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먼저 보면 절대 안 되는 그림책
부모가 먼저 보면 절대 안 되는 그림책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7.10.23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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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요시타케 신스케 <뭐든 될 수 있어>
ⓒ스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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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지난달 홍대 부근에서 열린 와우북페스티벌에 갔다가 요시다케 신스케의 그림책 <벗지 말 걸 그랬어>와 <뭐든 될 수  있어>를 샀다.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은 채. 그의 그림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고 나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믿고 보는 작가니까.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7살 둘째가 책 <뭐든 될 수 있어>를 살펴보더니, 이런다.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엄마 잠깐 나 좀 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동작을 잘 보고 뭔지 맞혀 봐."


"응? 몸으로 말해요 같은 거야? 재밌겠네, 그래. 한번 해 봐."


실제 책의 내용도 그렇다. 누리가 몸동작으로 퀴즈를 내면 엄마가 그걸 맞히는 거다. 오랜만에 그림책 가지고 하는 놀이. 둘째보다 내가 더 신났다. 평소 "아빠는 지구만큼 좋아하고, 엄마는 개미 똥만큼 좋다"는 둘째가 오랜만에 아빠가 아닌 나에게 먼저 놀이를 제안해서다. 그런데 퀴즈가 시작된 지 5분도 안 되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심정이었다. 당최 내가 맞힐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하며 말했다. 


"제발 힌트 좀 줘."


"힌트는 없어."


이럴 때는 단호한 둘째. 이럴 줄 알았으면 오자마자 책 좀 미리 봐 두는 건데... 후회막급이다. 문제가 대체 어떤 수준이냐면... 삼각김밥, 오므라이스, 바지락(?) 등을 아이가 몸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동작을 보고 맞혀야 하는 거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책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땡, 틀렸어" "엄마, 또! 틀렸어" 계속되는 땡 소리. 이런 내가 답답하기는 막내도 마찬가지.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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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자꾸 틀려!"


"네가 힌트도 안 주니까 그러잖아."


칫, 다 맞히면 또 다 맞힌다고 뭐라고 할 거면서. 왜냐고? 애들은 원래 그러니까. 엄마아빠가 문제를 다 맞혀도 속상하고, 못 맞혀도 속상하다(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책속에서 누리 엄마가 "못 맞혀도 화 안 낼 거지?"라고 미리 다짐을 받는 장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완전 공감하며 읽었다). 계속 틀리는 데도 퀴즈 내기를 포기하지 않는 나리. 이번에는 진짜진짜 쉬운 문제라고 내는데... 세상에나. 이 문제를 맞히는 엄마가 정말 있을까(정답은 이 모든 동작이 가능한 한 단어다).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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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야말로 1도 짐작할 수 없는 동작들이었다. 만약 정답을 맞히는 엄마가 있다면 상줘야 한다. 그만큼 아이 마음을 잘 알아준다는 거니까. 아이 눈높이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는 거니까. 아이 눈높이로, 아이 마음을 읽어야 보이는 이 책은 그래서 어렵다. 진짜 어렵다.


그래도 미리 답을 확인해보지는 말자. 답을 맞히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이게 뭐라고 목숨 거는 거기 아빠들, 다 보이거든요!). 못 맞히면 못 맞히는 대로 아이 마음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하자는 교훈을 얻을 것이요, 잘 맞히면 또 잘 맞히는 대로 아이 마음 아주 잘 아는 엄마아빠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나마 책의 마지막, 누리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동작 그대로 잠들어버린 퀴즈의 난이도는 좀 쉽다는 게 위안이 된다. 그러니 엄마아빠들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지어다. 화내지 말지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두 딸과 함께 읽으며 울고 웃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글로 씁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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