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내가 목욕시킬 수 있을까?”
모처럼 한가한 날, 남편이 연이를 씻기고 나오더니 아쉬운 듯 물어본다.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작은 바람이 인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목욕시킬 때 연이가 부쩍 크게 느껴졌던 터였다.
“아직은, 괜찮지 않아?”
드라이어를 찾느라 분주한 남편 등에다 대고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한다.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면 숙제처럼 맡기곤 했던 큰 딸의 목욕인데. 마냥 아기로만 대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불현듯 실감해버렸다. 우리 딸, 벌써 일곱 살이구나. 연이는 쉬지 않고 자라는데 어째서 ‘성장’을 알아챌 때는 매번 생경한 느낌인 걸까. 연이의 머리를 정성스레 말리는 남편과 그 앞에서 꼼지락대는 연이. 좋아하는 투샷을 바라보며 ‘어느새 또 다른 시기를 준비할 때가 되었나보다’ 생각한다. 이르게 고민하게 되는 건 늘 그렇듯 부모의 숙명이다.
며칠 전, 아이들이 맘껏 뛸 수 있도록 1층으로 이사를 하고, 신랑 직장동료 부부를 초대해 집들이를 하던 날. 처음 보는 언니, 오빠, 동생과 신나게 놀던 연이가 놀이가 끊기는 게 아쉬웠는지, 놀다보니 화장실이 급했는지 방에서부터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거실을 종종종 가로지르는 일이 있었다. 식탁에 모여 있던 어른들이 모두 당황해 저마다 어버버버. 어려운 손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나는 “얼른 화장실로 가!”하고 큰소리를 내버렸다. 어른들의 반응에 무안했는지 연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화장실에 홀로 앉아 울먹거리는 연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곤 잠시 숨을 골랐다. 연이는 ‘아이답게’ 한 일인데 어른들은 ‘어른스럽게’ 반응하게 된 상황, 이 간극을 설명하려니 조금 난감했다. 아까워서, 너무 소중해서 화를 내고 말았다는 걸 우리 연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연이는 잘못한 게 없어. 다만 이제는 일곱 살이니까... 유치원에서도 화장실 가서 옷을 벗고 입는 거라고 배웠지? 집에서도 그러는 게 좋아.”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 일곱 살이라는 이유를 대었는데, 연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해하기에도, 조심하기에도 아직은 어린. 하지만 어느새 소녀티가 물씬 나는 묘한 일곱 살.
◇ 다가오는 것들
지금 연이는 어른으로 대하기엔 아이 같고, 아이로만 대하기엔 무언가 섭섭한 때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즈음의 변화가 부모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알려주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섣부르게 알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아이의 변화는 외적인 부분으로만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여린 세계 속에서 얼마나 거센 바람이 불게 될까.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흔히들 일곱 살을 얘기할 때, 밉다고 하는 건 예사말이다. 심지어 ‘죽이고 싶다’는 강력한 반어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육아 선배들은 고집이 세지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고, 반항이 심해지고 등등의 말로 일곱 살 인생에 대해 서늘하게 입을 모은다. 어쩌면 일곱 살을 표현하는 수많은 레토릭들은 무엇이 다가오는지 채 알기도 전에 이 시기를 맞닥뜨린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일지도 모른다. 혹여 그 변화를 미리 눈치챘다 해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은 언제나 부모의 기쁨이자 동시에 아쉬움이므로, 자꾸만 품을 밀치고 나가려는 아이가 야속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 일곱 살 인생
말로만 듣던 어마무시한 일곱 살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어마무시라고 써놓고 ‘엄마 무시’라는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걸 보니 나도 살짝 겁이 나긴 하나보다. 연이가 우리에게 선사할 기쁨은 얼마큼일지, 부모로서 감내해야 할 아쉬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지 아직은 가늠할 수가 없다. 일곱 살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프로이트, 에릭슨이나 피아제의 발달이론을 들여다보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내려놓았다. 때가 되면 아빠가 딸아이와의 목욕을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듯, 일곱 살 연이를 느슨하게 안아보기로 한다. 이제 우리 차례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일반대학원에서 정치학을 배웠다. '아이들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해 육아하고 있다. 7살, 5살 남매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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