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여자아이의 이유 있는 다이어트 선언
다섯 살 여자아이의 이유 있는 다이어트 선언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5.12.27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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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자존감을 꺾는 건 부모의 말 한마디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뭐라한들, 아빠에게는 잘 먹는 모습이 제일 예쁜 나은공주랍니다. ⓒ권성욱
뭐라한들, 아빠에게는 잘 먹는 모습이 제일 예쁜 나은공주랍니다. ⓒ권성욱


일요일 저녁, 밥 먹고 간식으로 메론 먹고 뜨근한 꽃차까지 한 잔 드신 나은공주. 디저트로 초콜릿을 줬는데 옷 위로 보이는 뽈뚝한 똥배. 아이니까 당연하지만 왠지 여느 때보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마치 수박을 절반 뚝 잘라서 위에 얹어 놓은 느낌이랄까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집사람도 재미있다는 듯 웃습니다.

"나은아! 그 배는 뭐야? 나은이 배에 애기 있는거야?" 놀렸더니 버럭 화를 냅니다. "애기 아니거든. 애기는 어른이 되어야 생기는 거야. 방금 마신 꽃차가 들어 있어서 그래."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이제부터 살 뺄 거야!" 그러면서도 일단 손에 쥐고 있는 초콜릿은 마다하지 않습니다만.

여지껏 아이더러 살 쪘다느니, 뚱뚱하다느니 놀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별 생각없이 농담 한 마디 던졌다가 다섯 살 짜리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면서 당장 살 빼겠다고 말하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평소 무심결에 내뱉었던 말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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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히 생각해 보면 찔리는게 많습니다. 옆에서 아이가 듣든지 말든지 집사람한테 "저 굵은 다리는 나중에 돈 들여서라도 빼줘야 하나" "요즘 나은이가 좀 살찐 거 아니야"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제 겨우 다섯 살 인데 설마 알아 듣겠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진짜로 몸매 관리를 해야할 쪽은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인데 말이죠.

 

외모만일까요. 우리는 부모라는 권위만 앞세워 아이들에게 함부로 얘기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는 않았던지. 막상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주는 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부모와 아이만은 아닐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교사와 학생, 직장상사와 부하... 우리 사회 뿌리 깊은 수직적 문화과 권위주의 앞에서 강자는 약자에게 무슨 말을 해도 용납되고 약자는 무조건 참는 것을 강요 받습니다. 그리고 그걸 '세상 사는 법'이라고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로 내 마음에 생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매우 낮습니다. 겉으로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막상 행복 지수가 낮고 자살율은 가장 높은 이유 역시 이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 성형천국의 현실을 비난하지만, 단순히 성형외과의 상술이나 예쁜 외모만 부추기는 TV 탓일까요. 부모부터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뚱뚱한 것은 죄악'이라고 가르친 탓은 아닐까요.

 

많은 젊은 부모들이 오해하지만, 아이의 자존감은 아이를 상전처럼 대한다고, 기를 세워 준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너 참 뚱뚱하구나", "너 정말 못 생겼다", "넌 도대체 쓸모가 없어",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럽다" 등 부모가 말을 내뱉는데 걸리는 시간은 5초도 걸리지 않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는 평생 상처로 남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언어편(言語篇)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口舌者禍患之門滅身之斧也)." 말은 고래를 춤추게 하기도 하지만 나와 남을 망치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말은 나의 인격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자신을 돌아보고 새삼 반성합니다. 자녀 교육에서 말을 가리는 것만큼 중요함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고작 그거 가지고 뭘 그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앞으로는 더 심한 말도 하겠지요. 아무리 많이 놀아주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고 한들,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준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두껍게 가로막는 이유는 대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경계합니다.

 

한 살, 두 살 때에는 아이의 의식주 해결이 가장 중요했고, 세 살, 네 살 때에는 어떻게 놀아주고 어디를 데려갈까를 고민했는데 곧 여섯 살을 바라보게 되니 부모로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더 이상 단순히 노는 게 전부가 아닌 시기이기에 학습에 대한 고민,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 위한 고민, 올바른 인성과 자아 존중감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고민. 앞으로 고민이 얼마나 늘어나건,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면 우선 저 자신부터 바뀌려고 노력해야겠지요.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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