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한 달째, 느슨하게 살고 소소하게 웃는다
자가격리 한 달째, 느슨하게 살고 소소하게 웃는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4.17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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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끝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끝날 것은 알기에

문자 그대로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지 어느덧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우리 가족은 내내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남편만 2주에 한 번 정도 생필품을 사러 밖으로 나갈 뿐이다. 그마저도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한 식료품 등을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로 픽업해온다. 늘어가는 것은 매너리즘과 뱃살, 그리고 게으름이다.

아이들은 이제 창의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스크린 타임’ 같은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랑 한참 놀아주다가 게임을 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동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작은아이도 오빠를 따라 하다가 인형을 나란히 늘어놓고 혼자 역할 놀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태블릿 PC로 동영상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에 있는 책은 이미 다 읽은 지 오래인데, 도서관조차 갈 수 없으니 큰아이를 위해서라도 E-book을 준비해줘야 하나 고민이다.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이번 학년이 끝날 때까지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라서 여름에 한 학년이 끝나는데, 그 시기는 보통 6월 초다. 남편이 일하는 대학교도 이미 오래전에 같은 결정이 났다. 말인즉슨, 앞으로 최소 두 달 정도는 더 ‘집콕’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말론자가 만들어놓은 지하 벙커에 갇힌 것처럼, 우리 네 식구는 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아 오늘도 하루를 오롯이 함께 보낸다. 문득 내가 어릴 적 4월마다 학교에서 그리던 과학상상화가 떠오른다. 내가 상상하던 2020년의 모습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화상통화를 하고 모든 것이 문 앞까지 배달되는 일상. 하지만 창궐하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격리되는 모습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마치 인어공주가 뭍을 바라보듯이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쳐다본다. 미국의 자가 격리(Stay at home) 명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미국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진자 수 역시 안정적으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서 나와 아이들은 집 앞조차 나가지 않는다. 바깥 공기를 직접 느끼지 못한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이럴 때는 집이라도 넓으면 좋았으련만 하고 의미 없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태가 장기화하며 경제상황도 안 좋아졌다. 이직을 준비하다가 새 직장의 구두 오퍼(offer)까지 받았던 사람들마저 채용 계획 자체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실업자가 되었다는 얘기도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식당을 운영 중이던 한 지인은 주(state)에서 제공하는 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미봉책이지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 아이들 웃는 소리에서 느낀 희망…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함께 꾸민 부활절 계란. 부활절 맞이 계란 찾기 놀이를 하니 아이들이 모처럼 까르르 웃는다. ⓒ이은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함께 꾸민 부활절 계란. 부활절 맞이 계란 찾기 놀이를 하니 아이들이 모처럼 까르르 웃는다. ⓒ이은

남편이 일하는 학교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사립이 아닌 주립 대학인데도 임용이 예정된 사람 중 오퍼에 사인하기 전 단계에 놓인 사람들은 모두 임용이 보류되거나 취소되었다고.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같은 부서의 몇몇 사람들이 무급휴가나 월급삭감을 감내하게 되었다니 모두가 몹시 어려운 때인 것은 확실한 듯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고립감이 느껴지는 요즘, 나는 시간이 나면 작은아이의 친구와 그 아이의 엄마(나의 친구이기도 하다)와 화상채팅을 한다. 자가 격리 전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플레이 데이트(Play date)를 하던 캐서린과 그녀의 딸 엘리를 화면으로나마 만난다.

아이들은 서로 반가워하다가도 15분쯤 지나면 흥미를 잃고 각자의 탐험을 하러 화면 밖으로 벗어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서로를 발견하면 반가워하고 웃으면 소리를 지르는데 그나마 이 화상채팅이 비슷한 일상에 약간의 재미를 주는 이벤트가 된다.

며칠 전에는 부활절이었다. 나는 집에서 달걀 찾기(Egg hunt) 이벤트를 작게 열어줬다. 종교적인 것을 떠나 미국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부활절마다 하는 행사다. 나 역시 집 안에서나마 비슷하게 흉내를 내봤다. 

플라스틱 달걀 모형 안에 초콜릿이나 작은 장난감을 넣어 집 구석구석에 숨겨두고 아이들에게 찾게 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놀이를 하니 아이들은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집 안 여기저기를 뒤지며 달걀을 찾고 까르르 웃는다.

집에 있던 식용색소로 흰 달걀에 물을 들이고 그림을 그려서 함께 비교해보기도 한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드높은 웃음소리에 정말 봄이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들의 생기와 우리 모두의 일상도 부활하기를 바라며 한참을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난 것만 같은데 아이들과 종일 함께 있다 보니 집안일도 공부도 어느 하나 집중해서 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한 달째 나도 모르게 ‘소극적으로’ 놀고 있다. 누군가 “오늘 뭐하고 보냈어요?”라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할 만한 일은 없지만,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느슨하게 보낸 하루가 늘어난다.

언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시나브로 지금의 이 상황도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갈 것을 믿으며 조금 더 힘을 내본다. 창밖에 봄이 오고 있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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