무 잘했다 싶을 만큼 내내 행복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은경
여행을 취소하지 않길 너무 잘했다 싶을 만큼 내내 행복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은경

그러고 보니 암이란 걸 알게 된 내 친구도, 친구들과 한 달 전에 예약해둔 화담숲 여행을 취소하지 않았다. 마음은 편하지 않겠지만 집에 있는 게 더 우울하다면서 운동도 할 겸 간다고 했다. 나도 그런 마음이었달까. 게다가 나는 아직 암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잖나. 그래도 언니한테는 말 한 마디 안 했다. 괜히 걱정할까 봐, 여행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서.

여행을 취소하지 않길 너무 잘했다 싶을 만큼 내내 행복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고 걱정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여겼다. 다행히도 그런 감정은 잠시뿐이었다. 대부분 잊고 있었고 생각나지 않았다.

언니와 충주자유시장에서 순댓국을 먹고, 만두거리에서 만두와 과일을 사고, 숙소에서 사과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못 다닐 수도 있잖아, 이런 마음도 들고. ‘소중한 일상’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고.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저녁으로 양은냄비에 라면을 먹으면서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다. 그렇게 12월 13일 외래 진료 날이 왔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같이 갔다. ‘혼자 가도 되는데... ’와 ‘혼자보다는 둘이 가는 게 낫겠다’ 하는 두 마음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웅다웅 하더니, 암센터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탓에 아무 말이나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그나저나 이게 실화인가... 내가 암센터에 오다니.

분당에 위치한 대학병원 암센터는 산부인과, 내과, 유방, 대장 등 거의 모든 진료과가 한 병동에 다 모여 있었다. 진료실 마다 작은 테이블이 하나씩 있는데 그 앞에 있는 간호사가 이름을 호명하면 대기 의자에 앉았다가 본인 확인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순서였다.

담당 의사는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MRI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면서 가급적 빨리 검사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검사까지는 다시 일주일, 검사 결과는 듣는 것은 그로부터 다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최은경
담당 의사는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MRI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면서 가급적 빨리 검사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검사까지는 다시 일주일, 검사 결과는 듣는 것은 그로부터 다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최은경

나는 초진이라 진료실에 가기 전에 문진실에서 간호사의 간단한 질문에 답했다. 예약은 오후 3시 30분이었는데, 빨리 도착해서인지 그보다 일찍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교수를 만났고 초음파 검사를 다시 했다. 초음파 검사는 검사실에 있는 의사분이 해주셨다. 검사가 끝나고 다시 교수를 만났다.

“초음파를 보니... 혹의 크기가 4CM, 5CM 정도 됩니다. 혹의 모양이 삐죽삐죽하고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아서 CT나 MRI 같은 다른 검사를 좀 더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신장이 좋지 않아서 조영제를 사용하는 CT는 피하는 게 좋다는 신장내과 선생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영제를 쓰지 않으면 CT는 정확도가 떨어지니 검사하는 게 의미가 없고... 그럼 MRI를 찍어볼까?”

질문하는 의사 표정이 웃겼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하는 내 표정도 의사가 보기엔 비슷하게 웃겼을 거다. 의사가 하라면 해야지. 담당 의사는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MRI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면서 가급적 빨리 검사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검사까지 다시 일주일, 검사 결과는 듣는 것은 그로부터 다시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MRI 검사는 19일 평일 저녁 7시 20분. 30분 전에 와서 미리 체혈 검사도 하라고 하셨다. 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도 2주간을 견뎌야 하는 구나. 이날 검사는 혼자 가겠다고 남편에게 미리 말했다. 태어나 처음 하는 MRI 검사지만 그정도는 혼자 해도 될 것 같았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