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라고 훈계 안 해야겠다
이제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라고 훈계 안 해야겠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1.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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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어때] 류재향 글, 이덕화 그림 「욕 좀 하는 이유나」

"욕은 하면 안 돼."

욕하지 말라고 배웠다. 내 아이들에게도 욕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건 해서는 안 되는 나쁜 말이라고 알려줬다. 어디선가 누군가 욕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으로 얼굴이 돌아갔다(그렇다고 눈도 못 맞추면서!). 버스 안이나 지하철, 혹은 카페에서 말끝마다 '씨X'을 붙이는 아이들을 보며 개탄했다. '세상에 바르고 고운 말이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말끝마다 욕을 붙이나. 한두 번도 아니고 거참 듣기 불편하네'라고. 그랬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욕 한번 찰지게 해 본 적 없는 아이였다. 그 흔하디흔한 '씨X'조차.

온라인 서점에서 새로 나온 동화 리스트를 훑다가 제목을 보고 멈칫했다. 「욕 좀 하는 이유나」(류재향 글, 이덕화 그림, 위즈덤하우스, 2019년). 그 아이가 하는 욕의 실체가 궁금했다. 게다가 출판사는 "'소오름' 돋을 만큼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투로 문장을 썼다"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이제 곧 열네 살, 열 살이 되는 두 아이를 둔 부모인 내가 '욕 좀 한다는 아이의 욕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라고 그 내용을 궁금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수순.

열네 살, 열 살 두 아이를 키우는 나. 「욕 좀 하는 이유나」를 지나칠 수 없었다. ⓒ최은경
열네 살, 열 살 두 아이를 키우는 나. 「욕 좀 하는 이유나」를 지나칠 수 없었다. ⓒ최은경

◇ "나 욕 좀 가르쳐 줘, 씨X 말고 좀 더 창의적인 욕으로"

「욕 좀 하는 이유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이유나에게 친구 소미가 간절하게 부탁한다.

"나 욕 좀 가르쳐줘."

먹던 닭강정이 병아리가 되어 튀어나올 만큼 이유나는 당황한다. 그것도 '씨X'같은 "하찮은 욕 말고 다른 욕, 좀 더 창의적인 욕"을 가르쳐 달라고 하니 원. 그런데 웬일인지 유나는 소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 고등학생 오빠에게도 묻고, 초록색 검색창에 질문도 해보지만 '발 닦고 잠이나 처자라, 개초딩' 따위의 현실 댓글이 달릴 뿐 '창의적인 욕'을 알려주는 데는 없다. 그러다가 소미가 갑자기 왜 욕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유나는 결국 성공한다. '똥 통에 빠질 녀석'이나, '치석 틈에 똬리 튼 충치 같은 녀석', '넓적송장벌레 같은' 따위의, 누가 들어도 신선한 '창의적인' 욕, 처음 들어보는 욕을 찾아 소미에게 알려준다(국어사전의 용도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그리고 소미에게 그 뜻을 알 수 없는 욕을 하며 괴롭힌 친구 호준이에게 복수한다. 이게 끝이었다면 좀 뻔했을까. 작가는 아이들 마음으로 한 뼘 더 들어간다.

유나는 소미를 괴롭힌 호준이를 혼내준 건 후련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호준이 역시 친구들 앞에서 유나가 한, 뜻을 알 수 없는 욕을 들으며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소미에게 "그런 말(욕) 안 하는 이유나가 훨씬 좋다"며 "이제 욕 안 가르쳐줘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 "애써 복수해줬더니…." 유나는 기분이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소미의 말이 신경 쓰인다.

복수 사건이 있고 난 후 유나는 호준이가 욕을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욕을 쓰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호준의 속마음도 듣는다. 호준이는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였다. 학교도 마음에 안 드는데, 말만 하면 아이들이 놀렸다. 그런데 영어로 욕을 하니까 애들 반응이 달랐다는 거다. 쿨하고 멋있다면서. 유나는 그런 호준이에게 그날의 일을 사과한다. 이후 호준이도 소미에게 정식으로 사과한다.

◇ 욕하는 아이에게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음을…

이 책에는 기대했던 만큼, 요즘 애들이 쓰는 욕은 없었다. 대신 책장을 덮으면서 아이를 키우며 숱하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애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는 이야기. 얼마 전 큰아이도 그랬다. 민주주의가 어쩌고, 우리나라 독립운동가가 어쩌고를 써놓는 학교 학습노트에 큰아이가 '너는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이상한 말을 적어놨기에 물었다.

"이 글은 뭐야? 누가 봐도 OOO한테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여기다가 이렇게 써도 돼? 이거 그 친구한테 하는 욕 아니야?"

"선생님이 써도 된다고 했어."

"응? 무슨 말이야?"

"말로 하기 어렵고 힘든 건 글로 써도 된다고. 그래서 쓴 거야."

아아, 그렇게라도 답답한 걸 풀고 싶었던 거구나. 친구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로 고민이 많은 건 알았는데, 이렇게 욕이라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건 몰랐다. 선생님에게 한 수 배웠다. 그러고 보니 앞서 내가 한 말을 수정해야겠다. 나도 한때 이유나처럼 욕 좀 해본 아이였다고 고백해야겠다. 차이라면 말 대신 글로 했다는 거.  말로 내뱉지 못하고 일기장에 써놓은 그 수많은 욕은 욕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미의 말대로 '하찮은 욕'이 아니라, 대단히 창의적인, 어디에도 없을 법한 나만의 욕들로 꽉 채워진 일기장. '@#$%^&&&&*%$#$$@$#%^'이라고 쓰면서 분함을 풀고, 화를 삭이면서 나를 토닥거려준 그 다양하고 창의적인 욕들이 그제야 생각난 거다. 말로 하면 서로 상처가 될 게 뻔하니 글로 쓴 거겠지.

그러니 아이들에게 욕하지 말라고 훈계하지 말아야겠다. 그보다 그 욕의 뜻을 아는지 묻고(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니까), 왜 그런 욕을 하게 됐는지 들어줘야겠다. 당장 혼내지 말고 그 마음에 관심을 둬야겠다. 물론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과 달리 "그냥", "몰라" 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계속 물어야지(말할 때까지 집요하게 묻는다는 뜻은 아니다).

'엄마는 언제나 너에게, 너의 마음에 관심 있어' 이런 마음을 아이가 알 수 있게, 그 진심이 느껴지도록 그런 티 팍팍 내고 살아야지. 그러면 언제든 욕하고 싶을 때, 혼내지 않고 들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생각을 조금은 하지 않을까. 혼내는 엄마가 아니라 내 이야기 들어주는 엄마로 한 뼘쯤 가깝게 생각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궁금한 거 한 가지. 그런데 이유나는 왜 욕 좀 하게 된 걸까? 이유나, 다음에는 네가 '욕 좀 하는 이유나' 들어보자, 응?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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