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알코올(Alcohol)이 없으니 아이들이 마셔도 상관없어요."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주류매장. 기자가 점원에게 "알코올이 없는 술이 있냐"고 묻자, 점원은 '어린이용 샴페인' 한 병을 추천해줬다. 사과와 복숭아 맛이 섞인 이 샴페인은 분홍색 바탕에 헬로키티(Hello Kitty) 캐릭터가 그려져 단 번에 어린이를 겨냥한 샴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원은 "샴페인이라고 적혀 있지만, 무알코올이니 아이들이 마셔도 문제 없을 것"이라며 "아이 엄마들이 많이 사가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 샴페인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The highlight on any kids' party'(어린이 파티를 위한 것)라는 문구로 '어린이용'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논-알코올 주류(Non-Alcohol, 알코올이 함유돼 있지 않은 주류)는 본래 임신, 수유, 운전 등으로 알코올은 섭취하지 못하되, 술맛을 느끼고 싶은 성인을 위한 음료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거나, '아이도 마실 수 있다'고 홍보를 하는 논-알코올 맥주, 샴페인, 와인, 칵테일 등이 판매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단체나 협회들이 '논-알코올이라도 술은 사회 통념상 아이들에게 적절하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
이 문제의 주류들은 현재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 '미성년자도 마실 수 있는 샴페인', '어른! 아이! 즐겨 먹는 음료' 등의 문구로 부모와 아이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있다. 특히 한 맥주는 '알코올 함량이 0.01% 미만으로 임산부나 수유부, 어린이들까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음료'라며 어린 아이들이 맥주를 병째로 들고 벌컥벌컥 마시는 사진까지 보여준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대형마트, 주류전문점, 편의점 등 오프라인과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이 주류들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사당동의 한 편의점 직원은 "논-알코올 칵테일을 판매 중"이라며 "아이들이 사가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논-알코올 샴페인을 판매 중인 서초동의 한 제과점 직원도 "어린이들이 마셔도 되는 것"이라며 기자에게 아이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샴페인을 추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 주류가 아이들에게 잘못된 음주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형애 대한보건협회 기획실장은 "논-알코올 제품은 청소년에게도 권하지 않는 음료인데, 이를 어린이용으로 판매하거나 '어린이도 마실 수 있다'고 광고를 하는 것은 무지한 일이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논-알코올 음료는 알코올만 없을 뿐이지 맛이나 톡 쏘는 느낌은 술과 동일하게 구현한 것이다. 이 음료는 분명 아이들에게 술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릇된 음주문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주류들은 톡 쏘는 느낌과 향, 맛 등이 술과 동일하게 제조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린이용 샴페인을 시음한 한 여성은 "알코올만 없지, 샴페인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이 주류에 대해 "'언제든지 나이만 되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등 알코올의 잠재적 고객(어린이)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이자 상술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 단체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은 주류는 물론, 논-알코올 제품에도 아이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설령 이 주류들이 현재 법의 테두리에 걸리지 않는다해도 이는 분명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조사를 해서 국세청 등에 제재를 가해야한다"고 말했다.
방 실장의 말처럼 어린이에게 이 주류들을 판매하는 것은 법망에 걸리지 않는다. 알코올이 없어 주로 '혼합음료'나 '탄산음료'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과 관계자는 "논-알코올 음료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음료까지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만일 논-알코올 음료가 청소년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식약처에서 규제를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류혜남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사무국장은 "아이들은 담배나 주류에 쉽게 접근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들 주류는 아이들에게 음주하는 액션을 취하게 하는 등 성인의 음주문화를 모방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너도 술 먹을 수 있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며 "이 제품을 아이들에게 판매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고,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이 음료를 주기 전 제발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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