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아이는 자살을 선택하게 됐을까?
왜 그 아이는 자살을 선택하게 됐을까?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6.02.0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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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인 집 사람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얼마 전 집사람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방학을 얼마 앞둔 어느 날, 한 졸업생이 학교에 왔답니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 아이는 모처럼 모교를 방문하여 옛 추억을 되살리듯 복도와 교실을 돌아보고 교무실에 와서 자신과 친했던 선생님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집사람은 그 아이의 담임을 맡은 적은 없지만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기에 안면이 있었습니다.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잠시 옛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단 한 번도 모교를 찾아간 기억이라고는 없는데 집사람 말로는 이처럼 종종 졸업생들이 온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졸업한 뒤 몇 년 만에 몸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에 찾아와서 "잘 지내셨나요?"라고 한다면 선생님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울까 싶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아이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신변을 정리하는 법인데, 자신에게 그나마 가장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 학교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학창 시절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 주었던 사람들, 그렇기에 가장 그리웠고 꼭 만나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이죠. 옛날 일을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환하게 웃었던 그 미소가 그 아이에게는 마지막 미소였습니다.


그 아이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집사람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정이 그렇게 가난하거나 불우한 편도 아니랍니다. 다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평소 동물을 좋아했던 아이는 자신의 진로 또한 그쪽으로 가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우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버지가 정해준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만큼 갈등이 심각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책임은 그 아버지에게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분명 성급한 결론이겠지요. 이유가 어떻든 저로서는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인 나라. 특히 청소년 자살률이 몇 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 4명 중 1명꼴로 자살을 생각해 봤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자살률은 청소년만이 아니라 전 연령대에 걸쳐 골고루 높다고 하니 단순히 "우리 아이들이 나약해서"따위로 말할 부분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자살자의 70% 이상이 심한 우울증 환자라고 합니다. 즉, 순간의 욱하는 마음에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고민과 갈등, 그리고 방치 속에서 "나는 이 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모든 이들이 나를 괴롭힐 뿐, 누구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라고 판단했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마음 깊은 곳에 남에게 말 못할 상처, 트라우마가 반드시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상처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상처의 깊이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권위 있는 상담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남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진짜 사람의 마음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지 않은 채 어떻게든 억누르고 살아가지만, 그건 그만큼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그런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상처가 견디지 못할 만큼 깊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만약 상처가 자연 치유되기에는 너무 깊다면, 또한 그걸 치료하는 대신 계속 방치한다면 아물기는커녕 더욱 깊어지겠지요.


상처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의 별만큼 많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장기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평생 고통스러워합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가정불화, 부모의 우울증,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만 여기는 부모, 아이를 존중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주는 대신 내가 정해준 대로 살 것을 강요하며 자식이 내 눈높이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인생의 가치를 매깁니다. 어떤 부모는 자기 인생의 힘듦을 자식에게 한풀이합니다. 과연 그들 중에서 나로 인해 자녀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거나 왕따 문제, 절도, 폭행, 괴롭힘 등 각종 사건 사고가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아이들은 아직은 미성숙하므로 부모를 불러서 상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일으켰지만 그 원인은 아이가 아니라 반드시 부모에게 있는 것이죠. 문제 부모가 문제 아이를 만드는데 정작 자신들은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고 그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 역시 피해자입니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그렇게 자랐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물려주는 것일 뿐입니다. 또 그 부모의 부모도, 그 위의 부모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물림인 셈입니다.


​그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상당수는 끝까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 사회에 대한 불신감, 정신 공황, 충동 장애, 애정결핍, 끝없는 불안증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대인 관계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열등감과 자아존중감을 낮을수록 본능적으로 자기방어 기재가 강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 가볍게 웃고 넘길 일조차 남들 보기에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엄연한 장애입니다. 마땅히 치료의 대상이지만 여전히 육체적 장애만을 장애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낮은 의식 수준에서 정신적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조직 부적응자 혹은 사회 부적응자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이해하고 보듬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누구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대화하는데 있어서도 과연 세계 최고일까요. 초등학생들 절반 이상이 하루 동안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학업에 쫓기는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대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대화는 고사하고 변변히 얼굴을 마주 볼 일조차 없을 것입니다. 또한 모처럼의 대화조차도 아이들에게는 고통입니다. 가족끼리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보다 일방적인 훈계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가족들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은 나날이 높아갑니다. 결국 그 벽은 가정을 단절시키고 부모마저 고립시킵니다.


저는 세상 모든 부모님들에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밥상 머리에서 자신도 지키지 않는 훈계 대신, 자녀가 하는 말을 들어주라고.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 자녀의 말을 먼저 들어 주라고.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고 서운해하기 전에 나는 자녀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자녀가 부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만드는 법입니다.


태어나서 만 7세가 될 때까지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는가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이 시기를 놓치고 나면 사람의 뇌는 이미 굳어버려서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들은 사랑 대신 영재 교육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서적 안정과 자아존중감을 만들어 준 다음에 영재도 있는 것이지, 그것의 전후 관계를 거꾸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똑똑한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맑고 밝은 아이로 만들려고 노력하세요. ​그럼 똑똑함은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법입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 살 딸아이의 수발 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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