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무시하다는 일곱 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어마무시하다는 일곱 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8.02.14 1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이의 일곱살 인생] 다가오는 것들

“언제까지 내가 목욕시킬 수 있을까?”

모처럼 한가한 날, 남편이 연이를 씻기고 나오더니 아쉬운 듯 물어본다.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작은 바람이 인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목욕시킬 때 연이가 부쩍 크게 느껴졌던 터였다.

“아직은, 괜찮지 않아?”

드라이어를 찾느라 분주한 남편 등에다 대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한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숙제처럼 맡기곤 했던 큰 딸의 목욕인데. 마냥 아기로만 대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불현듯 실감해버렸다. 우리 딸, 벌써 일곱 살이구나. 연이는 쉬지 않고 자라는데 어째서 ‘성장’을 알아챌 때는 매번 생경한 느낌인 걸까. 연이의 머리를 정성스레 말리는 남편과 그 앞에서 꼼지락대는 연이. 좋아하는 투샷을 바라보며 ‘어느새 또 다른 시기를 준비할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한다. 이르게 고민하게 되는 건 늘 그렇듯 부모의 숙명이다.

며칠 전, 아이들이 맘껏 뛸 수 있도록 1층으로 이사를 하고, 신랑 직장동료 부부를 초대해 집들이를 하던 날. 처음 보는 언니, 오빠, 동생과 신나게 놀던 연이가 놀이가 끊기는 게 아쉬웠는지, 놀다보니 화장실이 급했는지 방에서부터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거실을 종종종 가로지르는 일이 있었다. 식탁에 모여 있던 어른들이 모두 당황해 저마다 어버버버. 어려운 손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나는 “얼른 화장실로 가!”하고 큰소리를 내버렸다. 어른들의 반응에 무안했는지 연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화장실에 홀로 앉아 울먹거리는 연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곤 잠시 숨을 골랐다. 연이는 ‘아이답게’ 한 일인데 어른들은 ‘어른스럽게’ 반응하게 된 상황, 이 간극을 설명하려니 조금 난감했다. 아까워서, 너무 소중해서 화를 내고 말았다는 걸 우리 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연이는 잘못한 게 없어. 다만 이제는 일곱 살이니까... 유치원에서도 화장실 가서 옷을 벗고 입는 거라고 배웠지? 집에서도 그러는 게 좋아.”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 일곱 살이라는 이유를 대었는데, 연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해하기에도, 조심하기에도 아직은 어린. 하지만 어느새 소녀티가 물씬 나는 묘한 일곱 살.

◇ 다가오는 것들

지금 연이는 어른으로 대하기엔 아이 같고, 아이로만 대하기엔 무언가 섭섭한 때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즈음의 변화가 부모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알려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섣부르게 알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아이의 변화는 외적인 부분으로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여린 세계 속에서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불게 될까.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흔히들 일곱 살을 얘기할 때, 밉다고 하는 건 예사말이다. 심지어 ‘죽이고 싶다’는 강력한 반어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육아 선배들은 고집이 세지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반항이 심해지고 등등의 말로 일곱 살 인생에 대해 서늘하게 입을 모은다. 어쩌면 일곱 살을 표현하는 수많은 레토릭들은 무엇이 다가오는지 채 알기도 전에 이 시기를 맞닥뜨린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일지도 모른다. 혹여 그 변화를 미리 눈치챘다 해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은 언제나 부모의 기쁨이자 동시에 아쉬움이므로, 자꾸만 품을 밀치고 나가려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이 사진을 본 지인들은 연이가 부쩍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일곱살 연이"의 새해 첫 미술관 나들이. 올해는 연이와 미술관을 자주 다닐 계획이다. ⓒ신은률
이 사진을 본 지인들은 연이가 부쩍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일곱살 연이"의 새해 첫 미술관 나들이. 올해는 연이와 미술관을 자주 다닐 계획이다. ⓒ신은률

◇ 일곱 살 인생

말로만 듣던 어마무시한 일곱 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어마무시라고 써놓고 ‘엄마 무시’라는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걸 보니 나도 살짝 겁이 나긴 하나보다. 연이가 우리에게 선사할 기쁨은 얼마큼일지, 부모로서 감내해야 할 아쉬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 아직은 가늠할 수가 없다. 일곱 살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프로이트, 에릭슨이나 피아제의 발달이론을 들여다보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내려놓았다. 때가 되면 아빠가 딸아이와의 목욕을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듯, 일곱 살 연이를 느슨하게 안아보기로 한다. 이제 우리 차례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육아하고 있다.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