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떠나보낸 딸아이, 보상은 커녕 사과도..”
“생일날 떠나보낸 딸아이, 보상은 커녕 사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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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5.10 16: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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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하기로 한 날, 아이가 세상을 떠났어요. 감기 몇 번 말곤 앓은 적도 없는 건강했던 앤데...병원에 가도 원인을 모르고..."

 

인천에 거주하는 최지연 씨(35) 부부는 4년 전 금쪽 같은 아이를 잃었다. 처음 아이가 미열이 났을 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동네병원에서도 형식적인 처방만 내렸다. 하지만 아이는 날이 갈수록 약해져 갔다. 큰 병원에 갔을 땐 이미 폐가 망가진 뒤였다. 의사는 '간질성 폐렴'이 의심된다 했다. 온갖 약도 듣질 않았다. 눈도 못 뜨고, 자가호흡도 못하던 아이는 그렇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1살배기 아이의 첫 생일날이었다.

 

아이가 떠난 뒤 최 씨는 별별 생각을 다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사람 많은 곳에 다녀서 그랬나, 청결하게 못 키웠나 죄책감도 들었구요." 그러다 지난해 원인 미상 폐질환의 주범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됐을 때 최 씨는 아차 싶었다. 최 씨도 4년 전 옥시에서 나온 가습기 살균제를 3~4달 가량 사용 했을 뿐 아니라, 피해 증상도 아이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가습기살균제가 연이은 산모·영아 사망의 원인으로 밝혀진 후 5달이 넘게 지났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은 아직도 보상은 물론,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개별적으로 소송하라'는 말 말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와 기업의 행태에 상처도 채 치유되지 않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눈물만 짓고 있다.

 

■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발표까지 해놓고 왜...

 

피해자들은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란 정부의 발표 이후에도 제자리걸음인 상황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최 씨는 "정부도 사각지대에 있는 상품이었다고 인정했다. 발표 난 다음에 당연히 순리대로 피해자 규모 파악도 하고 대책 마련도 할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피해자만 있고 피의자는 없는 그런 상황이 피해자들을 심적으로 더 힘들게 한다"면서 "지난 명절 때 대통령이 손녀딸과 함께 시장을 찾은 모습을 보고 누군가 '당신은 손주보고 즐거워하고 있지만 저희는 그러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는데 정말 공감했다"며 울먹였다.

 

지난해 2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까지 잃었다는 안성우 씨도 정부의 대처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안 씨는 "발표 이후 빠르게 문제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연락도 안오고 역학조사도 지연됐다"면서 "질병관리본부에 피해사례를 접수 했지만 아직까지도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의 책임으로 돌린 후 관심도 없고, 기업쪽에도 형사적 책임 없이 민사니까 알아서 해라 하는 식이었다"면서 "사람이 죽어도 기업 책임이 없다는 건데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어떻게 물건을 믿고 사겠는가"라며 반문했다.

 

■ "저희 부서 담당이 아니라서.." 나몰라라하는 정부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단 주장은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먼저, 가습기살균제의 문제 성분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디움(PGH)의 위험성을 3년 전에 이미 인지해 정부의 식품안전정보서비스를 통해 알려왔음이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PGH를 흡입할 경우 호흡기 염증을 비롯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정작 해당 성분을 포함한 채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던 가습기살균제는 그대로 방치했다. 제조업체가 아무런 해가 없다며 판매할 때도 아무런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자들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질병관리본부도 지난 11월 발표를 통해 "의약품도 아니고 의약외품도 아니고 단순히 일반 공산품으로 판매가 된, 그런 사각지대였다"며 사실상 과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막상 내놓은 대책은 ▲위해성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6종 수거 명령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지난해 12월 30일부터 의약외품으로 지정한 것이 전부였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 등 관련 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취재 결과, 정부는 여전히 '저희 담당이 아니다'라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 사례에 대해 조사했을 뿐 대책 부분은 저희가 담당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약품정책과의 한 관계자도 "의약외품 지정 고시를 추진했을 뿐 다른 측면에 대한 조치는 다른 부서에서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의 한 관계자는 "저희 담당이 아닐 뿐 아니라 어느 한 부처에서 담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가 차원에서 대응할 때 기술표준원이 창구 역할만 하겠다고 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 현실적으로 힘든 싸움…정부 차원 대책 마련해야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옥시 등 기업들도 사과 한 마디 없이 개별적으로 소송하라며 뒷짐지고 있다. 이에 피해자 40여명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제일 피해를 많이낸 곳 중 하나였던 제조업체 '세퓨'가 문을 닫아 소송대상이 없어지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또 법적 소송 시 피해자들 스스로 피해를 일일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구제 받기도 쉽지 않다. 그 뿐 아니라 피해자들 대부분은 상처도 아물지 않은 채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이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여력도 없다. 피해자 모임을 비롯한 관련 시민 단체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태 해결을 해야 한다'며 촉구하는 이유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대책모임의 강찬호 씨는 "환경부, 복지부 등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태일지라도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라면서 "30%씩 책임이 있다고 하면 모아서 100%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재산권,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지난해 8월 정부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8개월 동안 피해자 대책이 전혀 없다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라면서 "10월 국정 감사 때 책임 있는 정부기관 및 기업 책임자들에 엄중히 책임을 묻도록 요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humaned@fnnews.com 파이낸셜뉴스 남형도 기자 / 베이비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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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j**** 2012-05-13 21:07:00
아!!
저도 사용했던 제품이라

slc**** 2012-05-10 22:39:00
정말
정말 안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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