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엄마, 오늘은 어디에 가요?"
나와 남편은 회사로, 다섯 살 둘째는 어린이집, 9살 큰애는 학교로... 이렇게 각자의 목적지로 나서야 하는 바쁜 아침 시간. 서둘러 옷을 입히려는 내게 다섯 살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여름 휴가 후유증인가? 갑자기 왜 이러실까.
"어딜 가긴... 엄마는 회사에 가고 너는 어린이집에 가지."
"싫은데... 수영장에 가고 쉬퍼요(오자 아니다, 정확한 발음이었다)."
침을 꿀꺽. 대답을 잘 해야 한다. 이 순간을 어찌 넘기느냐에 따라 '웃으면서 출근하느냐, 짜증내면서 출근하느냐'가 결정되니까. 막내는 '막무가내'의 줄임말이라 믿는 나다. 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달렸다.
내가 만약 "안돼, 어린이집에 가야 하니 빨리 옷 입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면? 안 봐도 비디오. 눈으로 시작해 귀까지 빨개지면서 "수영장에 가고 쉬픈데요" 하고 엉엉 울게 뻔하다. 그러나 나는 '지혜롭고자' 하는 엄마. 지금이 바로 수없이 많은 육아책에서 마르고 닳도록 본 '아이 마음 읽어주기' 실전이 필요한 순간임을 안다.
"우리 막내, 수영장에 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쩌지? 지금은 엄마, 아빠도 회사에 가야하고, 언니도 학교에 가야해. 그러니까 수영장은 다음에 꼭 가자."
"네."
에헤라디야. 한번에 오케이라니...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오는 출근길. 우리 막내에게도 '48개월의 기적'이 일어나는 걸까(내 주변엔 48개월만 지나면 애 키울만 하다고 믿는 이가 있다). 그런데 이게 뭔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좌절모드로 급전환. 내 눈앞에 거대한 콩나물 시루같은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 아, 정말 타기 싫다. 어찌하여 내 치마는 김고은이 쓰고 그린 그림책 <우리가족 납치사건>에 나오는 것처럼 '훌러덩' 뒤집어지지 않느냔 말이다.
회사도 학원도 잊고 지낸 시간, 그래도 별일 없었다
엄마는 나를 깨우고 먹인 뒤 학교에 보냈대요. 화장을 하고 아침 설거지까지 해놓고 출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치마가 훌러덩 뒤집어져 엄마를 보쌈하듯 싸안고 날아올랐대요. 엄마도 아빠처럼 회사에 지각하겠다며 발버둥을 쳤대요.
한참만에 치마가 엄마를 내려놓은 곳은 아빠가 있는 바닷가. 둘은 훌러덩 벗은 채로 회사도 잊고 먹을 것도 실컷 먹고 잠도 쿨쿨 자고 신나게 놀기로 했다지 뭐예요. 물론 중간에 온 저랑 같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납치되었냐고요?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다 알려주면 재미없잖아요.
오늘은 말을 좀 아끼련다.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서. 책을 읽고 난 뒤, 궁금했다.
"딸도 학교 가기 싫은 적 있남?"
"응... 요즘 구구단 외우는 거 싫어서 가기 싫어."
"(헉) 그랬어? 그럼 너도 주인공 여자애처럼 수업 시간에 머리끈을 확 풀러버려. 그럼 풍선 바람이 빠지는 것마냥 머릿속에서 구구단이 줄줄줄 나오면서 휭 하고 바닷가로 가게 될지도 모르잖아."
"에이 엄마... 그건 상상이잖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구구단을 처음부터 외는 건 곧잘 하는데, 갑자기 중간부터 떠올리는 건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 선생님이 구구단을 잘 못 외는 친구에게 2단부터 9단까지 3번씩 써서 오라는 '엄청난' 숙제를 냈다며 흥분하는 아이.
그래서 우리는 이날 한 가지 약속을 했다. 구구단을 열심히 외워서 구구단 게임을 하기로.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우주에서 가장 신 레몬에이드'를 만들어주면 먹어야 하는 복불복 게임도 하기로 했다. 신 걸 잘 먹는 아이에겐 그닥 큰 일도 아니겠지만, 난 벌써부터 몸서리가 쳐진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9살 다은, 5살 다윤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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