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고 딸 생각을 하니 다리 뻗고 잘 수가 없네
올림픽을 보고 딸 생각을 하니 다리 뻗고 잘 수가 없네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08.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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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 (2017)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여성 선수 참가율이 48.8%로 역대 최고라고 한다. 1896년에 열린 첫 올림픽은 여성 선수가 0명이었다고 하니 50% 가까이 끌어올리기까지 100년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처음 이 뉴스를 접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니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됐으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나는 올림픽이 충분히 성 평등해졌다고 믿었다. 양궁 선수 안산의 숏컷을 두고 당신 페미니스트 아니냐며 선수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

페미니스트라서 머리를 짧게 잘랐냐는 온라인 괴롭힘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 개의 금메달을 따낸 안산 선수. ⓒworldarchery.sport
페미니스트라서 머리를 짧게 잘랐냐는 온라인 괴롭힘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 개의 금메달을 따낸 안산 선수. ⓒworldarchery.sport

이 어이없는 인터넷 상 난동의 한복판에서 이 영화를 알게 됐다. 안산 선수와 8강에서 만나 맞대결을 펼친 세계 랭킹 1위 인도의 디피카 쿠마리 선수에 대한 다큐, ‘레이디스 퍼스트: 내일을 향해 쏴라’가 그 영화다.

디피카 쿠마리는 인도의 양궁 선수로 올림픽 전 세계 랭킹 1위였으나 안산 선수와 8강에서 맞붙어 패했다. ⓒ imdb.com
디피카 쿠마리는 인도의 양궁 선수로 올림픽 전 세계 랭킹 1위였으나 안산 선수와 8강에서 맞붙어 패했다. ⓒ imdb.com

영화 속 인도의 상황은 성 평등의 ‘ㅅ’ 자를 꺼내는 것도 사치로 보인다. 쿠마리 고향 마을에서 여자 아이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집안일을 하다가 18살이 되면 결혼을 강요당한다. 어머니들은 모두 가정 주부였던 마을에서 쿠마리의 어머니는 홀로 병원에 나가 일을 한다. 쿠마리의 어머니는 여자가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시동생에게 맞기까지 한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맞아요. 형수를 종종 때린 적이 있어요. 별일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는 쿠마리의 숙부를 보면 당시 쿠마리가 처해 있던 환경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다.

쿠마리 선수의 고향 마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게 만연한 곳이다. ⓒimdb.com
쿠마리 선수의 고향 마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게 만연한 곳이다. ⓒimdb.com

쿠마리는 11살에 숙식을 제공해주는 양궁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난한 집안에 입 하나라도 덜고자 이 학교에 들어간다. 화장실이 없어서 강물에서 샤워를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양궁을 시작했기에 고향 마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쿠마리는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양궁 선수로 성공하고 인도에서 유명세를 얻는다.

요즘 유행하는 능력주의의 법칙에 따르면 이렇게 성공하면 성별로 인한 차별은 받지 않아야 한다. 양궁으로 세계 1위를 했다는데, 누가 이 여성의 커리어에 토를 달겠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쿠마리는 고향 마을에 부모님의 집을 새로 지어드리지만 ‘딸을 밖으로 내돌려서 번 돈으로 지은 집’이라는 이웃들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하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자 ‘그러게 왜 여자애한테 운동을 시켜가지고’ 라는 비웃음과 맞닥뜨린다.

쿠마리 선수는 양궁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지만 성공 이후에도 성 차별과 싸워야 한다. ⓒimdb.com
쿠마리 선수는 양궁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지만 성공 이후에도 성 차별과 싸워야 한다. ⓒimdb.com

쿠마리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없다. 사회의 편견과 싸워야 한다. 아니, 어쩌면 운동으로 보여주는 성적만이 이 싸움에서 유일한 자기 증명이자 승리의 증거가 된다. 그러니 온갖 대회의 메달을 다 휩쓸고도 올림픽 메달만은 목에 걸지 못한 쿠마리에게 올림픽 메달은 너무나 간절하다. 영화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연거푸 메달을 따지 못하고 크게 좌절하는 쿠마리의 눈물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실패는 쿠마리 개인의 실패일까. 영화는 단 두 문장을 자막으로 제시한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인도 여성 선수는 없었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여성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적이 없다.” (2017년 기준) 쿠마리의 실패를 단순한 개인 능력 부족으로 치부할 수 없고, 여성 운동 선수를 육성해내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성공은 허락해줄게, 너무 크게 성공하진 마. ⓒimdb.com
성공은 허락해줄게, 그런데 너무 크게 성공하진 마. ⓒimdb.com

“사람들은 종종 ‘숙녀 먼저ladies first’라고 해요. 그럼 여자들이 교육이나 스포츠에서 성공하고 싶어 할 때 그런 중요한 순간엔 왜 ‘숙녀 먼저’라고 안 하죠? 우리한테 자유가 주어지면 남자들보다 더 성공하고 앞서가서 우릴 못 따라올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 ‘숙녀 먼저’가 허용되는 경우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문을 열 때 정도다. 여자도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남자들을 제치고 ‘숙녀 먼저’ 성공해서는 안 된다.

쿠마리의 유년 시절을 안산의 유년 시절과 비교해 보면 후자가 훨씬 평탄해 보인다. 양궁을 배우고 싶은데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 남자 양궁부밖에 없어서 여자 양궁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가 전학을 권유 받았다는 것 정도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성 차별의 희미한 흔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는 인도보단 상황이 낫지’라고 안심해도 될까. 얼마 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고 한다. 나는 선진국이라는 내 모국에서 여성 선수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이 거침없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더 절망을 느꼈다.

‘숙녀 먼저’ 성공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무의식은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머리 스타일 가지고 국가 대표 선수에게 감히 ‘당신 페미니스트냐’고 시비를 걸 수 있나. 페미니스트가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것인가. 저 질문을 뭐 대단한 위협의 도구라도 되는 것처럼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 나는 내 딸을 어떻게 키우고, 아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안산 선수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성공을 이룬 여성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평범한 여성들은 얼마나 더 들들 볶아댈 것인가. 내 딸이 내 아들과 동등한 기회를 누리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아서 한숨만 더 깊어진 올림픽이었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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