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받은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해외에서 받은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1.03.2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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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새로운 여정, 여덟 살의 시작을 축하하며

큰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여덟 살이 됐다. 올해 초 입학통지서가 나왔다는 가족들 연락을 받고 배정 받은 초등학교에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서류를 제출했다. 입학통지서를 본 날 마음이 이상했다. 누구나 여덟 살이 되면 들어가는 초등학교에 우리 아이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이 부풀었다. 아이는 내 곁에 무탈하게 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3월에 싱가포르에 왔고, 집 주변에 있는 동네 성당 유치원에 자리가 있어서 별 어려움없이 유치원을 들어갔고 아이는 제 속도로 다른 환경에 적응을 하며 잘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싱가포르 초등학교의 경우 외국인은 우선 순위에서 가장 후순위에 있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시작됐다. 아이가 배정 받는 학교를 따라 이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심지어는 지원한 학교에 모두 떨어져서 난감해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바빠졌다. 한국이었다면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될 일이 여기서는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된 셈이다. 

외국인들이 모두 국제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국제학교를 선택한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신분이어서 아이가 싱가포르 학교에 배정을 못 받았는데 국제학교 마저 자리가 없어서 입학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초등학생이 되기 일년 전부터 국제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름 있는 국제학교의 학비는 대학교 학비 수준이었고, 우리가 사는 곳에서 꽤 멀어 이사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주재원도 아닌 월급쟁이 부부가 집세 내고 생활비 쓰고 노후 준비도 하려면 아이들 학비는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어야만 했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에도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거나 사립 초등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국제 학교는 아주 먼,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렸다. 내가 살고 있던 동네는 집세가 적당해 굳이 이 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기에 집 주변을 살펴보다 프랑스 학교를 발견했다. 소싯적 프랑스어를 공부한 경험이 있어 이질감이 크지 않았고, 학비도 감당할 수준이었고, 영어권 학교와는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궁금하기도 했다. 학교 투어를 다녀오고 교장 선생님과의 만남 자리도 참석해 학교에 대해 조금씩 알아보고 아이를 유치원 마지막 과정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이는 1년 6개월째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있다. 

프랑스 학교는 입학식이 없다. 학교 첫날인 2019년 9월 1일, 아이가 배정받은 교실에 다 같이 가서 교실 안을 조금 둘러보고 선생님과 친구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게 될 지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고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아이들만 교실에 두고 학부모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면 나는 질문을 하느라 분주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친구들과는 재미있게 노는 지, 수업 시간은 어떤 지, 도서관이나 체육관은 가봤는 지 이것 저것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쏟아냈고, 아이는 아이대로 제 눈으로 본 것들을 이야기해줬다.

“엄마, 내 친구들은 눈이 모두 파래. 내 눈은 무슨 색깔이야?”

“엄마, 선생님은 눈썹 위에 귀걸이를 했어.” (아이 눈에 피어싱이 귀걸이로 보였나보다)

“엄마, 선생님이 아침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줘서 정말 즐거워.”

“엄마, 프랑스 말로 안녕은 봉주흐(Bonjour)야, 엄마 봉주흐(Bonjour) 알아?”

어느 날은 선생님에게 따로 메일을 썼다. 우리는 프랑스와는 큰 인연이 없는 한국에서 온 식구들이고, 프랑스어는 잘 못하지만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고 소개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한국을 알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가끔 단 둘이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새롭다. ⓒ김보민
가끔 단 둘이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새롭다. ⓒ김보민

2020년 9월 1일, 아이는 프랑스 학제로 초등학생이 됐다. 입학식이 원래 없기도 했고, 코비드로 인해 교실에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은 학교 입구에서 인솔하는 선생님을 따라 모두 교실로 올라갔다. 심지어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담임 선생님 얼굴도 제대로 못봤다. 아이는 학기 초에 학교 생활을 조금 힘들어했다. 이제 프랑스어 알파벳을 제대로 배워야 했고, 읽기 쓰기를 배우느라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학교 생활은 재밌고, 선생님도 좋은 분이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겁다며 아침이면 밥 한 그릇 뚝딱 먹고 등굣길에 나섰다. 

