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 언제 자르는 게 좋을까요?
탯줄, 언제 자르는 게 좋을까요?
  • 칼럼니스트 한경훈
  • 승인 2013.08.0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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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호흡 준비하는 아기를 위해 조금 기다려주세요

[연재] 한경훈 원장의 산수유(産·授乳) 이야기

 

-문화와 한방으로 보는 임신·출산과 육아-

 

요즘은 복도에서 순산소식을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보다는 수술복을 입고 분만실 한 편에 서 있거나, 혹시 운이 좋으면 산모의 머리맡에서 분만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습니다. 아빠가 분만실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는 아기의 탯줄을 아빠가 자른다는 것입니다. 내내 객처럼 있다가 잠시 등장하는 것이지만 의료진의 배려(?)로 아빠는 출산 과정에서 한 가지 역할을 맡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탯줄은 언제 자르는 것이 좋은 걸까요? 우리의 조상들은, 그리고 다른 문화 전통에서는 ‘탯줄 자르기’를 어떻게 해 왔을까요?

 

탯줄을 자르는 것은 여러 전통 문화에서 상징적 행위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도구에서부터 그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아놀드 반 게넵은 아기의 성별에 따라 탯줄을 자르는데 사용하는 도구가 다른 문화들에 주목했습니다.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서는 아들일 경우 칼을 사용하고, 딸일 경우 물레가락을 사용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오레비족은 아들에게는 활촉을, 딸에게는 곡물 다지는 막대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옛 유럽인들은 배꼽에 남겨진 탯줄의 길이에서도 남녀를 구분해서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탯줄을 길게 남겨두었습니다. 모두 탯줄 자르기에서부터 그 사회가 성 역할을 부여하거나 상징화한 사례들입니다.

 

탯줄을 자르는 때는 문화에 따라 크게 태반이 나오기 전과 태반이 나온 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와 같이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탯줄을 먼저 자르고 태반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등 태반이 나오기까지 기다린 후에야 탯줄을 자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카넨족에게는 하나의 종교적 의식과 같아서 탯줄에 혈액이 흐르지 않게 된 이후에야 다소 복잡하고 신중한 절차를 거치며 행해집니다.

 

동의보감에서는 태어난 직후에는 탯줄에 흐르는 기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함부로 끊었다가 병이 들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솜과 실을 이용해 탯줄을 끊기 위해 준비할 내용과 적당한 길이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준비를 하자면 적어도 몇 분의 시간은 흘렀을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산과의사 르봐이예를 비롯해 대안적 출산방식을 주장하던 이들은 기존의 병원출산에서 아기가 나오자마자 탯줄을 자르는 것을 비판해왔습니다. 출산 직후의 아기는 스스로 안정된 호흡을 하기까지 엄마로부터 태반과 탯줄을 통한 산소공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 이후로도 여전히 태맥(탯줄에 혈액이 흐르면서 생기는 맥박)이 멈추기를 기다려주는 병원출산은 드물었지만, 최근 수년 사이에 병원출산에서도 일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영국과 호주, 스웨덴에서의 연구 등을 통해 출산 후 1분 또는 3분을 기준으로 그보다 늦게 자른 경우에 유아빈혈의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탯줄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태도장을 만들어 주는 풍속에서부터 제대혈과 같은 첨단의료기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친숙하고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도장과 제대혈에 담긴 사랑의 의미도 좋지만 세상에 나와 첫 호흡을 준비하는 아기에게 다만 몇 분을 기다려줄 수 있는 지혜로운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약간의 인내. 절대 서두르지 말 것. 기다릴 것. 아기에게 자리 잡을 시간을 줄 것.…… 탯줄을 존중하면 인생의 출발이 얼마나 다르고 부드러운가." -프레드릭 르봐이예, '폭력 없는 탄생' 중에서-

*칼럼니스트 한경훈은 한의사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첫째를 조산원에서 맞이하면서 출산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둘째는 살던 집에서 감격스런 가정분만을 경험했다. 현재는 출산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한양대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해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산수유는 친근한 한약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출산, 행복한 모유수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같은 이름의 칼럼을 시작했다. 현재 안산 산수유한의원 원장, 국제인증수유전문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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