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을 다니면서 방학 동안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처음 교육을 나간 날은 시험을 마치고 방학을 앞둔, 아이들의 마음도 교실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붕 떠 있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준비한 교안대로 잘 할 수 있을지, 같이 볼 자료는 다 챙겨왔는지 긴장을 한가득 안은 채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열심히 외우고 설명하려 했던 이야기들은 글자로 흩어져 머릿속을 맴돌기만 했습니다.
일터에서 지켜져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하는지, 어떤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을지, 어렵게 들리지는 않을지 머릿속과 마음속은 복잡했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약속한 시간을 초과해 일해서도 야간에 일해서도 안 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리 어렵지도 않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하려다 보니, 어떻게 해야 더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아이들이 읽기라도 했는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쟤는 사장님이 월급을 다 안 줬대요.”
“다치면 산재 처리 해주던데요.”
“최저임금은 지켜서 줘야 하는 거죠?”
“쉬는 시간에는 일하지 말라고 하던데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무엇을 알려줘야 할지, 어떻게 하면 ‘경험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쉽게 전할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저는, 사실 아이들이 잘 모를 것이라고 당연히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마주한 아이들이 노동의 주체일 수 있고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당사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야 말이죠.
아동, 어린이, 청소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보호하고 무언가를 알려줘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런 생각이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보장받고 누려야 할 권리가 있고, 이를 요구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는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동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동에 대한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이 전제돼야 할 테니까요.
*오민애 변호사는 국제아동인권센터 자문위원입니다. 이 글은 국제아동인권센터 칼럼(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childrights&from=postList&categoryNo=36)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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