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는 교육은 이제 그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라는 교육은 이제 그만
  • 칼럼니스트 엄미야
  • 승인 2018.03.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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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노동’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의 둘째딸과 함께 과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면 그 친구와 늘 점수 차이가 크게 났다. 안 그래도 셋방살이에 주눅 들었던 나는 공부실력도 크게 차이가 나니 더더욱 주눅 들어 살았더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빠 없이(아빠는 외화벌이 노동자셨다)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우던 우리 엄마 기 살려드리게 보란 듯이 공부라도 잘했어야하는데.

그런데 어느 날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엄마가 일을 다녀서 미야가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아.”

“그러게. 엄마가 있어야하는데.”

나는 이상했다. 나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엄마가 일하는 아이었지. 엄마가 학교에 자주 찾아오지 않아도, 갑자기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로 마중 나오는 엄마는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자식들도 잘 키우고 싶은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것을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일하는 엄마가 좋았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 일하는 엄마로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좋아한다.

엄마가 노동자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습득하게 하게 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빠의 노동 못지않게 엄마의 노동도 똑같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얼마 전 지방으로 일주일 출장을 가게 되었다. 둘째 날 작은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학부모 총회에 오라면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한테 불참한다는 의사를 전하지 못해 일어난 내 실수였다. 엄마 실수라고, 미안하다는 말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아가. 엄마는 일하는 엄마야. 알고 있지? 엄마도 엄마의 일이 있고, 그 일도 엄마한텐 참 중요한 일인데. 우리 막내가 친구랑 약속이 있다고 하면 엄마도 존중해주지? 엄마의 일도 우리 막내가 존중해주면 좋겠어.”

그러자 당장 집으로 오라고 떼를 부리던 아이가 조용해졌다.

"이중에 누가 노동자일까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붙인 스티커. 여전히 경비아저씨 같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만이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미야
"이중에 누가 노동자일까요?"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붙인 스티커. 여전히 경비아저씨 같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만이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미야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선생님한테 전화해 줘야 돼.”

나는 덧붙여서 이야기해줬다. 선생님도 집에서는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일 텐데 선생님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일하는 것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학교로 출근해 너희들을 가르칠 수 있겠니. 그렇게 모든 일하는 엄마, 아빠들은 바깥에서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다.

나아가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노동이 똑같이 가치 있는 일임을 가르쳐라.

청소노동자를 가리키며 “너도 공부안하면 저렇게 돼”가 아닌, “청소하는 저분들도 다 같이 잘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어릴 적부터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 ‘노동’이라는 단어를 천시하고, 직업에도 층위가 있다고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아이가 4학년 때 학교로 부모참여수업을 나간 적이 있다.

‘부모의 직업’을 소개하는 주제였는데, 수업을 시작하면서 “노동자는 00이다”에 대해 발표를 시켰더니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거지요”,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들고는 “불쌍한 사람이요”라고 해서 나도, 참관하던 선생님도 다 같이 놀랐던 일이 있었다.

그날 아빠가 왜 노동자인지, 아니면 왜 노동자가 아닌지를 묻는 질문에 “아빠가 공장에 다녀서 노동자라”고 신나서 대답한 아이는 우리 아이 딱 한 명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답하거나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설명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교사가 다가와서는 “이런 수업이 더 많이 필요하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예, 선생님, 그렇지요. 그래야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지간에 부모님을 존중하고,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대부분 노동자가 된다. 서비스노동자, 돌봄노동자, 의료노동자, 공무직노동자, 교사노동자, 연구노동자, 경찰노동자 그리고 미래사회에 새로 생겨날 수많은 노동들을 담당하는 다양한 노동자가 된다. 지금부터 모든 노동이 소중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가치 있다는 ‘조기교육’을 권한다. 가정에서부터 학교에까지.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아이는 국가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교육 추종자이며, 꿈이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따뜻한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민주노총 성평등 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속노조 경기지부 부지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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