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왔다, 경단녀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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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니스트 김신희
  • 승인 2016.06.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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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딸이 말하는 워킹맘 이야기

[연재] 워킹맘의 일과 육아 저글링, 어떻게 할 것인가

몇 해 전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전업주부를 선언했던 그녀가 돌아왔다. 10여 년의 커리어를 접고 아이 돌보기에 나선 지 3년만에 사회로 복귀 한 것. 상대적으로 긴 커리어 공백을 딛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까지 재취업을 위한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마음 먹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그녀. 그럼에도 어느덧 2학년이 된 아이와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워킹맘으로 돌아온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회사에서는 클라이언트와 상사에게 콤보로 깨지고, 오늘 아침엔 엄마가 회사다니니까 같이 매미 잡으러도 못 간다고 우는 아이에게 버럭 혼내고 나오는데. 혹시 지각할까봐 헐레벌떡 뛰어나오면서도 펑펑 우느라 멘탈이 탈탈 털려버렸어. 참, 이게 무슨 소용인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아직 겨우 네 살 아이를 하나 둔 초보엄마가 감히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고수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에는 내공이 부족했다. 하지만 친구의 말에 먼저 감정 이입이 된 부분은 ‘워킹맘의 입장’이 아닌, ‘워킹맘의 딸’ 입장에서 였다.

나는 어릴 적 당시로는 흔치 않았던 일하는 엄마의 딸로 자랐다. 어린시절 기억 중에 영화처럼 떠오른 한 장면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30여 년 전 3월 2일이었다. 그 날 워킹맘인 엄마는 휴가를 내지 못해 아빠가 입학식에 데리고 가기로 했었는데, 아빠마저 회사에 급한 일로 오지 못해 이제 학교엔 못 다니나보다 하며 울고 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이모가 늦게 입학식에 데려다주셔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나중에 커서 전해들은 말로는 그날 이모는 엄마를 심하게 질책하며 어린 애가 아직 추운 3월 초에 한여름 원피스를 입고 있더라고 엄마한테 일을 당장 그만두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 몇 번의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고, 결국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하시던 일을 그만 두셨다.(물론 몇 년후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하셨지만…)

ⓒ김신희
ⓒ김신희


이 입학식날의 에피소드는 어린시절 큰 상처였다.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울고 있던 방안의 가구배치까지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상처가 선명했었다. 그리고 그 '한여름 원피스'라는 옷도 기억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무지개가 그려진 하늘하늘한 여름 원피스였다. 나는 입학식이라는 생애 첫 학교입문에 들떠 가장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이후에도 2부제로 진행됐던 오후반 수업 시간을 못 맞춰 엄마 직장으로 전화가 가고, 숙제를 까먹고, 홀로 집에 오는 계단에서 넘어지는 등 몇몇의 에피소드로 나는 울보가 되었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오늘 친구가 말한 엄마랑 매미 잡으러 못 간다며 엄마의 출근길에 눈물을 흘렸을 친구의 딸도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감정표현에 서투니까 단지 매미 얘기를 들먹였겠지만, 아이는 표현하지 못 하는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싶었으리라. 이것은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자 일상이기도하다.

그러나 워킹맘의 딸로 살아가며 큰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을 에피소드들은 다행히 컸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상처는 있었지만 나는 그 덕에 좀 더 감정에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우산이나 준비물을 미리 잘 챙기지 않으면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깊이 깨닫고 준비물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철저한 준비성, 엄마가 퇴근하실 때까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스스로 챙기는 독립적인 면까지. 때로는 외로웠고, 여러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나… 이만하면 잘 컸다고 생각한다.

잘 성장했다는 것은 정의하기 나름이고, 더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잘 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잘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일 하고 있는 꼬장꼬장한 우리 엄마가 꽤 자랑스럽다. 내가 스스로 잘 컸다고 믿기까지,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때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워킹맘의 딸로 살아가는 것이 외롭거나 슬픈 일인 것만도 아니고 이정도면 엄마도 나도 윈윈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본 기사 중에 '엄마를 보고 잘란 딸, 워킹맘의 딸이 성취도가 더 높다'는 기사는 나의 이러한 느낌과 생각을 대변해주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라는 것도 하나의 가르침이라고, 멘탈이 탈탈 털렸다는 친구를 위로해주었다

"사회로 돌아온 친구야, 격하게 환영한다! 네 아이도 언젠가 나처럼 그런 너를 엄마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많이 존경하고 사랑할 거야. 힘내! 같은 일하는 엄마로서 서로 위로하고 잘 이겨내보자."

*칼럼니스트 김신희는 올해 서른 여덟의, 14년 차 직장인이자 네 살 된 딸을 키우는 엄마다. 일하느라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낳고 다시 복귀하여 치열하게 일하고, 치열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의 성장과 동시에 스스로도 성장하고 싶은,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괴롭기도 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워킹맘. ‘워킹(Working)’으로는 오랫동안 경영 컨설턴트였고, 지금은 외국계 소비재 회사의 디지털마케팅팀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맘(Mom)’으로서는 꿈이 엄마이자, 육아좀비, 그리고 동네 아줌마이다. 최근에는 초보 워킹맘의 일과 육아저글링 스토리 '워킹맘의 딸'이라는 책을 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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