가끔 아이는 우리 식구가 왜 싱가포르에 왔는 지, 자기는 왜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지 물어볼 때가 있다. 싱가포르에는 겨울도 없고 맨날 덥기만 한데 왜 여기에 왔는 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프랑스 학교에 왜 다니는 지 궁금해 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도 좋지만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 많이 보고 경험하면 좋으니까”라고 짧게 대답하면 아이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아이에겐 세상이 모두 처음이고 새롭고 신선할 텐데 말이다.

아이는 수줍음은 많지만 처음 만나는 환경과 사람 속에서 본인 자리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불편함이 없다. 아이는 제 혼자 멍하니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그림과 글자를 끼적이며 제 마음을 보여주기에 스스럼이 없다. 아이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온 몸으로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고, 책을 읽거나 사진을 꺼내 보다가 우는 나를 가만히 안아 주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아이 등 뒤에 서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내가 앞장서면 아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주저할까 봐 일부러 뒤에 서서 따라간다. 저 멀리 우두커니 큰 돌덩이가 서 있는 것 같을 때, 아이 곁에 다가가 앞을 보라는 말만 해줄 뿐이다. 돌덩이의 크기를 예상하는 일도, 돌덩이를 기어 올라갈지 빙 둘러 돌아갈지 혹은 돌덩이를 향해 달려갈지 선택하는 일도 모두 아이 몫으로 남겨둔다. 이제 그렇게 한발 뒤에 따라 걸어도 될 만큼 아이는 자랐고,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 높이는 조금 높아지고, 넓어졌다. 

아이가 프랑스 학교를 다니면서 프랑스인 가족들을 종종 만난다. 와인과 치즈를 맛보고,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어린 시절 어떤 생각을 하며 자랐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또다른 세상인 싱가포르에서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지, 그들에게 아시아는 어떤 세상인지 물어본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프랑스의 모습을 보고,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를 핑계로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는 셈이다. 

가끔 아이가 크면 프랑스에 있는 대학에 보낼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대학은 너무 까마득해 ‘아무 생각이 없다’고 답한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 미래를 위해 뭘 반드시 배워야 하고, 꼭 익혀야 하는 지 아무 생각이 없다. 아이의 미래가, 세상의 미래가 내 뜻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함부로 생각할 수가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가 걷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즐기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좋은 결과도 얻길 바랄 뿐이다. 내가 보여주는 책과 세상과 경험은 모두 아이에게 풍경과 같은 시간들이고, 그 풍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순간들을 아이가 제 힘으로 손에 쥐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맨 처음 탄 날이 떠오른다. 자전거 안장 뒤 쪽을 살짝 잡아주니 좌우로 흔들리며 아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안장을 잡은 손 놓지 말라며 아이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좌우 흔들림이 줄어들고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갈 때에 자전거 안장에서 손을 뗐다. 아이는 내가 뒤를 잡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흔들림 없이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자전거 안장을 그저 한 번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자전거는 아이가 힘차게 밟는 페달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한가지 더 바라는 바가 있다면(생각보다 욕심이 많다) 앞으로도 그 역할에 충실하기를 나 자신에게 바랄 뿐이다.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탄다. 그래서 인지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김보민
나는 자전거를 잘 못 탄다. 그래서 인지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김보민

아이가 계속해서 프랑스 학교를 잘 다닐 지, 우리가 계획도 없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지, 다음 여정은 어떻게 될 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오늘이라는 시간을 꼭꼭 씹어 먹듯 애써 살아간다. 꼭 해야 하는 숙제는 이것뿐이다.

세상 모든 여덟 살의 첫 번째 학교 입학을 멀리서 축하합니다. 어쩌면 이 날 만큼 가슴 벅찬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요.새로운 여정, 엄마와 아이 모두 힘차게 달려가봐요!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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