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헌법재판소가 28일, 임신 32주 전까지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현행 의료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거의 사라진 사회상을 반영한 판단이다. 이번 위헌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해 앞으론 언제든 태아가 남아인지 여아인지 알 수 있다.
그동안 산부인과 검진실에선 아이 성별을 놓고 웃지못할 일들이 많았다. 32주 전까진 남아인지 여아인지 정확히 말해줘선 안되니 "아이가 아빠를 닮았네요(아들)" "핑크색 신발 사셔야겠네요(딸)"같은 말로 은연중에 성별을 알려주곤 했다. 초음파 사진을 받아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 올려 "아들인것 같냐 딸인것 같냐"는 질문을 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각도법'에 탁월해 보기만해도 척척 성별을 맞히는 인플루언서도 유명세를 얻을 정도다.
의료법20조 2항은 임신 32주 이전 의료인이 태아나 임신부를 진찰 또는 검사하면서 알게된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와 가족이 알게해선 안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28일 이 의료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형식 재판관은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낙태 전 단계로 취급해 제한하는 건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여성이 사회 경제적 지위를 가지며 함께 자리잡은 양성평등의식과, 정상범위 내 출생성비 등이 근거가 됐다.
28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여아 100명당 남아 수를 의미하는 출생성비의 정상 범위는 103~107명. 지난해 출생성비는 105.1명을 기록했고,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정상범위 내의 성비를 유지해왔다.
아울러 재판관 다수는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 "모든 태아정보에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임을 분명히 하고, 이미 의료현장에서도 사실상 임신 32주 전 성별이 고지되고 있다는 현실도 충분히 감안해 해당 조항이 이미 사문화됐다고 판단했다.
한편 의료법20조 2항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1980년대 미리 태아의 성별을 확인해 여자아이라면 낙태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2009년 개정 전까진 임신 기간 내내 부모는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2008년 헌재가 이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32주부터 성별을 알려줄 수 있게 바뀌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전히 성별을 이유로 낙태할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우려한 재판관도 있었다. 이들은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 필요성은 계속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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