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모, 이럴 때가 가장 서글퍼요
맞벌이 부모, 이럴 때가 가장 서글퍼요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6.01.18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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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배려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1주일 동안 유치원 방학이라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여름 방학이야 당연하지만, 유치원에 겨울 방학이 있는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사실 이 사실을 안 것도 다른 일로 유치원에 밤늦게 전화했기 때문입니다. 나은 공주가 집사람과 얘기하면서 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술 학원에서 나 혼자 계단에 올라가다가 누가 잡아가면 어떡하지?" 깜짝 놀란 집사람이 차근차근 물었습니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릴 때 미술학원 선생님이 마중 안 나와 있어?" "응." "그럼 나은이 혼자 미술학원에 들어가 2층까지 올라가는 거야?" "응."


그동안 유치원을 보내면서 하원 시간과 엄마, 아빠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 시간 동안 미술학원을 보냅니다. 하지만 워낙 험한 세상인데다 아이 유괴 사고도 많다 보니 아이를 이리저리 보내는 것이 불안하더군요. 또 아이가 혼자서 계단 올라가는 것을 무척 무서워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시간을 내어 주변의 여러 학원과 상담했습니다. 그리고 한 학원에서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추어 선생님이 나와서 학원 앞에서 아이를 받아주기로 하고 그 학원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일 년이 다 된 지금에야 안 것입니다. 유치원에서는 입구까지 데려다주었으니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미술학원에서는 다른 아이들도 많고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도 저희에게 얘기해 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동안 맞벌이 부모라고 무심한 부모로 비추어지지 않으려고 짬을 내어 학원을 찾아가고 상담 전화도 하면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뒤늦게 부딪치는데, 하물며 생계에 쫓겨 아이에게 변변한 관심조차 줄 수 없는 부모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학원에서는 다른 아이도 많고 유치원 버스가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없더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뒤늦게라도 사정이 이러하니 이해해달라고 했다면 서로의 신뢰는 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어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계단을 혼자 올라가는 것은 큰 시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부모들(특히 아빠들)이 착각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안된 아이를 무작정 야생에 던져놓는다고 알아서 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안심시키고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된 뒤에야 비로소 이겨낼 힘을 가집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상처받고 유아 시기에 생긴 트라우마가 평생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동안 나은 공주가 "미술 학원 가기 싫어"라고 말할 때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엄마와 놀고 싶어서 그렇겠지, 따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아이가 어떤 신호를 보낼 때에는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다는 사실, 부모는 그것을 한 귀로 흘릴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미 시간도 늦었는데 내일 전화하면 되지, 했는데 화가 난 집사람은 바로 유치원에 전화해서 원장님에게 따졌던 모양입니다. 원장님은 "나름 챙긴다고 했는데 아이의 입장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라며 미안해했다는군요.


그런데 그 와중에 또 한번 쇼크를 받았습니다. "내일부터 방학인 거 아시죠?" 유치원에서는 매주 나가는 학부모 알림장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지했다지만, 미처 보지 못한 것이죠. 더욱이 며칠 전에는 연말 잘 보내시라고 원장 선생님에게 직접 전화도 드렸습니다. 그때 제게 귀띔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잊었거나 당연히 알고 있겠지, 라고 생각했겠지요. 물론 일차적으로는 부모 책임이지만 직장과 가사,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가끔 놓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일을 유치원에서 챙겨줄 수는 없어도, 특히 중요한 사실은 잊지 않도록 문자를 발송하여 한번 더 챙겨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죠.


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디다 맡겨야 하나, 하루도 아니고 나흘씩이나.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직장 어린이집에 부탁할 수도 있고 베이비 시터라도 구했겠지만 일요일 밤에는 이미 불가능한 일이죠. 그것도 이제라도 알아서 망정이지 자칫 월요일 아침에 집 앞에서 유치원 버스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렸겠죠.


어쩔 수 없이 처가에 전화했습니다. 처가에서 출퇴근하기는 너무 멀기에 나흘치 갈아입을 옷 따위를 챙겨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장인께서 오셔서 나은 공주를 데려갔습니다. 나은 공주와 며칠씩 떨어져 보기는 처음인데다 이미 고희가 지난 연로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은 분들께 아이를 맡기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녁에 통화하니 집에서는 그렇게 깨작거리던 아이가 할머니가 해주신 밥과 반찬을 많이 먹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았다면서 신나해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빠는 언제 와? 아빠 보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혼자 노는 게 심심해서 같이 놀 친구를 그리워하고 "나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애가 둘이었으면 과연 키울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나마 일주일이라서 다행이지, 어떤 유치원은 2주, 3주씩 방학하는 곳도 있다는군요.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맞벌이 부부는 그동안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이야 맡길 곳 없으면 돈 주고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면 되지, 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환경이 어떤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내 아이를 선뜻 맡길 수는 없습니다.


정치권도 더 이상 일방적인 행정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국민들과의 쌍방향 소통을 강조하고 기업들은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보육 시설들 또한 좀 더 부모의 눈높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령 방학 기간 동안 부모더러 알아서 하라고 하는 대신, 사전에 조사하여 그 기간 동안 신뢰할 수 있는 베이비 시터와 서로 연결해 주거나 공동 보육을 하도록 도와준다면 부모의 부담을 훨씬 줄여줄 것입니다.


요 근래 저출산 문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거리가 되면서 정부도 나서서 이런저런 지원 정책을 매일같이 쏟아내고, 양성평등과 가사의 분담, 아빠 양육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출산 장려를 위해 들어가는 예산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출산율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낮고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전문가들이야 주로 '경제적인 지원'을 강조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문제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관심'과 '배려' 두 단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맞벌이 부부는 날로 늘어가지만, 육아는 '나와는 상관없는 개인의 문제(그것도 여자의 몫)'라는 인식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경쟁과 실적은 있되, 관심과 배려는 없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바쁜 업무로 퇴근이 늦어지거나 며칠 집을 비우고 출장을 가야할 때, 그때마다 아이를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달랑 아이 하나에다 저처럼 '별난 아빠'가 나름대로 아내와 육아를 분담하는데도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하물며 가사와 육아, 직장을 모두 도맡아야 하는 '슈퍼' 워킹맘들은 어떨까 싶습니다. 벽에 부딪칠 때마다 자괴하게 되고, 엄마라는 죄로 직장이냐 아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경력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을 각오하고 직장을 자의 반, 타의 반 그만두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라고 다를지. 남편은 아내에게 전업주부라는 이름을 멍에로 씌워 가사와 육아를 당연하게 떠넘기고, 정부가 무상 보육 정책을 가지고 전업주부와 워킹맘이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나라. 그게 바로 우리 사회가 아니던가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죄인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부모의 입장, 아이의 입장에서 한번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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